노인도 못 들어가는 실버타운, 박수홍·나영석이 살고있는 이유
[영상뉴스] “노인이 살 곳이 없다” 초고령화에도 실버타운 공급난 닥친 진짜 이유
[땅집고] 개그맨 박수홍씨를 비록해서 ‘신서유기’의 나영석PD, 가수 피오 등 여러 유명인이 사는 상암동 한 주상복합 아파트가 있습니다. 박수홍씨는 결혼 전에는 물론이고, 신혼집도 이 아파트에 차렸다고 합니다.
개그맨 주병진씨도 10년 전쯤 이 아파트 펜트하우스에서 강아지 3마리를 키우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연예인이 많이 사는 만큼, 웬만한 예능에는 다 나왔던 아파트입니다.
그런데 이 아파트는 사실 실버타운입니다. 지금 서울에서는 월 관리비가 500만원에 달하는 실버타운마저도 들어가려면 2-3년을 기다려야 해서 ‘실버타운 난민’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또 실버타운(노인복지주택)에 가려면 60세가 넘어야 하는데, 최근 연령 기준을 넘긴 주병진씨를 제외하면 모두 나이 기준에도 미달입니다.
하지만 이분들이 불법을 저지른 것은 아닌데요. 그렇다면 연예인들은 어떻게 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걸까요?
연예인들이 대기가 엄청 긴 실버타운에 살게 된 이유는 이 아파트 특성 때문입니다.
이 아파트는 마포구 상암동 ‘카이저팰리스클래식’입니다. ‘우림필유’라는 브랜드를 썼던 우림건설이 지었는데, 당시 주상복합 아파트에는 모두 ‘카이저팰리스’ 브랜드를 적용했습니다.
건설사는 이 아파트에만 ‘카이저팰리스 클래식’을 달았는데요. 이게 바로 오늘 주제의 중요한 대목입니다. 여기만 실버타운이라서 이런 이름을 붙인 겁니다. 분양 당시 기사를 보면 ‘실버전용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로 나와있습니다.
지하 3층~최고 33층, 2개 동, 총 240가구로 지어졌고, 중·대형 평형만 있습니다. 공급면적을 보면 118㎡~326㎡로, 평으로 치면 35평에서 98평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주력 평형은 40평대입니다. 49평이 118가구, 58평이 60가구, 35평이 58가구 있어요. 정말 크게 지어졌습니다.
이 아파트는 2007년 11월 모델하우스를 열고 분양을 시작했는데, 워낙 비싸게 나와서 잘 안 팔렸고, 홈쇼핑까지 진출했던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 분양가를 보면 3.3㎡(1평)당 2200만원~3000만원 수준으로, 2008년 당시 ‘반포자이’ 아파트보다 조금 저렴한 정도였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상암월드컵2단지가 2007년 하반기에 4억 중후반에 거래된 걸 보면 당시 이 노인 전용 아파트가 얼마나 비쌌는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 실버타운은 최고급으로 지어졌던 만큼, 내부에는 다양한 커뮤니티를 갖췄습니다. 단지 커뮤니티로는 휘트니스센터와 골프연습장, 사우나, 수영장이 있고, 영화관, 파티하우스, 와인바 등이 조성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커뮤니티가 활성화됐던 시기가 아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말 신경 써서 지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조성 당시부터 최고급으로 지어놔서 커뮤니티 시설도 많을 뿐 아니라, 보안도 잘 된다고 합니다. 고층은 한강도 잘 보인다고 합니다.
이 아파트는 입지적으로도 굉장히 훌륭한 편인데요. 특히 연예인들이 선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상암동이거든요. MBC, JTBC, EBS, YTN 같은 방송국이 많습니다. 촬영장이 많은 일산으로 빠지기도 편한 곳이죠. 또 이런 상암동에서 가장 최근에, 고급스럽게 지어진 아파트라는 점도 굉장히 매력적인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 아파트가 이렇게 잘 지어진 이유는 실버타운이기 때문입니다. 이 단지는 바로 분양형 실버타운이었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이 분양형 실버타운이 8-9년 전에 법에서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입소 기준이 좀 문제가 되면서 ‘사기분양’ 사건이 종종 일어났습니다. 실제로 서울 노원구에 있는 ‘중앙하이츠아쿠아’ 아파트도 분양형 실버타운으로 지어졌습니다. 여기서는 규정 허점으로 인한 분쟁이 많았어요.
실버타운은 60세 이상(요양시설은 65세 이상) 자립생활이 가능한 사람이 가는 곳인데, 당시에는 기준 연령이 넘지 않아도 실버타운을 매수할 수 있었습니다.
분양권을 산 사람은 ‘내가 내 돈 주고 샀는데, 왜 입주를 못하냐’는 황당한 상황이고, 구청이나 실버타운 운영사 입장에서는 ‘여기는 노인만 들어올 수 있다’고 할 수밖에 없는 거죠. 다행히 당시 노원구나 지역구 의원들이 적극 나서면서 문제가 잘 해결됐습니다.
만약 시행사가 ‘노인이 아니면 입주 못한다'고 했으면 아무도 안 샀을 텐데, 당시에는 관련 규정이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기 분양’ 논란은 계속됐습니다. 결국 정부는 분양형 실버타운을 아예 없애버렸죠. 그러면서 실버타운 관련 법인 노인복지법을 개정해 60세 미만은 노인복지주택을 소유·임대·매매는 물론 거주를 못하도록 했고, 처벌 규정도 만들었습니다.
이미 매수한 사람들의 경우, 재산 피해가 발생하다는 점에서 노인이 아니라도 이 아파트를 사고 팔 수 있게 해줬습니다. 아까 제가 얘기했던 연예인들이 실버타운에서 살 수 있는 이유죠.
문제는 이 분양형 실버타운이 사라진 이후 실버타운 업계가 불황을 맞이합니다. 건설사들 입장에선 이걸 만들어서 팔아야 돈이 되는데, 팔지 못하고 계속 임대 상태로 가지고 있어야 하니까 부담이 되는 거죠.
당시에 시설 경험이 많은 운영사가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실버타운이 한국에 들어온 역사가 워낙 짧아서 제대로 운영할 회사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지금 유명한 더클래식500역시 이 즈음 생겼습니다.
어찌됐든 실버타운을 찾는 사람이 없으니까, 시공사나 시행사 같은 건설회사들은 여기에 관심을 끊어버립니다. 안팔리니 안 만든거죠.
그런데 노인인구가 엄청나게 많아지면서 또 상황이 달라집니다. 이런 실버타운 수요가 빠르게 늘어난 건데요. 특히 우리나라 노인 인구는 이 실버타운 불황기에 역대급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빠르게 늘었습니다. 1년 뒤에는 국민 5명 중 1명이 노인(65세 이상)이라고 합니다. 2010년에는 10명 중 1명꼴이었는데 이게 배로 뛰었습니다.
한 10년 뒤(2035년)에는 더 늘어서 5명 중 1명에서 2명 정도가 노인이고, 2050년엔 국민 절반이 노인이 되는 참담한 상황입니다.
이와 반대로 실버타운 수는 매우 적습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실버타운의 법적 이름은 유료, 무료 요양시설이나 노인복지주택입니다. 그런데 이걸 다 합해도 몇 개 안 됩니다. 원래는 이 시설들의 수는 노인 증가세랑 같이 가야 하는 건데, 몇 년째 차이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짓기도 어렵습니다. 서울에서는 땅도 없고요. 시니어타운은 어쨌든 건물이라서 지으려면 시간이 좀 걸립니다. 있는 것을 고쳐 쓸 수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하루 이틀만에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결국 실버타운 난민이 늘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지금은 정부도 이런 노인주거문제를 좀 해결하려고 상황입니다. 국토부는 최근 동탄신도시에 시니어타운을 지을 수 있는 초대형 용지를 선보였는데요.
건설업계도 분양형 실버타운을 다시 풀어달라고 하는 상황입니다.
다만, 없어진 지 10년이 채 되지 않아서 바로 부활하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노인복지주택은 오피스텔처럼 준주택이라서 투기 수요를 우려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 상황을 봤을 땐, 다양한 주택을 공급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이 문제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글=김서경 땅집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