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직업' 환경미화원 합격한 30대 가장들
美 일리노이주립대 출신도 탈락
지방대 나온 두 가장이 붙은 비결
'빚더미, 건설인부... 실패 끝내고 싶다'
10년 전만 해도 ‘3D’직업으로 불리던 환경미화원은 요즘 ‘신의 직업’ 중 하나로 통한다. 채용 공고가 나올 때마다 유학파와 고학력자까지 몰리며 수십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다.
최근 10명을 뽑은 대구 중구청 환경미화원 공채에는 97명이 몰려 10대 1 가까운 경쟁률을 기록했다. 88명이 체력테스트에 응시해 35명이 2차 서류 전형을 봤고, 면접을 거쳐 10명이 선발됐다.
이 가운데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출신과 국내 명문대 석박사 출신이 끼지 못하고 탈락했다.
대구 중구청 환경미화원은 9급 출신보다 처우가 좋다. 초봉은 3200만원이고, 10년 이상 근무하면 4500만원으로 연봉이 오른다. 복지카드(연간 100만원 한도), 초중고 자녀 학자금(1년에 4차례 분기별 50만원 한도)을 별도로 받는다. 15일 연차휴가에 경조사비도 있다.
오전 4시부터 오후 1시까지 8시간 근무하고 정시 퇴근한다. 60세까지 무기계약직으로 일한다.
환경미화원이 되기 위해 지원자들은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팔굽혀펴기 25개(1분), 윗몸일으키기 30개(1분), 20kg짜리 모래 포대 10개를 10m 떨어진 지점까지 옮기기(100초) 등 체력 측정을 했다. 서류 심사에선 자치구에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부양가족 수가 몇명인지를 중점적으로 봤다. 지역에 봉사하면서 받은 표창장이 있으면
가산점을 줬다.
대구 중구청 관계자는 “환경미화원은 스펙이 좋다고 합격할 수 있는 게 아니다”며 “구 거주기간이 1년 미만이거나 부양가족이 없으면 붙기 어렵다”고 했다. 미국 명문대 출신 등 고스펙자들은 거주 이력이 없거나, 부양가족이 없어 탈락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명문대생을 제치고 환경미화원에 합격한 가장 2명 이야기를 들었다. 빚더미에 쌓이고, 건설 인부로 버티다 '인생 역전'을 했다는 사람들이다.
수천만원 빚더미에, 건설인부 하다 ’제2의 인생‘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경북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성진기(39)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구 한 제조업체에서 일했다. 결혼 후 연쇄적으로 위기가 닥쳤다. 첫째가 백혈병과 다운증후군을 갖고 태어났다.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직장을 잃었다. 곧 둘째와 셋째가 태어났다.
부부가 동시에 첫째를 간호해야 했어요. 제 전공을 살려 정규직 취업에 도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죠.
작은 인테리어 사업, 배송납품 등으로 생계를 유지했지만 한 달 200만원 벌기 빠듯했다. 새벽 인력시장을 찾았다. 일이 있으면 무조건 뛰어들었다.
태권도장 관장으로 일하던 한창수(36)씨. 영남대 체육학과 출신으로 대구시 대표 이력이 있다. 창업 초기 잘 나갔다. 한때 수강생이 140명에 이르면서 800만원의 한 달 순수입을 올렸다. 오래 가지 못했다. 저출산에 태권도 인기 감소가 겹치면서 수강생이 계속 줄었다. 한 달 100만원 벌기도 어려운 상황에 몰렸다. 쌓이는 건 빚뿐. 사업자 대출 5000만원, 주택담보대출 2억3000만원.
20kg 쌀포대 들고 매일 연습
성진기씨와 한창수씨는 각자 추락하는 삶을 반전시키기 위해 환경미화원에 도전했다.
가장 큰 난관은 체력시험. 한씨는 선수 출신임에도 2개월 간 달리기 연습을 했다. 그래도 실전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20kg 포대를 10번 날라야 하는데, 9번째 옮길 때 다리가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어요.” 체력 테스트가 까다로워 5년, 6년 재수하는 도전자가 많다.
성씨는 6개월간 준비했다. 20kg 쌀포대를 들고 100초 안에 10m 거리를 왔다 갔다 하는 훈련을 하루 두 시간 씩 했다. 가족도 나섰다. “아이들이 발등에 앉아 윗몸일으키기를 도와주면서 체력을 키웠습니다.”
한씨와 성씨는 부양가족이 있어 서류 통과에 유리했다. 대구 토박이로 자란 것도 장점으로 작용했다.
마지막 관문은 면접. 까다롭다. 자치구 사정 등 구체적인 사실을 묻는 구술시험에 가까웠다. 성씨는 “환경 상식, 구를 상징하는 나무·행사 등을 꿰고 있어야 통과할 수 있다”며 “구 소식지 등을 샅샅이 읽고 면접에 임했다”고 했다. 쓰레기봉투 분리수거 방법, 봉투 규격 등 질문도 나왔다. '왜 환경미화원을 하려는지' 질문엔 솔직히 답했다.
자원봉사도 중요한 평가 항목이다. 한씨는 금요일 저녁 무술 유단자들이 도심을 순찰하는 '무도 순찰 자원봉사' 경험을 어필했다.
나중엔 대기업 입사만큼 어려워질 것, 빨리 도전해야
두 사람은 합격 후 11월 1일 처음 나와 감격의 작업복을 받았다. 1주일의 연수를 마치고 정식 출근할 예정이다.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마시며 도시의 쓰레기를 수거하게 된다. 성씨는 “시민에게 무시당할 때가 있겠지만, 의식 수준이 높아지고 있어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두 사람은 간혹 “왜 젊은 나이에 환경미화원을 하느냐”는 손가락질을 받는다고 한다. 그럴 때면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답한다.
오히려 자부심이 있다. 성씨는 “요즘 환경미화원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고 했다.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말이다. 그의 어머니도 ‘요즘 인식이 많이 바뀌었으니 힘내라’고 복돋아 준다.
직업적인 보람을 느낄 수 있고, 안정적인 소득으로 가족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기뻐요. (한창수씨)
환경미화원은 부양가족이 있는 30~40대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직장을 잃었거나 박봉에 시달리는 가장이라면 도전해 보라는 게 두 사람의 말이다. “곧 대기업 만큼 하기 어려운 인기 직종이 될 것 같아요. 사정이 어려운 가장이라면 자존심 버리고 도전해 보세요."
첫 월급 받으면 어디에 쓸까. 성씨는 "가족과 맛집에 갈 계획"이라고 했다. 한씨는 “어머니께 내복 한벌 사드리고 싶다”고 했다.
글 jobsN 이신영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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