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KBO를 보던 팬들은 이 선수가 외계인인지 의심했다. 타율 0.381, 47홈런, 140타점, 40도루, OPS 1.287이라는 성적표를 남긴 에릭 테임즈의 이야기다.

그해 박병호가 53홈런을 치고도 골든글러브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2015년이 누구의 시즌이었는지 설명이 된다. 메이저리그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은퇴를 고민하던 27세 선수가 30만 달러 연봉으로 NC에 왔다가 KBO 역사를 통째로 바꿔놓은 이야기다.
마이너리그 신세에서 KBO로

테임즈는 2008년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7라운드 전체 219순위로 지명된 선수였다. 마이너리그에서 나름의 활약을 보이다 2011년 빅리그에 처음 올라가 타율 0.263, 12홈런, OPS 0.769를 기록했지만 주전 자리를 굳히지 못했고, 2012년 86경기 타율 0.220, OPS 0.695에 그치며 이후 마이너리그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빅리그 복귀 가능성이 요원해 보이던 시절 NC 다이노스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1군 2년차 시즌을 앞두고 강력한 외국인 타자가 절실했던 NC는 KBO에서 성공하면 빅리그 재도전 기회가 생긴다는 점을 강조하며 설득했고, 테임즈는 30만 달러 연봉에 도장을 찍었다.
첫 시즌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2014년 테임즈는 곧바로 NC 타선의 중심이 됐다. 나성범·박석민과 함께 이른바 '나테이박' 트리오를 구성하며 세 선수가 합산 87홈런을 쏘아 올렸고, 팀 홈런의 약 60%를 세 명이 책임졌다.
테임즈 개인 성적은 타율 0.337, 37홈런, 121타점으로 외국인 타자가 30만 달러에 이런 활약을 해줄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NC는 1군 2년차 시즌에 정규 시즌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2015년, 괴물의 탄생

5kg 이상 체중을 늘려 더 강해진 모습으로 돌아온 테임즈는 2015년 개막 직후부터 리그를 공포에 빠뜨렸다. 4월 9일 KIA전에서는 KBO 역대 17번째이자 외국인 선수 역대 2번째로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고, 8월 11일 넥센전에서는 KBO 역사상 최초로 한 시즌에 사이클링 히트를 두 번 기록하는 전무후무한 일을 해냈다.

도루에서도 무서웠다. 73경기 만에 20-20 달성에 성공하더니 28일 한화전에서 30-30, 그리고 10월 2일 SK전에서 드디어 40번째 도루에 성공하며 KBO 최초이자 아시아 최초의 40-40 클럽에 이름을 새겼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단 한 차례밖에 나오지 않은 대기록이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0.381, 47홈런, 140타점, 40도루, OPS 1.287로 WAR 기준 KBO 타자 역대 1위에 해당하는 시즌이었다. 당연히 MVP는 테임즈의 차지였다.
음주운전, 그리고 밀워키로

2016년에도 테임즈는 KBO 2년 연속 40홈런이라는 역대 네 번째 기록을 세우며 건재함을 알렸지만, 9월 26일 음주운전으로 면허 정지 수치가 나오는 사고를 냈고 이후 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으며 시즌을 조기 마감했다.
그럼에도 NC는 창단 첫 한국시리즈에 진출했고, 팬들은 테임즈가 없었다면 그 자리도 없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시즌이 끝나고 일본 진출설이 돌던 테임즈를 밀워키 브루어스가 낚아챘다. 마이너 거부권이 포함된 파격적인 조건의 3년 계약이었고, 빅리그 복귀 첫 시즌에 31홈런을 쳐내며 역수출 신화를 완성했다.

KBO에서 3시즌 동안 390경기 타율 0.349, 124홈런, 382타점, OPS 1.172를 기록하고 떠난 테임즈는 그가 남긴 기록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40-40은 2024년 김도영이 홈런 2개 차이로 실패했을 만큼 여전히 난공불락의 기록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