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돌봄이 가져온 것, 서사원 폐지가 앗아간 것
“시장님이 다시 제자리로 돌려놔야지요. 이 동네 노인들이 나빠지고 있어.”
한영희 어르신(91)은 당뇨와 고혈압으로 몇 년째 혼자 집에서 누워 지내다시피 했다. 그러던 중 2019년 집에 찾아온 주민센터 공무원을 통해 노인장기요양제도를 알게 되고,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이하 서사원)에 연계되어 방문요양서비스를 받게 됐다.
어르신 집에 온 김춘심 요양보호사는 당뇨나 고혈압에 맞춘 음식을 만들어줬다. 움직이기 귀찮아할 때마다 “요즘 거리에 꽃이 예쁘다”라거나 “단풍이 곱다”라고 꾀어 수시로 함께 산책을 나갔다. 1년이 지나자 어르신은 당뇨나 고혈압으로 쓰러지는 일도 없어졌고, 뱃살과 부기가 빠지면서 혼자서도 산책을 다닐 수 있게 되었다.
요양보호사는 자주 색종이와 악기도 들고 왔다. 색종이로 꽃을 접고, 종이 액자를 만들어 어릴 적 어머니와 찍은 사진도 넣었다. 생애 처음 악기도 배워봤다. 두 손에 쏙 들어오는 칼림바라는 악기로 ‘작은 별’을 연주했다. 아직 치매는 아니지만 기억력이 흐려지고 있었는데, 손가락을 자주 써서 그런지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일까. 적지 않은 연세에도 어르신의 눈빛이 맑고 목소리가 청청하다.
통증과 적적함으로 가득 차 있던 어르신의 일상에 요양보호사가 찾아오고, 집 앞에서 함께 꽃잎을 줍던 즐거움은 지난해 6월로 끝났다. 서울시에서 서사원 예산 142억원을 삭감하며 서사원 산하 노원종합재가센터가 문을 닫은 것이다.
“김춘심 요양보호사님은 내 삶의 은인이에요. 의사가 아닌데도 몸을 고쳐줬다니까. 신통방통해. 처음에는 귀찮아서 음식이든 산책이든 다 싫다고 막 짜증 냈거든. 근데 자꾸 웃으면서 하자고 해. 그거에 넘어가서 이만치 좋아졌지. 마지막 날 인사하고 가는데 눈물 날 것 같아서 얼굴을 못 봤어. 그날 밤 혼자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서울시장님이 너무 밉더라고.”
서사원이 문을 닫은 이후 동네 민간센터에서 요양보호사를 보내줬다. 밥과 빨래와 청소를 해주지만 김춘심 요양보호사처럼 해주지는 못했다. 본인뿐 아니라 서사원을 이용했던 임대주택의 다른 노인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서사원 요양보호사들은 산책을 수시로 권해서 임대주택 앞 골목에서 걷고 있는 노인들을 종종 만났는데, “이제 다 집에 들어앉아 있고” “종이접기마저도 안 해서 머리가 흐리멍텅”해지고 있다고 하신다.
당시 서사원에 고용돼서 한영희 어르신을 담당했던 김춘심 요양보호사는 말했다. “어르신이 몸도 많이 부어 있고 우울감도 심해 보이셨어요. 처음엔 싫다는 분에게 산책 가자, 좋은 음식 드시자고 권하는 게 적절한 일인지, 돌봄 대상자의 자율권 침해가 아닌가 고민했어요. 민간센터에서 만난 분이면 저도 그냥 요청하시는 것만 했을지도 모르죠. 민간에서는 이용자를 잃을까 봐 그냥 해달라는 것만 적당히 하라고 하니까.”
‘대체’할 요양보호사가 넘쳐난다?
요양보호사로서 김춘심씨의 치열한 고민은 익히 알고 있다. 그는 내가 활동하는 시민단체 ‘다른몸들’ 회원이고, 돌봄 노동자 생애사 모임을 오랫동안 함께하며 돌봄노동 현장의 문제에 대해 자주 토론해왔다. 그는 자신의 직업에 애정이 깊은 만큼 전문적 돌봄을 제공하겠다는 의지도 강한데, 이는 자칫 이용자의 자기결정권과 충돌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이런 충돌과 갈등을 긴장감 안에서 고민해야 우리는 ‘좋은 돌봄’에 닿을 수 있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의 삶의 질이 최상으로 유지되도록, 표면적 요구를 넘어 복합적 필요를 파악하면서, 돌봄 노동자의 전문성과 반응성이 적극 발현되는 ‘좋은 돌봄’ 말이다.
서사원 이용자들 사이에서 ‘돌봄의 질이 다르다’는 평가는 흔하다.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의 ‘2022년 돌봄서비스 만족도’ 조사 결과, 이용자 종합만족도가 92.3점(종합재가센터 94.9점, 주야간보호센터 91.4점, 어린이집 88.7점)으로 나타났다. 호출형 시급제가 아닌 월급제로 요양보호사 고용이 안정된 구조라서 가능하다고들 하지만, 그것만으로 다 설명하기 어렵다.
현재 장기요양보험제도 서비스의 90% 이상을 이윤 창출이 목표인 민간센터에서 공급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이용자 수가 곧 수익이 된다. 그래서 인터넷 통신사들이 사은품을 주며 유치 경쟁을 벌이듯 이용자 유치 경쟁을 한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이용자에게 질 좋은 돌봄을 제공하게 된다고 시장주의자들은 주장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경쟁 과정에서 이용자 부담금을 민간센터에서 일부 대신 내주는 불법 영업이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 된 지 오래다. 대부분의 민간센터는 인지 재활 프로그램에 필요한 교구 구입 같은 작은 투자조차 하지 않으며, 인건비를 줄여서 수익을 내고 있다. 요양보호사는 김장 담그기 등 부당한 요구나 성희롱 같은 괴롭힘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이용자가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하면 곧 해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대체할 요양보호사는 넘쳐나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요양보호사의 노동권이 침해돼도 이용자를 잃을까 봐 관리와 보호조치를 하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도입 이후 시민사회에서는 이러한 현실에 꾸준히 비판을 제기했다. 재가요양기관은 민간 운영률이 99.3%이고 국공립은 0.7%에 불과하다. 재원은 사회보험인 장기요양보험제도에서 지급되는데, 서비스 제공은 민간이 담당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돌봄의 공공성’에 대한 요구였다. 그래서 마침내 2019년 서울·대구·경기·경남을 시작으로 2023년까지 16개 광역시도에서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는 사회서비스원이 문을 열었다.
전국의 사회서비원 중에서도 서사원의 운영은 모범적으로 평가됐다. 돌봄 노동자를 유일하게 월급제로 고용했고, 민간에서 서비스 제공을 기피하는 중증 이용자 혹은 복합 질환으로 더 많은 돌봄이 필요한 경우는 2인 1조로 돌봄 노동자를 파견했다. 또 인지 재활 프로그램이 도움된다고 판단되면 요양 등급과 상관없이 각종 교구를 가지고 방문해 적극적인 돌봄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2020년 코로나19 초기에 대면 돌봄이 전면 중단됐을 시기에도 요양보호사들은 방호복을 입고 긴급돌봄에 나섰다. 2022년까지 요양보호사와 장애인활동지원사 300여 명이 2만1000시간 이상 긴급 돌봄을 제공했다.
무엇보다 서사원은 이용자 중심의 좋은 돌봄이 무엇인지를 고려한 서비스 계획 설계, 모니터링, 사례 연구 등이 전문적으로 진행되었다. 민간센터에서도 이런 과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윤 창출이 목표인 만큼 ‘좋은 돌봄’보다는 이용자가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우선되는 경우가 상당하다. 그래서 김춘심 요양보호사도 “만약 민간센터였다면, 신체 움직임이나 식단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더라도 이용자가 표면적으로 요구하는 서비스만 제공했을 것 같다”라고 말한 것이다. 서사원이 완벽하진 않았으나, 공공돌봄의 좋은 모델을 만들어가는 중이라는 사실은 명백했다.
하지만 서사원의 모든 서비스는 지난 7월 종료됐다. 4월 국민의힘 서울시의원들이 중심이 된 ‘서울특별시 사회서비스원 설립 및 운영 지원 등에 관한 조례 폐지조례’가 가결된 이후 3개월 만이었다. 시의원들은 ‘서사원이 인건비가 많이 들고 수익성이 낮다’고 계속 지적해왔다. 서사원 조례 폐지를 제안한 국민의힘 강석주 의원 등은 “당초 설립 취지와 달리 공적 사회서비스 제공기관으로서 공공성을 담보하지 못함”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서사원이 공공성 담보를 하지 못했다는 정확한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금융자본의 이윤 창출 도구가 된 돌봄
애초 서사원 축소 및 폐지 시도는 2022년부터 본격화됐다. 그해 12월 국민의힘 서울시의원들 중심으로 예산 142억원 삭감이 결정되었고, 서사원 산하 노원종합재가센터가 가장 먼저 문을 닫게 됐다. 당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나는 이렇게 발언했다. “2020년 코로나 직후 질병이나 장애를 가진 자녀를 돌보던 부모들의 동반자살 소식이 더 많이 들립니다. 저는 이것을 ‘돌봄 과로사’라고 명명한 적이 있습니다. 생존과 최소한의 안전을 위한 돌봄을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하는 현실이 만든 비극입니다. 돌봄을 소방서·경찰서처럼 필수적 공공재로 접근하는 관점이 필요합니다. 서사원의 설립 취지는 이윤 창출이 아닌 공백 없는 좋은 돌봄 제공입니다. 소방서에 수익성을 묻지 않듯 사회서비스원에도 수익성을 물어서는 안 됩니다.”
서사원 폐지 이전에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찾동)’도 폐지됐다. 송파 세 모녀 사망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만든 게 ‘찾동’이었다. 65세 이상 고령자 및 빈곤 가구 등을 일괄적으로 방문하고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혼자 집에만 누워 있던 한영희 어르신이 장기요양제도를 적용받고, 서사원에 연결될 수 있던 것도 바로 찾동을 통해서였다. 그런데 오세훈 시장이 보편적 복지 형태였던 찾동을 빈곤 위기 가구 중심의 선별 방문으로 전환하면서 선별적 복지로 퇴행시켰다. 서사원 폐지는 서울시 국민의힘 의원들과 오세훈 시장이 주도했지만, 윤석열 정부가 작년에 발표한 ‘사회서비스 고도화 추진 방향’의 흐름 안에 있으며,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말했듯 사회서비스의 시장화·산업화를 의미한다.
서사원 폐지에 목소리를 높이는 동안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이 시작됐다. 금융자본이 돌봄 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기반도 하나씩 마련되는 중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8월8일 보험개혁회의에서 금융사가 방문요양서비스 시장에 직접적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고 밝혔다. 돌봄이 거대 금융자본의 이윤 창출 도구로 잠식됐을 때, 어떤 현실이 벌어질지 깊이 우려된다. 자본이 시장을 확장할 때, 공공성은 늘 위협이 되고, 사회서비스 시장화·산업화에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몇 년간의 정책 흐름을 보건대, 서사원이 ‘좋은 공공돌봄’을 선도적으로 수행한 게 바로 폐지 원인이 된 듯하다.
이처럼 한국에서 ‘돌봄’이 거듭 퇴행하고 있지만 유엔은 지난해 10월29일을 ‘국제 돌봄의 날’로 지정했다. 돌봄 문제를 적절히 풀어가지 않으면 심각한 글로벌 돌봄 위기 및 성불평등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한국의 시민사회는 ‘국제 돌봄의 날’에 돌봄 공공성 강화와 돌봄 사회 전환을 향한 증언대회, 토론회, 돌봄 행진 등을 기획하고 있다. 서사원 폐지 규탄을 포함해 윤석열 정부의 사회서비스 정책도 정면으로 비판하고자 한다.
정부 정책 규탄을 넘어 공공돌봄을 어떤 식으로 확장해갈 것인지를 놓고 다양한 영역에서 시민사회의 토론과 정부의 경청이 절실하다. ‘나는 하기 싫지만 누군가 안전하게 저비용으로 해줬으면 하는 돌봄’이 아닌, 우리 모두가 민주적으로 돌봄을 주고받는 돌봄 사회를 향한 전망을 그려볼 수 있길 바란다.
조한진희 (다른몸들 대표·<돌봄이 돌보는 세계> 편저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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