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 "이준익 감독님 덕분에 평전 맛까지 알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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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을까.
다양한 사람들의 독서 근황을 알아보는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 코너가 흥미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를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일기 릴레이입니다.
소설가 김연수->'영혼의 슬픔' 저자 이종영->출판기획자 조원식->만화가 박흥용->임지훈 카카오 대표에 이어 박흥용 작가가 지명한 이준익 감독 편, 그리고 지난 회에 임정욱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이 나갔습니다.
오늘은 이준익 감독이 추천한 박정민 배우 순서입니다.
이번엔 젊은 친구들한테 물어보면 어떨까 싶네요. 배우 박정민. 영화 '동주'에서 송몽규 역 맡았던. 젊은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겠네요. /이준익 감독
이준익 감독 편 바로가기
박정민 씨와는 전화로 책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일요일 저녁이었습니다. 차량으로 이동 중에 전화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영화 '동주' 개봉 후 마지막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가는 길이라고 하더군요. 신도림에서 중국동포들을 상대로 상영회를 연 후 만남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관객과의 대화는 얼마나 하나요?
7-8회는 한 것 같아요. 보통 이 정도는 안 하는데.
-지금까지 반응은 어떤가요?
좋은 것 같아요.
-예상하셨어요?
이 정도까지는 예상 못 했어요. 이준익 감독님은 예상하셨는지 모르겠는데. 워낙 예산도 작고 주연도 강하늘씨 빼고는 거의 다 비교적 무명의 배우들이고, 영화도 흑백이고 하다 보니, 저는 손익 분기점만 넘겨도 좋겠다 싶었는데 어제 관객 수가 백만을 넘겼어요. 그래서 지금은 저희끼리는 축하 분위기죠.
-이번 영화 출연 제의는 언제 받았고 촬영은 언제 들어갔죠?
작년 1월쯤이었어요. 물론 영화 준비는 그 전부터 하고들 계셨고. 저랑 하늘이(둘은 아주 친한 사이라고 했다. 나이는 정민씨가 세 살 위다.)한테 출연 제의가 들어온 것은 작년 1월쯤이었고 2월 말부터 촬영해서 4월 초에 끝냈습니다.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네요.
네, 워낙 예산이 적으니까 한 달 안에 찍어야 했어요.
-이번 영화 출연은 박정민씨가 택한 건가요?
저는 아직 시나리오가 막 들어와서 고르는 수준은 아니구요. 저희 회사가 황정민 형님께서 만든 회사인데, 감독님과도 친하고 해서 이번 영화에 추천을 해주셨나봐요. 감독님도 제가 출연한 전작 몇 편을 보시고 생각하고 계셨던 모양이고. 하늘이나 저에 대해. 그렇게 해서 캐스팅됐죠.
-선택의 여지가 있었던 게 아니라 좋은 기회가 와서 맡게 된 거란 말씀이군요.
저한테는 엄청나게 큰 기회로 다가온 거죠.
-처음 시나리오 봤을 때는 어땠어요? 송몽규라는 인물은 아셨나요?
전혀 몰랐죠.
-윤동주 시인은 아셨을 테고...
그럼요. 하지만 윤동주 시인도 그렇게 자세히는 몰랐어요. 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처음 대본을 봤는데, 이게 신연식 감독님이 쓰신 건데, 그분이 문학적인 면이 있거든요. 그게 동주라는 영화와 잘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었어요. 시나리오 중간중간에 윤동주 시인의 시가 나오면서. 굉장히 좋은 영화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는 뒤도 안 돌아보고 하겠다고 했죠. 저한테 시켜주는 것 맞냐고 계속 확인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애당초 배역도 송몽규로 지정이 됐던가요?
처음에는 대본을 그냥 한번 보라고 그랬어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얘길 해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내가 윤동주 하겠다고 하면 어떡할 거냐"고 했더니, "윤동주 하고 싶냐"고 해요. "하고 싶다"고 하니까, "아 근데 그건 안 될 거 같다"고 해요. 그래서 "알겠습니다. 송몽규 선생님 하겠습니다." 그렇게 된 거예요.
송몽규 선생(1917-1945)
-송몽규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처음엔 '이런 사람이 실제 있었던 사람이라구?'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그 다음에는, 이게 시나리오 맨 앞 장에 뭐라고 쓰였냐면요, '7할의 진실과 1할의 허구적 구성과 1할의 어떤 상상과..' 이런 식으로 돼 있었어요. 그래서, '아 허구의 인물일 수도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처음엔 들었어요.
그런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까 그분이 실제로 계셨던 분이고, 윤동주 평전을 읽어보니까 대본에 나와있는 송몽규 선생의 행동들은 100% 팩트였던 거예요. 이분이 하셨던 것은 전혀 허구도 상상도 없었어요. 그래서 더 놀라웠죠. 공부를 하면서 더 멋있는 분이구나 알게 됐죠.
-윤동주 평전을 읽으셨다고 했는데 이번 영화 때문에 또 다른 책을 읽은 게 있나요?
송몽규 선생님에 대한 기록은 별로 남아있지 않아요. 그래서 대본에 나와있는 그분 언행들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어렸을 때 공산주의에 심취했던 부분 같은 게 있어요. 그러면 저도 '이분이 왜 공산주의에 빠지셨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으니까, '공산당 선언' 같은 책도 보고...
또 저희가 학교에서 역사 교육 받을 때는 주로 궁중 역사를 배우잖아요. 서민들 삶은 잘 배우지 않는데, 그분들은 북간도에서 태어나 살았던 서민들이니까 어떻게 사셨는지 알기 위해서 일제 시대 서민들 생활에 대해 쓴 책도 보고 그랬어요.
또 신채호 선생이 쓰신 책도 보고 하면서 공부를 계속 했어요. 영화 말미에서 송몽규 선생이 연설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일본 패전 직전 상황에 대해 열변을 토하시는 거거든요. 그때 전황을 알아야 제 나름대로 대사를 할 수 있으니까, 1차 세계 대전부터 전쟁 역사도 공부하고 그랬어요.
-배우들은 영화를 찍기 전에 보통 그런 공부들을 하나요?
제 경우는 어떤 캐릭터를 맡느냐에 따라 공부를 열심히 할 때도 있고 아예 안 할 때도 있어요. 이번 송몽규님 경우에는 좀 공부를 많이 했어야 됐던 역할이어서 책을 끼고 지냈어요.
-아예 안 읽는 경우는 어떤 경우죠?
예전에 '들개'라는 영화를 찍을 땐데, 그 친구는 세상에 대한 반항심으로 똘똘 뭉쳐 있고 언제 어떻게 튈지 모르는 인물이었어요. 가만 들여다보면 아주 철학적 지식도 있고 논리적 지식도 있고 한데, 우선은 그 친구의 성향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만 알면 됐어요. 그래서 제가 사전에 대본을 붙들고 막 어떻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계산을 전혀 안 하고 촬영에 들어갔던 영화였어요.
그냥 대본을 보고 전체적인 그림만 스케치북에 심벌신을 그려만 놓고 나머지는 그냥 현장에서 내키는 대로 해보자, 그런 느낌으로 했어요. 그런 역할들이라든가 아니면 조연으로 가볍게 나오는 역할들은 사실 공부를 너무 하고 들어가면 오히려 그 맛이 떨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개요만 잡아놓고 현장에 가서 해보자는 생각으로 하죠.
-이번에 송몽규 연기는 만족스러웠나요?
아뇨. 100% 만족은 못 했어요. 열심히 했다는 자부심은 있는데. 제가 처음 그 영화를 본 게 기자 시사회에서였어요. 그때 제 실수가 계속해서 영화에서 보이니까, 그분께 너무 죄송스러운 거예요. 연기를 잘 해서 잘 소개를 해드리고 싶었는데, 실수가 군데군데 보이니까 죄송스러운 마음이 드는데, 마지막에 그분 사진이 올라가면서 저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버려서... 그때 사진도 찍히고 했죠.
-어떤 부분이 그런 실수로 보이던가요?
남들이 봤을 때는 모를 수도 있는 작은 부분들이긴 하지만, 예를 들어 어떤 장면에서 걸음걸이 경우에도 그분은 그렇게 걷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떤 장면은 저런 투로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 같은데 하는 부분들이 몇 군데 있었어요.
사실 이렇게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위인들을 주제로 한 영화 경우에는 굉장히 조심스럽잖아요. 자칫하면 그분뿐만 아니라 생존한 후손들까지 욕되게 할 수도 있어서 연기할 때도 굉장히 조심스럽게 했는데 막상 영화를 보니까 아니나 다를까 그런 게 보이는 거예요.
-혼자만 아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
다행히 이번에 저한테 연기를 못했다고 하시는 분은 별로 없는데, 그래도 "이런 부분들은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고 말씀해주신 분은 몇 분 계셨어요. 그런 분들은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속이 상하는 다른 한편으로는 참 감사했어요.
-송몽규는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하세요?
음...(한참 생각하다가) 이번 영화에서 편집이 돼서 잘려나간 장면이 있어요. 거기에 동주가 송몽규 선생님을 표현하는 말로 이런 게 있어요. "이 친구는 불나방 같은 친구야, 같이 있으면 타들어가" 이런 대목이에요. 저는 그분이 좋은 의미의 불나방 같은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온통 불의였던 그 시대에 정의를 찾기 위해서, 사실 혼자 그렇게 행동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기도 한데.
송몽규 선생 묘소 앞에서 셀카
얼마 전에 송몽규 선생님 동생의 따님이, 지금 한국에 계시는데, 그 장조카 분이 저희 무대 인사회 때 오셔서 저한테 어떤 종이를 몇 장 주시더군요. 어렸을 때 아버지나 할아버지한테서 말씀 들어서 기억하고 있는 송몽규 선생에 대한 것들을 적어 주신 거예요.
거기에 무슨 내용이 있냐면, 송몽규 선생님이 독립운동 하러 일본에 갈 때 아버님이 굉장히 반대하셨대요. 그때 송몽규 선생님이 "일본에 가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그 안에 들어가서 보고 싶은 것이 있고, 변하게 할 것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칼을 아버지 앞에 내놓고는 "허락해 주시지 않으면 저는 여기서 죽겠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해서 허락을 받고는 일본으로 떠나셨다는 거예요. 그런 분이었던 거죠.
굉장히 불나방 같은 분이었던 거예요.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 자신이 생각하는 혁명을 위해서는 아버지 앞에 칼을 내려놓는 분이었던 거죠. 그분이 주신 종이 몇 장이 또 한번 제 생각을 굳건하게 만들었어요. 참 대단하신 분이고, 이 시대에 어떤 사람도 쉽게 따라하기 어려운 분이었던 거죠.
-지난번 이준익 감독님 인터뷰 때, '동주'를 찍으면서 단순히 시인삶을 그린 게 아니라 우리 역사를 세계사적 관점으로 끌어올리고 싶었다고 하시더군요. 거기서 중요한 인물이 송몽규였다고 하셨어요. 그런 말씀을 많이 하시던가요?
네, 영화 준비하고 촬영 들어간 지 얼마 안 돼서 그 말씀을 하시더군요. "내가 이 영화를 왜 찍는 줄 아느냐, 이 영화는 과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영화다. 그리고 송몽규를 보여주고자 하는 영화이기도 하다"고 하셨어요.
마지막에 일본 순사를 상대로 열변을 펼치는 장면에서 송몽규의 대사가 사실은 감독님이 하시고 싶은 말씀이셨을 수 있어요. 너희들(일제)이 국제법 따라 한다고 하지만 다 명분이고 요식 행위이고... 이런 말들을 토해내는데. 그런 걸 설명해주시더라구요.
그때 제가 또 한방 맞은 것 같았어요. 저도 열심히 준비하기는 했지만 감독님의 그런 의도가 있는 줄은 몰랐거든요. 이 영화를 저만의 어떤 기회로 생각하고 있었던 마음조차 부끄러웠어요. 그 때 '아, 내가 좀 더 인식을 갖고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크게 들었던 순간이었죠.
-아무래도 영화의 주인공, 혹은 또다른 주인공은 동주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경쟁심 같은 건 안 들었나요?
하하하, 경쟁심이 안 들 수 없죠.(웃음) 아니, 경쟁심이 들어야만 해요. 왜냐 하면 윤동주와 송몽규가 영화의 두 축이란 말이죠. 경쟁심 없이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해버리면 한 축이 무너져내릴 거라고 생각했어요. 선의의 경쟁심인 거죠. 솔직히 하늘이가 잘하면 질투가 날 때도 있어요.
'어, 저 녀석 봐라, 준비 많이 했네' '오늘 왜 저렇게 잘하지?' 그러면서 제가 더 준비를 열심히 하게 돼죠. 제 모습을 보고 하늘이도 분명히 그렇게 할 테고. 그러면서 시너지를 일으키는 거고 그게 영화에도 도움이 되는 거죠.
저는 어느 영화든 주인공 혹은 주연배우들끼리 어느 정도 경쟁심이 필요하다고 봐요. 다만 그게 시샘이나 적대감이 돼버리면 답이 없게 되지만, 저 배우한테 지면 안 되겠다, 대등하게 가줘야겠다는 식의 좋은 의미의 경쟁심은 좋은 거라고 봐요.
윤동주 시인이 다녔던 일본 릿쿄대학교 전경
-이번에도 그런 경쟁심이 잘 작동했나요?
그럼요. 사실 저는 이번 영화를 위해 준비를 진짜 많이 했어요. 하늘이는 이미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스타 배우이고, 저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인지도가 떨어지고 아는 사람만 아는 독립 영화 배우였으니까, 저한테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굉장히 준비를 열심히 했고, 사실 촬영 첫 날 현장에 갔을 때는 '하늘이가 너무 바빠서 준비를 못 해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어요.
저야 시간이 많아서 많이 준비할 수 있었는데, 그 친구는 워낙 바빠서 얼마나 준비를 할 수 있을까 싶었죠. 하지만 정작 제가 충격을 받았어요. 하늘이가 준비를 워낙 많이 해와서 오히려 제가 졌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경쟁심이 불타기 시작했어요. 어떤 영화를 위해서라도 내가 여기서 지고 무너지고 포기해버린 순간 그 영화는 의미가 없어져버리니까. 그래서 더 열심히 준비를 하게 됐어요.
또 감독님도 약간, 그렇다고 일부러 부추기는 건 아니고, 굉장히 솔직한 분이라서, 하늘이와 제가 연기할 때, 제가 좀 더 잘하면 "하늘아, 이리 와봐. 정민이 연기 좀 봐. 진짜 잘하지 않냐" 이렇게 얘기를 하시고, 반대로 하늘이가 잘하면 저보고 "하늘이 연기 보고 배워라"고 하셨어요. 그런 식으로 좋은 경쟁심이 계속 생기게 하셨어요.
하늘이랑은 5년이나 오래 알고 지냈던 친구니까, 미운 감정 같은 것은 전혀 없었고. 전체적으로 호흡이 잘 맞는 촬영 현장 분위기였어요.
-두 사람 나이가 어떻게 되지요?
제가 서른이고 하늘이가 스물일곱일 거예요.
-영화 개봉하고 행사 다니시느라 바쁘실 것 같은데 책은 읽고 있는 게 있나요?
최근에 읽은 책이 두 권 있어요. 사실 마저 읽고 이야기하고 싶어서 전화 통화를 미뤘어요. 하나는 마루야마 겐지라는 일본 작가가 쓴 '달에 울다'라는 소설이고, 다른 하나는 파트릭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라는 단편집이에요.
-어떻게 읽게 되셨죠?
'달에 울다'는 저자인 마루야마 겐지의 다른 책을 예전에 저의 지인 한 분이 선물로 준 적이 있어요. '소설가의 각오'라는 산문집인데 아주 특이했어요. 작가가 일본내에서도 문학계에 존재하는 파벌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혼자 맞서서 싸우는 듯한 느낌의 글을 써온 작가예요.
사진을 봐도 마치 야쿠자처럼 굉장히 무섭게 생겼어요.(웃음) 문장 자체는 간결하고 읽기도 쉬운데 던지는 메시지는 확실해서 인상적이었어요. 그 책을 읽고 나서 그분 소설이 한번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사서 보게 됐어요.
'깊이에의 강요'는 제가 한 달에 한 번씩 한 인터뷰 월간지에 칼럼을 써온 게 있어요. 한 3년 됐는데 소재가 조금씩 떨어져 가는 거예요. 처음엔 재미있게 글을 썼는데 어느 순간 깊이가 없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컴퓨터 모니터에다 그냥 '깊이에의 강요'라고 네이버에 쳐봤어요.
마침 그런 제목의 책이 뜨는 거예요. 어, 이건 뭐지 하고 봤더니 쥐스킨트의 단편집이더라구요. 그 작가가 쓴 '향수'랑 '콘트라베이스'도 읽어 봐서 알아봤죠. 바로 서점에 가서 뽑아들고 읽게 됐죠.
-칼럼을 3년 동안 썼다면 만만찮은 일일 텐데 어떻게 시작한 거죠?
예전에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유행할 때 다이어리 같은 걸 재미있게 쓰는 걸 좋아했어요. 그런 글을 써가던 중에 제 데뷔작 '파수꾼' 개봉할 때 홍보 마케팅해주는 과장님이 그 다이어리를 보고는 파수꾼 블로그에 메뉴 하나 열어줄 테니 촬영장 뒷이야기 같은 걸 써보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써봤는데, 당시 파수꾼 팬덤 현상 같은 게 생겼는데 그분들 사이에서 제 글이 회자됐어요. 그렇게 소문이 나고 해서 어떤 기자 분이 권유해서 칼럼을 쓰게 됐어요. 월 1회씩.
-최근에 읽으셨다는 두 권의 책을 간략히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곧이어 그의 책 소개가 줄줄 이어졌다. 순간, 전화 너머로 대본을 펴들고 읽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물론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소설의 플롯과 인상적인 장면들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배우들이 영화에서 긴 대사도 곧잘 소화해내는 특유의 암기력이 떠올랐다.)
'달에 울다'의 경우는 중편 소설을 두 편 묶은 거예요. 첫 번째가 '달에 울다'이고, 두번째는 '조롱을 높이 매달고'인데 첫 번째가 더 좋았어요. 시골 마을에서 사과밭 경작하며 사는 사람들 이야기인데, 한 남자가 촌장 곳간을 털다가 잡혀서 마을 남자들 습격을 받고 죽어요. 그 선봉에 선 사람이 주인공의 아버지고, 죽은 남자의 딸이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자예요.
그 여자는 아버지가 죽은 후 손가락질을 받고 자라고, 주인공은 그 여자를 사랑하기도 하지만 그 여자의 아버지를 죽여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는 사람들에게 환멸을 느껴요. 그렇게 10대부터 40대까지 겪는 사랑과 이별, 인생 이야기예요. 마지막에 사람들은 도시로 떠나고, 남은 사람은 영혼이 없는 얼굴이 되고, 여자가 한겨울에 돌아와서 끝나는데, 참 고독해요.
이 소설이 좋은 게 꼭 영화 같아요. 마루야마 겐지가 "시는 너무 갇혀있고 소설은 너무 자유분방하고 그 중간이 영화 같다"고 했을 만큼 영화를 아주 좋아한대요. 이 소설도 영화처럼 썼어요. 읽는 중에 영상이 그려지는 거죠. 그런데 아주 건조하고 주인공의 삶이 고독해요.
아무도 그의 인생에 관여하지 않고, 부모조차 별로 관여하지 않고 혼자 살아가고 혼자 사랑하는데, 주인공 방에 병풍이 있어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그려져 있고, 비파를 켜는 법사가 그려져 있는데, 거기에 주인공을 비롯해서 여러 사람이 계속 투영되면서 영화로 치면 판타지처럼 이야기가 진행돼요.
'깊이에의 강요'라는 책은 '깊이에의 강요'라는 소설과 '승부'라는 단편이 들어있는데, 그림을 굉장히 잘 그리는 여류화가가 어느날 비평가로부터 깊이가 부족하다는 평을 듣고 충격에 빠져서 깊이가 뭔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그림을 그리지 못해요. 깊이의 강박 때문에 결국엔 백 몇십 미터 송신탑에서 몸을 던져 자살해요. 그러자 그 비평가가 "이 얼마나 아름다운 죽음인가" 이런 식으로 180도 바뀐 엄청난 비평을 해요.
신기한 게 그 여자가 깊이를 찾다가 서점 여자에게서 책을 추천받는데 비트겐슈타인이에요. 아무것도 이해는 못하면서 책을 받아든 거예요. 그때 나오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이, 저도 비트겐슈타인에 대해서는 잘은 모르는데, 너무 좋은 말이 있어서 노트에 적어둔 게 있는데, "고독하게 생활할 수는 있다. 하지만 타인의 자그마한 호의도 없이 살아가기란 매우 어렵다"라는 문장이 있어요.
이게 '깊이에의 강요' 주인공과 맞닿아있는 표현 같아요. 주변 사람이 조금만 호의나 배려를 베풀어줬어도 그렇게 죽지는 않았을 텐데, 계속 혼자서 깊이의 강박에 눌려 자살한 거니까.
'달에 울다' 주인공도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갔으면 그렇게 외롭고 고독하게 살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계속 들더군요.
'깊이에의 강요' 두 번째 소설은 '승부'라는 소설인데, 동네에서 체스를 가장 잘 둔다는 심술궂은 노인이랑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청년과 체스를 둬요. 그런데 동네사람들은 처음 보는 청년을 응원해요. 노인은 정석대로 체스를 두는데 이 청년은 마치 알파고처럼 알 수 없는 수를 계속 둬요. 마을 사람들은 '어, 이건 뭐지' 하면서 계속 응원하면서 청년한테 몰입해요.
노인조차 '이건 뭐지' 하면서 계속 머리를 짜가며 체스를 둬요. 결국엔 노인이 정석으로 이겨요. 알고 보니 청년은 체스를 둘 줄 모르는 애였던 거죠. 마을 사람은 아주 허탈하게 그 자리를 떠요. 노인도 이제 나는 체스를 두지 않겠다고 하고는 자리를 떠요. 굉장히 고독하게. 아무도 그의 편이 없었던 거예요. 체스를 너무 잘 뒀고 심술궂기까지 했던 양반이었으니까. 마을사람들은 처음 보는 사람을 응원하고, 처음 보는 사람이 졌다고 허탈해 하고. 그 청년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떠나요.
그런 걸 보면서, 요즘 그런 책을 재미있어 하는 내가 그런 감정과 밀착돼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어제도 다시 한번 꺼내 본 책이 요시다 슈이치의 '퍼레이드'라는 책이거든요. 간단히 말씀드리면 한 멘션에서 다섯 명의 남녀가 친구처럼 동거해요. 겉으로는 서로 잘하는 것 같은데 사실은 서로가 필요가 없는 사람들예요. 어떤 그때의 필요에 의해서만 함께 사는 친구들인 거죠.
다섯 명을 옴니버스식으로 한 명씩 집중해서 보여주는데, 다 고독한 인간들이예요. 하지만 서로 조금씩 배려하고 호의를 보여주고, 어떨 때는 철저히 자기 경계를 확실히 하고. 그러다 보니 서로 잘 사는 것처럼 보여요. 심지어 맨 마지막에 남자 한 명이 연쇄살인범이었는데, 또 범죄를 저지르고 와도 그 사람들은 마치 아무일 없다는 듯이 TV를 보면서 끝나요. 그 소설이 떠오르더라구요.
-소설을 꽤 많이 읽는 것 같네요.
네 소설을 좀 좋아해요. 그런데 이준익 감독님은 소설 그만 읽고 평전 좀 읽으라고 하세요. 그래서 평전도 읽어보려고 하는데 기본적으로 소설을 좀 좋아해요. 저도 원래는 학창시절에 책을 잘 안 읽었어요. 그러다 소설로 책에 입문하다 보니까 계속 소설을 읽게 되더라구요.
-입문이라면 언제죠?
스무 살 때요. 대학 들어간 다음에요.
-요즘은 평소 책을 얼마나 읽으세요?
그래도 한 달에 두세 권은 읽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읽으려고 한다면 실제로는 어느 정도 읽나요?
한 달에 한 권밖에 못 읽을 때도 있구요. 많이 읽을 때는 서너 권 읽을 때도 있고, 때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주로 소설인가요?
절반 정도는 소설, 절반은 뭐 시집도 있고, 역사책도 있고, 여러가지가 있어요.
-좋아하는 작가가 있나요?
김영하, 박민규 작가를 좋아해요. 그분들 책으로 입문하게 된 거라서. 그분들 책이 읽기 쉽고 재미있어요. 그래서 항상 그분들에 대한 기대가 좀 있죠.
-다른 배우들은 책을 좀 읽는 편인가요?
글쎄요. 많이 읽는 분들도 많이 봤구요. 안 읽을 것 같은 분들도 있구요. 개인마다 다른 것 같아요.
-직업적으로는 배우라는 일이 책과는 어떤 관계에 있나요?
제 경우에는 배우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보는 편이예요.
-배우들 사이에 그렇게 이야기가 되나요?
저는 어디 가면 책 많이 읽으라고 이야기도 하고 다녀요. 왜냐 하면 실제로 도움이 많이 되기 때문이에요. 소설책 같은 경우는 시나리오와는 다르게 심리 묘사가 아주 정확하고 세밀하거든요. 행동도 세밀하게 나와있고. 그래서 그런 걸 읽는 걸 좋아해요.
또 이번에 이준익 감독님 덕분에 평전이라는 장르의 책을 읽으면서, 아, 이걸 왜 읽으라고 하는지도 알게 됐어요. 평전도 굉장히 디테일하게 나와있는데 그게 다 팩트잖아요. 소설은 기본적으로 허구지만. 그러다 보니 평전이 진짜 도움이 많이 되더라구요. 작가적 상상력에 지배되는 게 아니니까.
영화 '동주' 하숙집 장면 촬영지 인근 서도역 앞에서
-이력이 특이하던데요. 고려대 입학했다가 나와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와 영상원 영화과를 차례로 거쳤더군요.
제가 사실은 원래 꿈이 배우가 되는 거였어요. 그런데 중학교 때 공부를 좀 잘해서 부모님 기대가 컸던 거예요. 대뜸 배우가 되겠다는 말을 못하겠더군요. 고등학교 때도 시골(공주)이다 보니 연기를 배울 만한 데가 없었어요. 하지만 영화는 혼자서도 공부할 수 있겠다 싶어서 영화감독이 되기로 했어요.
영화는 동네 비디오가게에 가서 보면 되니까. 내가 내 영화를 찍으면서 내가 나오면 배우가 되는 거지, 그렇게 안일한 생각을 했던 거죠. 그렇게 고등학교 때 부모님께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했다가 많이 혼도 나고. 사실은 예종 영상원 준비를 그때부터 한 거에요.
그런데 고3 때 어떡하다 대학에 떨어지고, 아버님께서 너무 충격을 많이 받으셔서 몸까지 안 좋아지셨어요. 이번까지만은 아버지 기대에 부응해야겠다 싶어서 떨어지고 나서부터 공부를 열심히 해서 고려대에 입학했어요.
그런 뒤 이듬해에 한예종 영상원에 바로 합격이 돼서 고대는 나오고 영상원에 들어갔어요. 어쩌다 극단까지 들어가게 됐고요. 극단에서 공연이 너무 하고 싶은데 연기는 배우지 못했고 선배들도 영화과 학생으로만 알고 있으니까, 연극원으로 전과를 신청했어요. 운이 좋게 들어가게 됐고 영화에 데뷔도 하게 됐어요.
-그 사이 부모님은 마음이 바뀌셨나요?
사실 고등학교 때 많이 싸웠구요. 그때 져주셨고, 고대에서 나온다고 할 때는 저보고 알아서 하라고 하셨어요. 그때부터는 내놓으신 거죠.(웃음)
-집에서 형제가 어떻게 되지요?
장남입니다. 밑에 여동생 하나 있구요.
-이번에 '동주'를 부모님도 보셨나요?
네, 시시회 때 보시고 어머니는 "네가 나왔던 영화 중에 최고"라고 하셨어요. 기분이 좋았죠. 제 동생은, 제 영화를 보고 그렇게 펑펑 울고 나오는 걸 처음 봤어요. 눈이 완전 밤탱이가 됐길래, "언제부터 그렇게 애국자가 됐냐"고 놀렸죠. 고맙더라구요. 영화를 좋게 봐주고 어디 가서 홍보도 해주니까.
-정민씨도 이번 영화가 본인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하나요?
아..(오래 뜸을 들이다가) 최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파수꾼'이랑 '동주'라고 할 수 있어요. 동주는 제가 정말 열심히 열심히 했던 작품이고, 의미가 있는 작품이고, 사람들도 많이 알아주시고 하시니까 그런 의미에서 제게 최고의 작품이지요.
파수꾼 경우는 제 데뷔작이면서 연기를 잘 했다고 평가받게 된 영화였어요. 감독님이랑도 사이가 워낙 좋고 제가 좋아하는 감독님이고, 그래서 죽이 맞아서 찍었던 작품이라서. 지금까지는 두 작품이 제게 최고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배우라고 했는데 이번 '동주' 통해서 좀 뜬 것 같나요?
아뇨. 그런 건 같진 않아요. 아직도 길에 지나가면 사람들은 잘 몰모르고, 어디서 엄청나게 많이 찾아준다든지, 뭐 그런 걸 바라는 건 아니지만, 광고가 들어온다든지 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스타덤에 올랐다고 하기에는 과한 표현이고, 실제로 그렇지도 않고요. 그저 그냥 이 영화가 나와서 제게 가장 큰 의미라고 한다면 영화 자체의 의미가 가장 크고요, 송몽규 선생을 소개할 수 있었다는 의미가 크죠. 그리고 저라는 배우에게 있어서는 5년 전 파수꾼에 나왔던 그 배우가 지금 5년 후 동주라는 영화에 다시 나와서, "아, 맞다 이 배우가 있었지" 하고 한 번 더 각인시켜줄 수 있었던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일찍부터 배우가 꿈이었다고 하셨는데 지금 배우가 됐으니 만족하세요?
음.. 사실 그때 생각했던 배우의 모습... 지금 제가 서른인데, 그때 생각했던 서른의 모습은 아니예요. 배우라는 게 그때 생각했던 화려하고 멋있는 그런 건 아니더라구요. 해보니까. 그리고 서른 살이면 뭔가 돼있겠지 하고 예상했는데 아직은 아무것도 된 게 없어요. 오히려 어떻게 보면 그때보다 더 힘들고 고민이 많고 하니까... 글쎄요. 엄청나게 만족한다 이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다는 느낌?
그럼요. 그것 때문에 하고 있는 거구요. 그런 희망조차 없다면 안 하겠죠.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고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생각이죠. 제가 생각했던 서른의 모습을 마흔에만 이룰 수 있어도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지금은 들어요.
-'동주' 후에 섭외가 늘었나요?
조금 그런 게 있는 것 같긴 해요.
-지금 촬영에 들어간 작품이 있나요?
'더 킹'이라는 영화를 촬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획이나 목표는?
아직 확정된 게 아니어서 말씀드리기는 조심스럽긴 한데, 올해 안에 뭔가 또 좋은 작품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꼭 한번 해보고 싶은 연기나 역할이 있나요?
저는 사실 그런 게 없어요. 인물은 제가 만들기 나름이니까. 어떤 게 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별로 없어요.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면 그런 역할은 안 들어오더라구요.(웃음)
-마지막으로, 그 다음 무슨 책을 읽는지 궁금한 분이 있으세요?
몇 분 있는데요. 가수도 괜찮을까요. 제가 아주 좋아하는 뮤지션인데요 에피톤 프로젝트요. 차세정이라는 분이 객원 보컬도 쓰고 직접 부르기도 하는데. 제가 그 가사를 좋아해서요. 어떤 책을 읽으시는지 궁금합니다. 일면식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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