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봉을 든 사나이 박기서, 안두희 응징과 그의 ‘정의’ 기억

“정의봉을 든 사나이” 박기서 별세… 백범 김구 암살범 응징한 그 남자의 마지막 이야기

오늘은 우리 사회에 깊은 울림을 주는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범 안두희를 처단한 박기서(朴琦緖) 씨가 7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는 소식입니다. 7월 10일 오전 0시 10분, 경기도 부천의 한 병원에서 지병으로 영면에 드셨습니다.

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평범한 버스기사, ‘정의’를 향한 외길 인생

박기서 씨는 한때 평범한 시내버스 기사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한 깊은 존경심이 자리 잡고 있었죠. 그는 “안두희는 국가와 국민 앞에 죗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오랜 고민 끝에 ‘정의봉’이라 적힌 40cm 나무 몽둥이를 들고 안두희의 자택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역사의 응어리를 직접 풀어냈습니다.

역사의 응어리를 풀다

1996년 10월 23일, 박기서 씨는 인천 신흥동에 거주하던 안두희를 찾아가 응징했습니다. 그는 단 7시간 만에 스스로 경찰서에 자수하며 “어려운 일이었지만 나는 당당하다. 백범 선생을 존경했기에 행동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 한 마디에 그의 모든 철학이 담겨 있었죠. 그는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지만, 1998년 김대중 정부의 특별사면으로 조기 출소했습니다.

다시 버스 운전대로, 그리고 정의봉 기증

출소 후 박기서 씨는 다시 버스 운전대를 잡고, 2002년엔 개인택시를 운전하며 묵묵히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2018년 10월 24일, 그는 자신의 과거를 상징하는 물건이자, 역사적 결단의 상징이었던 정의봉을 서울 용산구의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그 정의봉은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이라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이 적힌 종이에 감싸져 있었습니다.

‘견리사의 견위수명’, 그의 삶을 설명하는 문장

“이익을 보거든 정의를 생각하고, 위험을 보거든 목숨을 바쳐라.” 이 문장은 곧 박기서 씨의 삶을 가장 정확히 설명해주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박 씨는 백범 김구 선생뿐 아니라 안중근 의사도 마음 깊이 존경해왔고, 그 두 분의 뜻을 현실에서 실천하려 했던 한 시민이었습니다.

고인의 마지막 길

고 박기서 씨는 전북 정읍 출신으로, 부인 원미자 씨, 그리고 1남 1녀인 박찬종, 박안숙 씨, 사위 박기훈 씨 등 가족들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빈소는 부천장례식장 7호실에 마련되어 있으며, 발인은 7월 12일 오전 5시, 장지는 남양주 모란공원입니다. 모란공원에는 김근태, 장준하, 노무현 대통령 묘역도 있어 한국 민주화와 정의를 외쳤던 인물들의 영혼이 함께 머무는 곳입니다. 그곳에서 박기서 씨도 조용히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어 잠드시게 됩니다.

박기서, 그는 누구였나

박기서 씨는 평범한 시민이었지만, 때로는 역사가 침묵할 때 그것을 몸으로 끌어내는 선택을 했던 인물입니다. 그의 삶을 어떻게 평가하든, 우리는 그가 지키려 했던 ‘정의’와 ‘기억’을 가볍게 넘기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무리하며…

그 이름, 박기서. 그의 결단은 사라지지 않을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구분 | 내용 】

• 구분: 이름
• 내용: 박기서(朴琦緖)

• 구분: 사망일
• 내용: 2024년 7월 10일

• 구분: 향년
• 내용: 77세

• 구분: 사인
• 내용: 지병

• 구분: 빈소
• 내용: 부천장례식장 7호실

• 구분: 발인
• 내용: 2024년 7월 12일 오전 5시

• 구분: 장지
• 내용: 남양주 모란공원

• 구분: 가족
• 내용: 부인 원미자 씨, 1남 1녀 (박찬종, 박안숙), 사위 박기훈 씨

주요 사건:

• 1996년 10월 23일: 백범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 처단
• 1998년: 김대중 정부 특별사면으로 조기 출소
• 2018년 10월 24일: 정의봉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기증

관련 인물:

• 백범 김구
• 안두희
• 안중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