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이 떨렸다 [산을 오르는 아이들]

ⓒ 2026.윤경 All rights reserved.

이상한 계절이다. 사월의 혹독함을 잊을 뻔했다. 연둣빛 세상을 만들기 전에 땅을 축축하게 적시느라 연이어 비가 내리고 막 피어난 꽃들에게 각오 단단히 하라는 듯 유별나게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동안 독감에 심하게 걸렸었다. 돌아보면 몸 앓이 하나 없이 봄을 맞이한 해가 있었던가. 꽃들을 피우기 위해서 대자연은 치열하게 몸부림친다는 것을 매년 같이 아프면서 배우는 것 같다.

독감 끝에 날도 개고 비바람은 언제 쳤냐는 듯 숲은 어느새 말갛고 부드러운 얼굴로 나를 반긴다. 아아 아름답기도 유독 아름다운 사월이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나무들은 갓 세수를 마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걸을 때마다 발밑에서는 메마른 가지들이 힘없이 부러졌다. 초록으로 변해가는 촉촉한 땅 위에 흙색과 비슷해진 작년 낙엽들이 소리 없이 누워있다. 모든 것을 품어 안아줄 것 같은 순간들이 사월 안에 있다.

신기하기도 하지, 나뭇가지마다 하나도 빠짐없이 새순이 올라와 있다. 여리지만 갓 피어난 온기를 품은 채 쑥 올라온 보드라운 솜털 같았다. 태어나서 여전히 삶에 대해 뭐 하나 제대로 아는 게 없다고 느껴지는 날들 속에서도 새싹 하나 올라온 것이 마냥 기뻐서 세상을 향한 경이로움에 가득 찬다. 반복되는 자연의 힘, 또 그게 전부인 줄 알고 슬픔 가장자리에서 생명을 노래한다.

이웃집 언니가 뒷산에 고사리 따는 곳을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오늘 밤 비 소식이 있어서 야단났다며 어쩔 줄 모르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 날이 되면 고사리가 쑤욱 쑤욱 올라와 있으니 할 수 없이 또 따러 와야 한단다. 아니, ‘그냥 안 오면 되잖아요' 하는 내게 고사리가 올라왔는데 어떻게 안 딸 수가 있겠냐는 표정을 지었다.

고사리는 딸 때, 또각 하고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직감적으로 이쯤이다 싶은 줄기 부분에서 부드럽게 꺾일 때 나는 소리다. 손의 감각을 익히고 터득할 때까지 따본다. 아아, 이건 멈출 수 없는 일이잖아! 게다가 머리를 웅크리고 우주의 비밀은 혼자 다 싸안고 있는 듯한 털북숭이 식물이 땅 위로 마구 올라와 있으니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것이다. 고사리를 한 움큼 쥐고 있으면, 숲의 보물을 얻은 것처럼 어느새 주변이 신성한 봄 기운으로 신비롭게 반짝거린다. 마음까지 꽉 차서 부자가 된 기분으로 내려오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사월에는 비가 오면 다음 날 뒷산을 올라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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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이뿐만일까. 주말에는 온 가족이 다 함께 친구를 따라 두릅을 따러 뒷산을 찾았다. 세상에 두릅이라니! 두릅은 두릅나무에 달리는 새순을 말한다. 자연산 참두릅은 채취량이 적어서 산나물 중에서도 정말 귀하다. 기대에 찬 마음으로 신나게 두 눈을 굴리며 찾아다녔지만 아뿔싸 우리가 한발 늦은 것 같았다. 누군가 먼저 와서 따 간 흔적이 보였다. 하나도 남김없이 따간 것 같아서 괘씸하기도 하고 허탈하기까지 했다. 갑자기 두릅 하나라도 더 찾아서 산을 내려와야 할 것 같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남아 있는 보물을 기어코 찾아내고 말겠다는 해적이 된 것 같았다. 아니, 해적이라니! 순식간에 내 안에 채집 본능이 올라와서 깜짝 놀랐다. 본래 내 것도 아닌 말 없는 자연 앞에서 괜한 욕심을 낸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자연에서 온 생명들에 대해서 그저 채취할 생각만 하다니 조금 민망해졌다. 게다가 아주 잠깐이라고 해도 보지도 못한 사람에게 괜한 감정까지 품다니 부끄러웠다. 인간의 간사한 마음이란 이런 것일까. 그 와중에 저 멀리 두릅을 발견하자 아이처럼 좋아서 소리지르고 말았다! 경사가 있는 기슭을 네발 짐승처럼 올라갔다. 하지만 막상 두릅 앞에 서자 두 손이 떨렸다. 어쩐지 함부로 막 딸 수가 없어서 망설여졌다. 이 작은 순을 얼마나 따야 허기진 마음을 다 채울 수 있단 말인지 갑자기 조심스러운 마음이 되었다.

산이 내어주는 것을 얻어 들고는 넙죽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애초에 실컷 취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오만했다. 못 따도 어쩔 수 없고, 빈손으로 돌아오게 되어도 괜찮은 마음 같은 것. 사월에 먹어야 할 이 작은 새순 앞에서 주춤거리는 순간 산을 향한 경외심도 함께 차올랐다. 내어주기만 하는 큰 사랑 앞에서 인간은 보잘것없이 작아진다. 덩달아 하찮은 마음은 점점 흐려지고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다. 지금 이렇게 생명력 가득한 봄 산의 여리여리한 풍경 속에서 다 함께 어우러져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속 연두색 이파리 하나가 기분 좋게 흔들리는 것 같았다. 비로소 온몸으로 봄을 만끽할 준비가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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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는 아이들]
글쓴이 / 윤경
논과 밭, 산과 바다를 어슬렁거리며
자연 속에서 아이들과 성장하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라도
마음을 어루만지며 살고 싶습니다.
yoon.vertclair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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