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백성이 겸상하면? ‘왕과 사는 남자’가 현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

[정태식 경북대 인문학술원 교수]

[1분 핵심 요약]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유배지라는 극한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관계의 재구성’을 다룹니다. 화려한 의전이 사라진 자리에서 왕의 끼니를 챙기고 안위를 살피는 투박한 돌봄이 이어질 때, 명령과 복종의 낡은 충성은 사라지고 인간적인 신뢰가 싹텄습니다. 신뢰가 실종된 채 권위만 내세우는 오늘의 한국 정치에 이 영화는 묻습니다. 당신들의 정치는 지금 어디에 발을 딛고 있느냐고 말입니다.
[The Insight- 행간의 재구성]

일상의 정치: 정치는 여의도의 화려한 언사가 아니라, 서로의 처지를 가엾게 여기며 삶의 기본(끼니)을 살피는 ‘책임의 공유’에서 시작됩니다.

권위의 역설: 왕이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비로소 ‘진짜 내 편’을 얻듯, 정치도 기득권을 내려놓고 낮은 곳의 눈맞춤을 회복할 때 비로소 신뢰를 얻습니다.

리더의 자격: 지금 우리 리더들에게 필요한 건 지휘봉이 아니라, 고립된 처소의 찬 바람을 함께 견디며 곁을 지키는 ‘의리’입니다.

장항준 감독 <왕과 사는 남자>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보았다. 장항준 감독의 풍부한 상상력도 인상적이었지만, 유해진(엄홍도 역), 박지훈(노산군, 단종 역), 유지태(한명회 역), 전미도(궁녀 매화 역) 등의 연기는 이 작품을 단순한 역사극이 아니라 관계와 윤리에 대한 사유의 장으로 확장시킨다.

영화 속 인물들은 선과 악, 충성과 배신이라는 도식적 구분을 넘어, 권위가 어떻게 작동하고 관계가 어떻게 의미를 획득하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사회학을 공부해 온 시선에서 이 영화가 특히 흥미로운 이유는, 전통적 권위(traditional authority)가 전제하는 왕과 백성 사이의 ‘충(忠, loyalty)’이라는 개념을 매우 미시적인 장면들을 통해 해체하고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전통 사회에서 충은 당연한 덕목이자 규범으로 이해됐다. 그러나 영화는 이 당연함이 실제로는 얼마나 형식적이고 취약한 토대 위에 놓여 있는지를 드러낸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스틸컷.

충(忠)은 실제하는가

궁궐이라는 권력의 중심에서 요구되는 충은 제도와 관습, 그리고 계약이나 이해관계 위에서 주로 유지된다. 한명회로 대표되는 신하들의 모습은, 형식적 충이 언제든 계산과 전략의 언어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권위에 대한 충성은 인격을 향한 것이 아니라, 권력의 위치를 향한 것이며 상황이 달라지면 배신으로 쉽게 뒤집힐 수도 있다. 영화는 이 지점에서 전통적 권위가 요구하는 충의 공허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이야기가 유배지로 옮겨가면 전혀 다른 관계의 질서가 펼쳐진다. 유배된 왕과 그를 돌보아야 하는 백성들 사이에서는 더 이상 명령과 복종의 위계가 작동하지 않는다. 대신 반복되는 일상, 책임의 공유, 말 없는 돌봄 속에서 관계가 서서히 형성된다. 이 미시적 상호작용의 공간에서 충은 제도가 요구하는 의무가 아니라, 인간적 신뢰에 기초한 태도로 변화한다.

백성과 겸상을 하며

이러한 충은 강요되거나 선포되지 않는다. 그것은 함께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서로를 한 인간으로 인식하는 과정에서 생성된다. 왕은 절대적 권위의 상징에서 보호받아야 할 연약한 존재로 드러나고, 백성은 단순한 피지배자가 아니라 판단과 선택의 주체로 자리한다. 이 과정에서 충을 받는 왕과 충을 실천하는 백성 사이의 신분적 경계는 흐려지고, 상하 관계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의 인격적 관계로 재구성된다.

유배지의 고립된 처소에서 엄홍도(유해진)가 노산군(박지훈)의 끼니를 챙기고 그의 안위를 살피는 투박한 돌봄의 과정을 떠올려 보라. 화려한 궁궐의 의전이 사라진 자리에 서로의 처지를 가엾게 여기는 두 인간의 '눈맞춤'이 남을 때, 명령하던 입술과 복종하던 무릎은 사라지고 인격적 신뢰가 싹튼다.

이러한 의미에서 영화가 제시하는 충은, 전통 사회가 이상으로 삼았던 형식적 충보다 오히려 더 근원적인 윤리에 가깝다. 그것은 권위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형성된 책임이며, 제도 이전의 인간적 약속에 가깝다.

영화는 묻는다. 충은 누구를 향한 것인가. 그리고 무엇에 기초할 때 비로소 의미 있는 가치가 되는가.

관계 속에 생겨나는 '응답'

이 질문은 종교의 언어로 옮겨도 낯설지 않다. 율법과 제도가 먼저가 아니라 관계와 신뢰가 먼저라는 통찰, 권위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가난하거나 약한 존재에 대한 책임이 공동체 윤리의 출발점이라는 인식은 모든 고등 종교 전통이 반복해서 강조해 온 핵심이기 때문이다. 신뢰적 관계를 중심으로 한 충에 대한 이해는 현대 사회에서도 반복해서 확인될 뿐만 아니라, 종교를 넘어 사회적·윤리적 언어로 옮겨도 충분한 설득력을 지닌다.

왕을 향한 충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타인을 향한 책임, 제도에 대한 복종이 아니라 구체적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응답성. 영화가 보여주는 충은 바로 이 지점에 주목한다.

<왕과 사는 남자>는 왕의 몰락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권위가 무너진 자리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관계의 의미,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윤리로 전환되는지를 묻는다.

충은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이 아니라 아래에서부터 자라나는 신뢰다. 그리고 그 신뢰가 사라진 사회에서 어떤 제도와 권위도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영화는 조용하고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민주당은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는 지방선거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 그동안 당내 갈등은 큰 후유증을 남길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연합뉴스

요즘 한국 정치의 윤리는

이 작품은 한국 정치가 직면한 장면들과도 묘하게 겹쳐진다. 최근 각 정당 내부에서 반복되는 갈등, 또는 당·청·정 사이의 긴장은 단순한 권력 다툼이라기보다 권위와 신뢰의 관계가 어떻게 설정돼 있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물론 정당과 정치권력은 본질적으로 일정한 권력 투쟁을 전제로 하는 집단이다. 민주사회에서 갈등과 경쟁, 노선 차이는 제거해야 할 병리가 아니라 제도적으로 관리되어야 할 일상에 가깝다. 문제는 권력 투쟁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어떤 관계의 윤리 위에서 수행되느냐다.

영화가 보여주듯, 신뢰가 부재한 권위 아래에서는 작은 갈등도 곧바로 적대와 파국으로 비화하지만, 신뢰를 전제로 한 관계에서는 충돌과 잡음이 오히려 관계를 조정하고 재정렬하는 계기가 된다.

유배지에서 형성된 충 역시 완벽한 합의의 상태는 아니다. 오해도 생기고, 감정의 균열도 발생한다. 그러나 그 충은 상대를 제거하거나 굴복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다시 설명하고 설득하며 책임을 나누며 갈등을 해소하는 방식에 기반한 것이다. 신뢰에 기초한 충은 갈등이 없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이 생겨도 곧바로 파괴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제도적 충'과 구별된다.

신뢰에 기초한 ‘진짜 내 편’

민주사회에서 대통령과 여당, 혹은 정당 내부의 관계는 명령과 복종의 상하 관계가 아니다. 그러나 신뢰의 윤리가 부재한 자리에 제도적 권한만 남을 때, 협치는 긴장으로 변하고 조직은 침묵하며 계산하기 시작한다. 이는 영화 속 궁궐이 보여준 '형식적 충'의 취약성과 다르지 않다.

야당 역시 마찬가지다. 리더십이 이견을 조율하는 역량 대신 징계와 통제라는 기술에만 매달릴 때, 내부의 긴장은 ‘충성’과 ‘이탈’이라는 이분법으로 박제된다. 신뢰 없이 유지되는 단결은 외형상 강해 보일지 모르나, 위기 앞에서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기 마련이다.

결국 <왕과 사는 남자>가 묻는 '충'은 리더가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획득되는 것이다. 설명하고 설득하며 책임을 공유하는 지난한 과정 없이는 패거리 정치와 낙인의 언어만 만연하게 된다. 신뢰가 사라진 공동체에서는 어떤 권위도, 도덕적 명분도 지속될 수 없다.

영화는 왕의 비극을 넘어 정치의 본질을 묻는다. 정치는 권위를 유지하는 기술이 아니라 관계를 지속시키는 능력이다. 우리는 지금 궁궐의 낡은 충성을 반복하고 있는가, 아니면 유배지에서 싹튼 신뢰의 윤리를 마주하고 있는가.


※ 정태식은 뉴욕의 뉴스쿨(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 정치사회과학대학원에서 사회이론과 정치·종교사회학 전공으로 철학박사(Ph. D.) 학위를 받았다. 경북대학교 연구초빙교수와 사회학과 강의 교수를 역임하였고, 퇴직 후 경북대 인문학술원 객원 연구원으로 있다. 지은 책으로 『거룩한 제국: 아메리카·종교·국가주의』등이 있고 최근에는 『21세기 제국의 정치와 종교: 트럼프와 ‘미국 백인 기독교 국가주의’, 푸틴의 ‘러시아 세계’, 시진핑의 ‘종교 중국화’』(2025, 한울엠플러스)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