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닫고 돈을 벌던 시대는 끝났다. F1은 팬에게 먼저 다가갔고, 그 뒤에 스폰서와 플랫폼이 따라왔다.

[스탠딩아웃]= F1은 오래도록 비싼 스포츠였다. 빠른 차, 거대한 팀, 글로벌 기업의 로고, 부자들이 모이는 서킷. 그 이미지는 화려했지만 멀었다. 일반 팬이 쉽게 들어가기 어려운 세계였다.
경기는 빨랐지만 이야기는 닫혀 있었다. 드라이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피트 안에서 어떤 판단이 오가는지, 팀 대표들이 왜 얼굴을 굳히는지 알기 어려웠다. TV 화면에는 레이스가 나왔지만, 레이스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F1이 바뀐 건 그 문을 열면서부터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Drive to Survive’는 F1을 다른 스포츠로 보이게 만들었다. 빠른 차가 몇십 바퀴를 도는 경기만은 아니었다. 젊은 드라이버의 불안, 베테랑의 자존심, 팀 내부의 경쟁, 피트월의 판단이 모두 이야기로 바뀌었다. F1은 멀리서 바라보는 스포츠에서 가까이 들여다보는 스포츠가 됐다.
여기에 영화 ‘F1’이 속도를 붙였다. 브래드 피트가 주연을 맡고 루이스 해밀턴이 제작에 참여한 이 영화는 실제 그랑프리 현장에서 촬영되며 F1의 속도와 압박감을 극장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Apple은 영화 ‘F1’이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6억 2900만 달러를 넘겼고, 스포츠 영화 최고 흥행작이자 브래드 피트의 최고 흥행작이 됐다고 밝혔다. 넷플릭스가 F1의 뒷이야기를 보여줬다면, 영화 ‘F1’은 이 스포츠를 처음 보는 관객에게 소리와 속도로 먼저 각인시켰다.
숫자도 움직였다. F1 공식 자료에 따르면 2019년 420만 명이던 시즌 현장 관중은 2025년 670만 명까지 늘었다. 2025년에는 24개 레이스 중 19개가 매진됐다. 호주 그랑프리는 46만 5000명, 영국 그랑프리는 50만 명의 관중을 모았다.
팬층도 젊어졌다. F1은 2025년 글로벌 팬베이스가 8억 2700만 명에 달했고, 전체 팬의 43%가 35세 미만이라고 밝혔다. 새로 들어온 팬의 57%도 35세 미만이었다. 예전의 F1이 자동차 마니아의 스포츠에 가까웠다면, 지금의 F1은 젊은 세대가 모바일과 소셜미디어로 소비하는 스포츠가 됐다.

돈은 그다음에 따라왔다. 스폰서유나이티드에 따르면 F1 팀들의 2024년 스폰서십 매출은 20억 4000만 달러였다. 단일 스폰서 평균 계약 규모도 약 601만 달러로, 미국 주요 프로스포츠 리그를 크게 웃돈다는 분석이 나왔다. 기업들은 이제 F1을 단순한 자동차 경주로 보지 않는다. 전 세계 팬에게 브랜드를 보여줄 수 있는 거대한 무대로 본다.
루이뷔통모에헤네시, 아람코, 카타르항공, 하이네켄 같은 기업들이 F1에 붙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머신은 달리는 광고판이고, 서킷은 거대한 쇼룸이다. 하지만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 예전에는 돈이 먼저였다. 지금은 팬이 먼저다. 팬이 모이자 브랜드가 들어왔고, 브랜드가 들어오자 스포츠의 몸집이 더 커졌다.
중계도 달라졌다. 이제 F1은 차만 보여주지 않는다. 드라이버 시점 카메라, 팀 무전, 피트 안의 긴장감까지 보여준다. 팬은 단순히 누가 1등을 했는지만 보지 않는다. 왜 타이어를 바꿨는지, 왜 팀 오더가 나왔는지, 왜 드라이버가 화를 냈는지까지 따라간다. 레이스를 보는 방식 자체가 바뀐 것이다.

한국에서도 변화는 보인다. 지금 F1은 쿠팡플레이에서 중계되고 있다. 쿠팡플레이는 2026 시즌 F1 전 경기 전 세션 생중계와 하이라이트를 제공하고, 4K 중계와 현장 생중계 확대를 내세웠다. 국내 팬들도 더 이상 해외 중계 화면을 찾아다니는 방식으로만 F1을 보는 것이 아니다. OTT 안에서 한국어 해설, 현장 리포팅, 실시간 반응을 함께 소비한다.

한국의 관심은 중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인천시는 2028년 개최를 목표로 F1 그랑프리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다만 아직 확정된 대회는 아니다. 인천시가 발표한 사전타당성 조사에서는 경제성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5년 연속 개최를 기준으로 예상 효과는 1조 1697억 원, 비용은 8028억 원으로 추산됐다. 송도달빛축제공원 일대가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지만, 이것은 개최 확정이 아니라 유치 추진의 첫 관문을 넘었다는 의미에 가깝다.
이 숫자가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F1은 도시 브랜드를 키울 수 있는 무대이지만, 개최권료와 운영비 부담도 크다. 대회 기간 교통 통제, 소음, 시민 수용성, 민간 투자 확보도 넘어야 할 문제다. F1 측과의 개최 계약도 남아 있다. 그래서 인천 F1은 “열린다”가 아니라 “유치 전에 들어갔다”고 쓰는 게 맞다.
다만 분명한 변화는 있다. 쿠팡플레이 중계로 국내 팬 접점이 넓어졌고, 인천의 유치 전까지 시작됐다. F1은 이제 한국에서도 먼 스포츠가 아니다.
F1의 성공을 흥행담으로만 볼 수는 없다. 이 스포츠는 여전히 돈과 권력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중동 자본, 글로벌 스폰서, 비싼 개최권료, 환경 논란은 F1을 따라다닌다. “친환경”을 말하면서 전 세계를 순회하는 스포츠라는 모순도 있다.

그래서 F1은 기술 규정까지 바꾸고 있다. 2026년 F1의 핵심 변화는 새 파워유닛이다. 전기 동력의 비중이 커졌고, 내연기관과 전기 동력이 거의 절반씩 힘을 내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지속가능연료도 새 규정의 중요한 축이다. 전기 동력 비중이 커지면서 에너지 관리도 경기력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드라이버가 언제 배터리를 쓰고, 언제 아껴야 하는지가 승부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F1은 늘 기술로 판이 바뀌는 스포츠다. 규정 하나가 팀의 순위를 흔든다. 어제의 강자가 오늘도 강자라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F1은 돈이 많은 스포츠이면서도, 돈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엔지니어의 계산, 드라이버의 감각, 팀의 판단, 규정의 빈틈이 모두 결과를 만든다.

F1의 부활은 여기서 나온다. 이 스포츠는 자신을 감추는 대신 보여주기 시작했다. 완벽한 이미지만 남기려 하지 않고, 실수와 갈등까지 콘텐츠로 만들었다. 예전에는 빠른 차가 전부였다면, 지금은 그 차를 둘러싼 사람들까지 함께 본다. F1은 돈을 포기해서 성공한 것이 아니다. 돈을 버는 순서를 바꿨다. 먼저 팬이 들어오게 만들었다. 팬이 머물 이유를 만들었다. 그다음 스폰서와 플랫폼이 움직였다.
스포츠 산업이 여기서 배워야 할 것은 단순하다. 폐쇄적인 권위는 오래가지 못한다. 비싼 중계권만으로 팬을 붙잡을 수도 없다. 사람들은 이제 경기만 보지 않는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누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그 선택이 다음 장면을 어떻게 바꾸는지까지 보고 싶어 한다.
F1은 돈을 덜 생각한 것이 아니다.
돈이 따라올 길을 다시 설계했다.
출발점은 스폰서가 아니라 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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