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12층에 화재가 발생하자 ''사다리차 파손을 감수하고 요구조자를 구출한'' 이 사람

평범한 오후, 돌이킬 수 없는 화재의 순간

경기도 남부의 한 아파트 단지, 평범한 주말 오후는 몇 초도 되지 않아 아수라장이 되었다. 12층 한 세대에서 시작된 불길은 빠르게 거실과 복도를 뒤덮었고, 짙은 연기는 건물 외벽까지 번져갔다. 주민들은 긴급히 대피했지만 한 세대의 젊은 여성이 미처 나오지 못했다. 연기에 질식할 듯한 그는 베란다 난간에 몸을 매달고 구조를 요청했다.

사태는 분 단위로 급박해졌다. 연기와 열기로 12층 창문 근처 접근이 어려워지자 사람들은 도로 아래에서 그저 숨을 죽인 채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소방차가 출동했지만 도착까지는 최소 5분, 그러나 그 5분은 너무 길었다. 바로 그때, 현장을 지나던 한대의 사다리차가 불길 앞에 멈췄다. 원래 철수 중이던 차량이었다. 그 운전자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 한상훈 씨였다.

위험한 결단, 멈춘 차가 다시 달리다

한상훈 씨는 차창을 통해 연기에 휩싸인 건물을 보자마자 직감했다. “기다리면 늦는다.” 그는 망설임 없이 비상 점멸등을 켰고, 차량의 방향을 돌려 불길 쪽으로 향했다. 사다리차는 원래 공사장에 쓰이는 장비였다. 사람을 구조하기에는 탑승용 안전 장치도, 열 보호 장비도 완비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 씨는 그런 조건을 따지지 않았다.

그는 곧장 붐대를 최대로 확장시키고 거센 바람 속에서 손으로 사다리 각도를 미세하게 조정했다. 불길 방향과 반대편 창가에 위치한 베란다 쪽으로 사다리를 붙이자, 베란다 난간에 매달려 있던 여성이 눈을 마주치며 울부짖었다. “살려주세요!” 그는 밀려드는 뜨거운 공기를 뚫고 사다리를 끝까지 올린 뒤, 자신의 손을 뻗었다. 잠시의 망설임 끝에 여성은 사다리 위로 몸을 옮겼고, 한상훈 씨는 그 몸을 단단히 잡아끌어 차량 짐칸으로 들인 뒤 재빨리 하강시켰다.

YTN 뉴스 화면 캡처

멈추지 않은 구조, 초등학생 남매를 다시 찾다

불길이 잠시 잦아들었다 싶던 순간, 한상훈 씨는 다시 하늘을 바라봤다. 이번에는 15층의 창가에서 희미하게 손을 흔드는 그림자가 보였다. 구조를 요청하는 초등학생 남매였다. 당시 화염은 사다리차의 최대 작동 높이를 초과할 만큼 치솟았고, 건물 전체의 하중으로 인해 구조 차량의 기둥이 흔들릴 위험조차 있었다.

한상훈 씨는 정비사로 근무해 기계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는 안전 제한 장치가 작동된 상태로는 15층까지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국 그는 스스로 그 장치를 해제했다. 장비 파손과 낙하 위험을 감수한 결정이었다. 주변 인부들이 “위험하다, 그만 올라가라”고 외쳤지만 그는 답하지 않았다. 사다리가 천천히 올라가며 건물 외벽에 닿았고, 그 폭염 속에서 아이 둘은 한 씨의 팔을 잡았다. 마침내 세 사람은 짐칸으로 내려왔고, 아이들은 대피 후 곧장 응급조치를 받았다. 그제야 사다리 하단의 유압 장치가 과열로 멈춰섰다. 기계는 한계까지 버텼지만, 사람은 멈추지 않았다.

구조 이후의 침묵, 그리고 밝혀진 영웅의 이름

살아남은 주민들과 소방대원들이 한 씨에게 달려왔을 때 그는 이미 바닥에 주저앉은 상태였다. 양손에는 화상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고, 연기에 장시간 노출된 탓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이 살아서 다행”이라는 한마디만 남겼다. 이후 소방청 조사관이 그의 명함을 보고서에 표기했을 때까지도 그는 자신이 영웅이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구조 영상은 인근 CCTV와 주민 스마트폰을 통해 전국으로 퍼졌다. 누군가 촬영한 장면에는 사다리 끝에서 아이들을 끌어안고 내려오는 순간이 명확히 포착되어 있었다. 불길 사이로 한 인간의 결단이 만들어낸 ‘13분의 기적’이었다. 그는 이후 “LG 의인상”을 비롯한 여러 상을 받았으나, 정작 본인은 “누구라도 봤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시민이 만든 기적, 사회가 남긴 울림

한상훈 씨의 행동은 단순한용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는 소방관도, 구조대원도 아닌 일반 시민이었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판단력과 희생정신은 공직 사회가 기본으로 삼아야 할 ‘시민 정신’의 본질을 일깨웠다. 정부와 소방청은 이후 긴급 상황 시 민간 장비 활용에 관한 제도 개선을 검토 중이다. 당시 소방당국은 “만약 그가 수초만 더 늦었더라면 추가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이 사건 이후 사다리차 업계에서는 장비 응급 해제 장치의 표준 안전 지침을 마련하고, 운전자 교육에 ‘비상 인명 구조 절차’를 추가했다. 한 사람의 결단이 한 산업의 기준을 바꾼 셈이다. 동시에 많은 시민이 “언젠가 나도 누군가를 구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겠다”며 SNS에 감사의 글을 올렸다. 불은 꺼졌지만, 그 용기는 사회 곳곳에서 새 불씨처럼 퍼지고 있다.

위기의 순간, 우리의 용기가 세상을 바꾼다

불길 앞에서 자신보다 타인을 먼저 생각한 한 사람의 행동은 두 명의 생명을 넘어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구했다. 위기의 순간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그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장비나 명예가 아니라 ‘누군가를 살리겠다는 순수한 결의’임을 한상훈 씨는 보여주었다. 그의 손끝에서 구해진 생명들은 우리가 잊고 있던 공동체의 의미를 되살렸다.

누군가의 위기 앞에서 멈추지 않는 용기, 그것이 진정한 시민의 힘이다. 우리 모두가 그 마음을 기억하고, 위기 속에서도 서로를 지켜주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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