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종칼럼] 해외우편물 주소 영문 표기와 우표 사용

우편물은 보내는 자와 받는 자 그리고 이를 배달하는 자에게 가장 접근하기 쉬운 문자로 주소를 기입하도록 해야 한다. 평소 영문 쓰기와 별 인연 없이 살아가는 많은 나라의 많은 사람이 있을 텐데 우편물 하나 보내는데 주소를 영문으로 기입하라는 것은 불편하기 그지없다.
인터넷에서 해외우편물 주소를 영문으로 써야 하는 이유를 찾아보니 '국제 표준에 맞는 주소순서와 명확한 표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다. 한중일 국민들이 쓰는 주소순서는 표준적이지 않고, 한국어나 한자 등은 명확한 표기가 안 된다는 말인데, 터무니없는 이유이다.
국제 표준은 소비자들에게 불편함을 감수시키며 곤혹스럽게 만들지 않고 최고의 만족을 추구하는 방향에 있다. 세계는 지금 거대한 물류시스템 속에서 모든 이에게 최고의 편리함을 제공하는 시대로 이에 조금만 뒤처져도 바로 도태되는 상황이다. 주문만 하면 몇 시간도 안 돼 배달되어 오고 그 중요한 은행 업무도 이름만 알면 송금이 가능한 시대이다.
가끔 일본으로부터 우편물을 받는다. 주소가 한자로 쓰여 있을 뿐 아니라 예쁜 우표에 선명한 소인까지 찍혀있는 경우가 많다. 옛날에 편지를 받았을 때의 기분이 들어 반갑고 기쁘기까지 하여 소중히 보관하게 된다.
영어를 쓰는 나라에 보내는 우편물이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나라에 영문으로 주소를 써야 한다는 것은 발송인, 수취인, 배달인 모두에게 매우 번거로워 익숙하지 않은 일을 강요하는 것이다. 중국인이나 일본인에게서 받은 명함이 영문으로 되어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우편물을 보내고자 할 때 매우 난감하다. 영문 주소를 보내 달라고 연락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냥 예전처럼 상대국 언어로 주소를 쓰도록 하는 것이 옳아 보인다.
국명 정도를 영문으로 쓰는 것이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나머지는 오히려 상대국 언어로 주소를 쓰는 것이 배려일 것이다. 중국에 도착한 우편물에 주소가 중국어로 되어 있는 것이 중국인들의 업무 수행에 편리하고 실수도 줄일 것이다. 한국에서 영어보다 한국어를 보고 작업하는 것이 훨씬 수월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물론 영어로 쓰는 것을 금지할 필요는 없다.
세계 공용어가 영어라지만 중국이나 일본에 가면 영어로 소통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국 내에서의 생활에 지장이 없는데, 해외에 우편물 하나 보내는 데 영문으로 주소를 쓰라는 것은 일종의 괴롭힘이다. 우편물을 보내고 싶어도 주소를 쓸 때마다 불편함을 느껴 보낼 마음이 사라지곤 한다. 우체국에서 상대의 영문 주소를 몰라 곤욕을 치르는 자를 본 적도 있다. 탁상행정의 잘못된 국제표준화이다.
더하여 우리는 이름의 영문 표기도 성과 이름을 반대로 쓰곤 한다. 서양인이 한국의 문화나 습관을 알면 되는 것인데 굳이 서양인처럼 성과 이름을 바꾸어 사용하는 것이다. 영어가 세계 공용어라 해도 서양 문화까지 답습할 이유는 없다. 한국문화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면 이름도 한국식으로 써야 한다. 서양인에게 한국에서는 성을 먼저 사용함을 알리면 될 일이다. 내가 세종 모로 표기되거나 불릴 이유가 없다.
지금도 우표를 발행한다. 사용을 장려하지도 못할 우표를 왜 발행하는지 납득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우표는 정부가 발행한 유가증권이다. 우편 업무에 사용하도록 하기 위해 발행하는 것이다. 가끔 일본에서 오는 소포에는 우표가 상자 한 면에 가득 붙어 오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는 아예 취급을 하고 있지 않아 우표를 붙여서 보내고 싶어도 보낼 수가 없다. 여전히 한국을 알릴 수 있는 내용의 예쁜 우표들이 많이 발행되고 있다. 발행을 했으면 예전처럼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우체국의 책무이다.
이메일이나 SNS로 소통하는 시대에 우편물도 급감한 상황일 텐데, 창구에서 우표를 사서 붙이고 깨끗한 소인이 찍혀 발송될 수 있도록 하면 좋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으면 판매한 우표는 다시 정부가 매입하고 이후 발행을 중지함이 마땅할 것이다.
우체국이 국민을 위해 우편 업무를 떠맡고 있는 이상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편리하고 합리적인 시스템을 제공해야 한다.
모세종 인하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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