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국가대표 출신 손준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나 [이달의 스포츠 핫 피플]

강은영 2024. 9. 21. 0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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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남자 축구 손준호
축구 국가대표 출신 손준호가 지난 11일 경기 수원시체육회관에서 중국축구협회 영구 제명 징계 관련 기자회견을 하던 중 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수원=연합뉴스

국가대표 출신 미드필더 손준호(32)가 인생의 기로에 섰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 주역으로 활약한 그가 삶의 반 이상을 차지하던 축구를 그만둘 수도 있는 처참한 상황에 놓였다. 손준호는 지난 13일 프로축구 K리그1 수원FC와 계약 해지하고 선수가 아닌 '자연인'이 됐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대한민국 축구대표에서 선수 자격이 박탈될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걸까.


손흥민도 바랐던 친구의 석방

손준호가 지난 11일 경기 수원시체육회관에서 중국축구협회 영구 제명 징계 관련 기자회견을 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수원=연합뉴스

시간을 지난 3월 25일로 돌려보겠다. 손준호가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마침내 귀국한 날이다.

손준호는 약 10개월간 중국 공안에 체포돼 구금된 상태로 조사를 받았다. 2021년부터 중국 슈퍼리그(1부) 산둥 타이산에서 뛰던 손준호는 지난해 5월 12일 중국 상하이 홍차오공항에서 한국으로 귀국하려다 공안에 체포됐고, 이후 형사 구류돼 랴오닝성 차오양 공안국의 조사를 받았다.

당시 중국은 축구계에 만연한 부패와 비리 척결을 위해 강력한 사정 바람이 불었다. 실제로 손준호와 같은 소속팀의 재중 교포 선수 진징다오를 체포했다. 승부조작, 뇌물수수 혐의가 거론됐는데, 당시 외국인 선수가 체포된 건 손준호가 처음이었다.

중국 공안은 손준호를 연행한 후 한 달 뒤 그를 구속 수사로 전환했다. 지난해 6월 16일 중국 외교부는 "손준호가 '비(非)국가공작인원 수뢰죄'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발표했다. 비국가공작인원 수뢰죄는 정부 기관이 아닌 기업 또는 기타 단위에 소속된 사람이 자신의 직무상 편리를 이용해 타인의 재물을 불법 수수한 경우 등에 적용된다.

중국의 산둥 타이산에서 활약한 손준호. 구단 SNS 캡처

당시만 해도 손준호가 승부조작 혹은 금품수수 혐의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는 소식만 들렸다. 그러던 와중 "최종 무혐의 처분을 받고 석방됐다"는 한 스포츠매체의 보도가 나왔고, 이 매체를 통해 손준호의 에이전시인 NEST의 박대연 대표는 "손준호는 수감 생활에도 정신적으로 안정적이다. 응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많은 배려를 해주신 중국 당국에도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축구 팬들뿐 아니라 국민들도 손준호의 상황을 알지 못해 답답해했다. 그가 석방돼 귀국한 뒤 우리 외교부는 "중국 당국과 다양한 경로로 소통하며 신속하고 공정한 절차가 진행될 수 있도록 협조를 요청했다"며 "국내 가족과 긴밀히 소통하며 20여 차례 영사 면담을 실시했고, 원활한 변호인 접견 지원 등 필요한 조력을 적극 제공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중국 당국은 손준호의 혐의 내용 및 석방 이유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렇듯 석방과 함께 모든 게 해결된 것으로 보였다. 대표팀에서 손준호와 동갑내기 친구인 손흥민(토트넘)과 이재성(마인츠)이 기쁘게 그를 맞았다. 당시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조 4차전 태국 원정경기를 위해 대표팀이 소집돼 있을 때였다. 손준호가 귀국한 뒤 하루 지난 3월 26일 이재성은 태국전에 앞서 "친구로서 어렸을 때부터 오랜 시간 축구를 해왔다. 그 (중국에 구금된) 소식을 1년 전에 들어서 가슴이 아팠는데 경기 전 기쁜 소식을 들어서 감사하다"고 기뻐했다.

손흥민이 지난 3월 21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조 4차전 태국과 경기에서 득점 후 기뻐하고 있다. 최주연 기자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이 확정된 후 기뻐하며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동갑내기 친구 손준호(왼쪽 밑에서 네 번째)와 이재성, 손흥민(위쪽 가운데)이 활짝 웃고 있다. 알라이얀=연합뉴스

손흥민도 빠질 수 없었다. 그는 3월 27일 태국 방콕의 라자망갈라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태국전 당일 이재성의 선제골로 앞서던 후반 추가골을 넣고 중계카메라 앞으로 달려갔다. 손흥민은 "웰컴 백(Welcome back) 준호!"라고 외쳤다. 잃어버렸던 10개월을 뒤로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친구를 환영한 인사이자 응원이었다. 손준호의 두 친구는 이날 득점하며 3-0 완승을 거두는 데 일조했다.

손준호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인사를 전했다. 손준호는 "인사가 많이 늦었다. 저는 무사히 돌아와 가족들과 편안한 시간을 보내며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며 "오랜 시간 잊지 않고 관심 가져 주시고 기다려 주시고 걱정해주신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글을 올렸다.


한 달 만에 선수 등록 허가한 축구협회

프로축구 K리그1 수원FC의 손준호.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손준호는 국내 프로축구 K리그로 복귀를 준비했다. 산둥은 이미 손준호가 구금돼 있던 지난해 여름 계약을 해지한 상태였다.

귀국한 지 한 달여 만인 지난 4월 22일 손준호는 대한축구협회 통합전산시스템에 공식적으로 K5리그의 건융FC의 선수로 등재됐다. 아마추어 무대인 K5리그를 통해 K리그1으로의 복귀 수순을 밟은 셈이다. 이는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선수 등록에 결격사유가 없다는 판단에 따른 절차였다. 프로뿐 아니라 아마추어 선수 규정에도 승부조작 등 축구 관련 비리에 대한 조항이 있지만 대한축구협회는 손준호의 선수 등록에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중국축구협회가 손준호에 대한 국제이적동의서를 발급함에 따라 국내 선수 등록이 빠르게 진행됐다. 대한축구협회의 등록규정에 따르면 K4리그 이하 '동호인 축구선수 등록'에서 '금고 이상의 형을 받고 집행 중이거나 집행유예 기간 중에 있는 사람(제30조 7항)'과 '축구 관련 비리 행위로 인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집행유예기간이 종료되거나, 집행이 종료된 날로부터 5년이 경과하지 않은 자, 또는 벌금형을 선고받고 3년이 경과하지 않은 사람(제30조 8항)' 등은 선수로 뛸 수 없다. 이 규정은 전문 축구선수에게도 해당한다.

지난 6월 경기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4 K리그1 수원FC와 광주FC의 경기를 앞두고 K리그 복귀전이자 수원FC 데뷔전을 갖는 손준호(오른쪽)가 최순호 수원FC 단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지난 2020년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K리그1 MVP를 수상한 손준호.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그러나 손준호는 어떠한 걸림돌 없이 빠르게 그라운드를 밟았다. 축구계에선 손준호가 친정팀인 전북 현대에 합류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런데 지난 6월 14일 K리그1 수원FC는 손준호와 계약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손준호가 귀국한 지 3개월 만이었다. 손준호는 전북과 협상에서 세부 조율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에야 세부적인 조건에 '중국 리스크' 관련 조항의 삽입 여부로 합의가 결렬됐다는 게 수면 위로 떠올랐다.

수원FC 이적은 최순호 구단 단장의 주도로 진행됐다. 최 단장은 손준호가 포항 스틸러스에서 뛰던 시절 재임 감독이었다. 최 단장은 손준호가 전북과 협상이 결렬되자 옛 제자를 보듬어 기회를 준 것이다. 손준호는 지난 6월 22일 FC서울과 원정경기에서 후반 교체 출전하며 수원FC 데뷔전이자 K리그 복귀전을 가졌다. 손준호는 이날 경기 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전과 다른 느낌이었다"며 "축구하는 꿈을 포기하지 않고 견뎠다.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걸 보상받는 느낌이었다"고 소감을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협박에 거짓 자백" VS "법정서 유죄 인정"

지난 2020년 전북 현대 소속으로 활약한 손준호.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중국축구협회가 손준호를 승부조작 혐의로 '영구 제명' 징계를 내린다고 발표했다.

중국축구협회는 지난 10일 "산둥에서 뛰었던 손준호는 정당하지 않은 이익을 도모하려고 정당하지 않은 거래에 참여, 축구 경기를 조작하고 불법 이익을 얻었다"며 "손준호의 축구와 관련된 어떠한 활동도 평생 금지한다"고 밝혔다. 손준호를 포함해 중국리그에서 뛴 선수 40여 명에게 영구 제명 징계를 내린다는 내용이었다.

중국축구협회는 이를 국제축구연맹(FIFA)과 아시아축구연맹(AFC)에도 통보하겠다고 전했다.

그러자 그 이튿날 손준호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중국 공안이 가족을 두고 협박해 "거짓 자백을 했다"고 털어놨다. 중국 법원에서 팀 동료였던 진징다오에게 받은 20만 위안(약 3,700만 원)에 대해 금품수수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는 내용을 공개했다. 판사와 형량을 협상해 이미 구금돼 있던 10개월만큼의 형량을 받는 걸로 정리했다는 게 손준호 측의 설명이다. 손준호는 "다만 승부조작은 단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그러나 왜 진징다오에게 20만 위안을 받았는지에 대한 내용은 증명하지 못했다. 다만 산둥에서 선수생활 하는 동안 진징다오와 절친한 관계였고, 서로 금전 거래를 활발하게 했던 사이라고 했다. 손준호는 "돈을 빌렸다 갚은 것일 수도 있다. 그 친구가 운영하는 축구 교실에 큰 금액을 선물하기도 했다. 부모님의 병원 수술을 잡아드린 적도 있다"며 "중국에서 큰돈을 벌다 보니 그 당시엔 큰 금액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고 말했다.

손준호는 "진징다오로부터 돈을 받은 건 맞지만, (어떤 이유로 받았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절대 불법적인 이유는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중국축구협회가 손준호에 영구 제명 징계를 내린다는 내용의 공문. 소후닷컴 캡처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 베이징=AFP 연합뉴스

손준호 측에 따르면 공안은 지난해 1월 산둥와 상하이 경기에서 손준호가 승부조작에 가담했다고 여겼다. 당시 경기가 끝난 뒤 5~6일 후 진징다오로부터 20만 위안을 받았다는 것이다. 손준호는 "나는 떳떳하게 정말 최선을 다해 경기를 뛰었다. 강팀과 경기에서 우리는 비겼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은 손준호 기자회견 이후 입장을 내놨다. 지난 12일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언론브리핑을 통해 "지난 3월 중국 사법기관은 손준호의 비국가공작인원 수뢰죄 혐의에 대해 공개 판결을 내렸다. 손준호는 법정에서 유죄를 인정하고 참회하면서 상소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손준호의 주장을 전면 반박한 것이다.

이제 공은 FIFA로 넘어갔다. 중국축구협회는 손준호 관련 내용을 FIFA와 AFC에 통지했다. FIFA가 내부 징계위원회를 통해 영구 제명 징계를 인정할 경우 손준호의 축구인생은 끝을 보게 된다. FIFA가 각국의 축구협회에 이 같은 내용을 공지하면 전 세계로 징계가 확대 적용되기 때문이다. 국내는 물론 세계 그 어떤 곳에서도 축구선수로 활동할 수 없다. 최악의 경우 손준호는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제소하는 방법도 있다. 손준호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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