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휴대전화 수거 “인권침해 아냐”…10년 만에 판단 바꾼 ‘안창호 인권위’
중고교에서 등교 시 휴대전화 사용을 전면 제한하는 조처를 ‘과잉제한’으로 판단해온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10년 만에 이를 ‘인권침해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이 취임 뒤 주재한 전원위원회에서 나온 첫 의결이다.
인권위는 7일 전원위원회에서 전남의 한 고등학생이 지난해 진정한 ‘고등학교의 휴대전화 수거로 인한 인권침해’ 안건을 비공개로 심의하고 표결 끝에 8 대 2로 ‘기각’ 결정했다. 안창호 위원장과 김용원·이충상·한석훈·김종민·이한별·김용직·강정혜 위원이 기각 의견을 냈고 남규선·원민경 위원이 기각에 반대했다. 현재까지 인권위에 진정 접수돼 조사 중인 휴대전화 전면 제한 관련 안건은 70여건으로 알려졌는데, 이번 결정은 다른 진정 사건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아동 인권침해 문제를 다루는 아동권리위원회(아동소위)는 2014년에서 2023년까지 10년간 휴대전화 전면 사용 제한과 관련한 307건의 진정사건을 모두 인권침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아동소위 위원장인 이충상 위원은 관련 안건을 전원위에 올리며 “중고등학교에서의 휴대전화 수거와 보관은 장점이 단점보다 적지 않고 피해 최소성을 위반하지 아니하기 때문에 인권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남규선 위원은 이날 “인권위는 그동안 전면적으로 금지하기보다는 토론을 통해 규율을 정하고 이를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본인의 욕구와 행동을 통제·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교육기관으로서 보다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강조해왔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이날 전원위의 결정은 기각이었다.
다만 이번 기각 결정이 휴대전화와 관련한 그동안의 인권위 권고를 180도 변경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그동안 인권위는 휴대전화 일괄수거 관련 진정사건을 인용하면서도 “수업시간 중 전화 소지 제한을 한 것은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해 왔다. 남규선 위원은 전원위가 끝난 뒤 한겨레에 “이 결정이 학교에서의 휴대전화 소지·사용 자체를 제한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이번 기각 결정은 ‘등교 시간 휴대전화 수거’ 자체를 인권침해로 보지 않은 것이다. 곧 명확하게 결정문을 쓸 예정”이라고 말했다.
인권위는 이번 판단을 위해 아동소위 위원들의 요구에 따라 전문가 자문을 통해 국외 사례를 확보했다고 한다. 영국은 올해부터 교내 휴대전화 지침을 시행해 초·중·고 전체 학교에서 일과 중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프랑스는 15살 미만 학생들에게 학교 안과 밖에서의 교육활동 시간에 스마트폰 사용을 전면 금지했고 미국은 공립학교 77%가 교내 사용 금지 정책을 시행 중이다. 일본의 경우 2020년 이후 초등학생은 소지 및 사용 금지, 중학생은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예외를 인정하며 고등학생은 자율적 규칙에 따르고 있다.
유네스코는 최근 ‘세계교육현황보고서’의 휴대전화 관련 자료 항목에서 “전세계적으로 13%의 국가가 법률을 통해, 14%의 국가가 정책을 통해 학교에서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며 “새롭고 혁신적인 기술로부터 학생들을 마냥 보호하는 것은 그들을 불리하게 만들 수 있다. 미래를 염두에 둬서 보면서 이러한 문제들을 살펴보고, 세상이 변해감에 따라 조절하고 적응할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인권위 한 관계자는 “지금 정부에서 ‘에이아이(AI) 디지털 교과서’ 전면 도입을 하겠다고 하는데, 휴대전화는 금지하면서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한다는 것도 매우 모순되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고 평가했다. 청소년 인권단체 ‘아수나로’의 수영 상임활동가는 “학생 인권 침해 문제에서 휴대폰 수거는 굉장히 중요한 이슈인데 인권위가 부적절한 결론을 내렸다. 현장에서 이 문제가 개선될 수 있도록 계속 문제를 제기해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전원위 공개 안건으로 13번째 상정된 ‘소위원회에서 의견불일치 때의 처리’는 결론을 내지 못하고 다음으로 미뤄졌다. 다만 안건 심의 직전 안창호 위원장이 의사진행 발언을 한 원민경 위원에게 “왜 이렇게 말이 많냐”고 언성을 높여 논란이 일었다. 안창호 위원장은 이날 지난주 전원위 비공개회의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데 대해 “다른 기관 같으면 감찰과 감사가 들어갈 일”이라고 말해 일부 위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단독] ‘선 넘은’ 보험사들…키·몸무게부터 수술기록까지 건보공단에 요청
- 검찰, ‘채상병 순직’ 임성근 전 사단장·공수처도 압수수색
- ‘김건희 리스크’ 우려 들은 한동훈 “결정의 시간 다가오고 있다”
- 명태균 “검찰이 날 구속? 한달이면 탄핵, 감당되겠나”…추가폭로 시사
- 공천·관저공사·명품백…상임위마다 ‘김건희 국감’
- “여자 군대 가면 전우애로 아기 많이 낳는다”는 한국군사문제연구원장
- 의료계, 의대 5년제·조건부 휴학에 반발 “교육 현실 무시”
- 이진숙 “내가 탄핵당하지 않았다면…”
- 고교 휴대전화 수거 “인권침해 아냐”…10년 만에 판단 바꾼 ‘안창호 인권위’
- ‘광복절 기미가요’ KBS 경징계 ‘행정지도’…JTBC·MBC 땐 중징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