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반달가슴곰에 관해 최근에 올라온 글을 보고 이 글을 씁니다. 쓰다보니 분량이 좀 많아졌습니다.
사람은 시각에 대한 의존도가 워낙 높다 보니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소홀하게 대합니다.
산불이 난 지역에 가보면 산불이 얼마나 산에 큰 피해를 입히는지 누구나 다 '그냥' 1초만에 알게 됩니다.
나무가 까맣게 다 타죽은 걸 보면,
논리적인 설명같은 거 전혀 필요 없이 산불이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지 '그냥' 알게 되는 거지요.
그런데 그 산에서 다람쥐와 노루,반달곰과 꿩, 여러 수많은 곤충이 사라진 건 사람들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식물이 입은 피해는 한눈에 보이지만, 야생동물이 입은 피해는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때문에
다들 야생동물이 입는 산불피해에 대해서는 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산에 있는 모든 소나무는 (아무도 정확한 숫자를 모르지만) 대략 30~40억 그루 정도 될 거라고들
합니다.
30~40억 그루중 몇 그루 베어넘긴다 한들, 사실 그 피해는 경미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소나무 한 그루를 꺾거나 베는 걸 싫어합니다. 그런데 반달곰, 산양,수달이 사라지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들 생각합니다.
아니 그냥 야생동물이 사라지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개념이 없는 거지요. 무념무상의 경지처럼요.
다들 미국 옐로우스톤국립공원의 늑대 복원 이야기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냥 간단하게 "옐로우스톤의 늑대"라고만 검색을 해봐도 아주 많은 자료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다큐멘터리도 여럿 나옵니다.
예전에 사람들이 옐로우스톤국립공원의 늑대씨를 말렸다가 뒤늦게 캐나다에서 회색늑대를 들여와 복원했더니
그 늑대 덕에 옐로우스톤의 아주 많은 부분에서 큰 변화가 생겼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변화는 예전의 건강했던 옐로우스톤의 생태계가 되살아나는 쪽으로 얼어나는 아주 긍정적인 변화입니다.
지리산 반달가슴곰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립공원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놀이터,공원이 아닙니다.
사실 미국의 National Park라는 말을 그대로 번역해서 '국립공원'이라고 한 것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됩니다.
사람들은 국립공원을 에버랜드나 서울대공원,어린이대공원 같은 놀이공원이라고들 생각하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그런데 국립공원은 놀이터가 아니라 인간의 문명으로부터 쫓겨나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는 야생동식물에게
미지막 도피처,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는 생태 피난지입니다.
국립공원의 가장 중요한 존재가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거기에 부가적으로 사람들의 레져활동을 허용하는
것일뿐 국립공원이 탐방객들의 놀이터라는 개념은 당장 버려야 합니다.
모처럼 날 잡아서 지리산에 가는데 반달곰새끼가 탐방객의 산행을 방해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는 생각은
손님이 주인더러 집 비우고 꺼지라고 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정말이지 무례한 태도입니다.
곰만 풀지 말고 호랑이도 풀어야 한다며 반달곰 복원사업을 비웃는 사람들도 많은 게 사실입니다.
이건 뭐 그냥 무지하기에 나온 말입니다.
생태학에서는 '50마리의 법칙'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고립된 생태계에서 번식가능한 성체가 최소 50마리는
공존해야 근친교배에 따른 열성형질 발현의 폐해를 피한 채로 그 야생동물이 존속가능하다는 법칙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지리산에는 호랑이가 50마리 살아갈 수 없기때문에, 아니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곳에도 호랑이
50마리가 살 수 있는 공간이 없기때문에 호랑이 복원 사업은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겁니다.
표범이나 늑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좀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지만......
호랑이 수컷 한마리가 온대지방의 산에서 살아가려면 최소 서식범위가 500평방km 정도 있어야 합니다.
지리산국립공원 면적이 483평방km입니다. 수컷 호랑이 1마리가 겨우 자리잡을 수 있는 넓이입니다.
암컷의 서식범위는 수컷보다 조금 작습니다.
수컷은 암컷과 서식지를 일부 공유하기때문에 최대로 보더라도 지리산국립공원에 호랑이 암수 1쌍, 즉 2마리가
겨우 살아갈 수 있는 정도입니다.
존속가능한 커트라인인 50마리에 한참 못미치는 2마리입니다. 그래서 호랑이 복원은 아예 시작도 할 수 없는 겁니다.
해봤자 아무 의미가 없으니까요.
호랑이보다 서식범위가 더 작은 표범조차 지리산에 최대 10마리 정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표범복원사업도
별 의미가 없습니다.
도로를 건너 야생동물이 주변 다른 산으로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작업이 그래서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소박한 규모지만 육교처럼 생긴 야생동물 이동통로가 중요한 게 바로 이런 이유때문입니다.
지리산 표범이 섬진강을 헤엄쳐 건너 광양 백운산까지 가기는 어렵겠지만, 북쪽 덕유산,소백산으로 이동할 수 있게
통로를 확보해주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지리산 표범 10마리'를 넘어 '지리산 표범 50마리'는 현실화시키기 어려운 과제입니다.
그래서 표범 복원사업은 하지 않는 겁니다.
일본에는 야생반달곰이 1만 마리 이상서식하고 있어 야생반달곰 생태연구쪽으로는 일본의 노하우와 경험치가
상당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20년쯤 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지리산 반달곰복원사업을 시작할 무렵 일본의 반달곰 생태전문가를 초빙해
지리산 일대를 둘러본 적이 있는데,
그때 그 일본의 반달곰 연구자가 지리산에는 최대 반달곰이 200마리까지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도토리같은 반달곰의 주식이 되는 식량자원의 지속적인 공급이 반달곰 개체수 증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데
밀렵을 잘 막아내기만 한다면 지리산이 감당가능한 반달곰의 최대치를 200마리까지 본 겁니다.
물론 이런저런 제약조건때문에 보통은 지리산에 60~100마리 정도의 반달곰이 살아갈 수 있다고들 보는 게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지리산 반달곰의 개체수가 늘면 일부는 새로운 터전을 찾아 주변으로 이동하면서 반달곰의 서식범위는 확산될 겁니다.
지리산 반달곰 복원사업팀이 원하는 것 역시 반달곰 서식지의 자연스런 확대입니다.
덕유산,소백산, 더 나아가 태백산,오대산,설악산에 반달곰이 잘 자리잡고 사는 게 우리나라 산의 원래 모습입니다.
탐방객은 그 반달곰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산을 찾으면 되는 거구요.
제가 어렸을 때 읽은 만화책중에 동물원 호랑이가 탈출하는 이야기를 담은 만화가 있었습니다.
어느 나이든 포수가 그 호랑이를 추격한 끝에 결국 울면서 그 호랑이를 잡아 죽이고서는 호랑이 사체를 숨기는
스토리입니다.
그 포수가 호랑이를 죽여 숨기는 이유는....그 호랑이의 행방이 묘연해져서 사람들 손에 잡히지 않게 되면,
우리나라 깊은 산중 어느 곳엔가는 호랑이가 살고 있다고들 다들 믿게 되니, 사람들이 산에서 조심스럽게 행동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기때문입니다.
즉 그 호랑이가 없어짐으로써 강원도 어느 곳엔가는 호랑이가 살아있다고 다들 믿게 되고, 그렇게 되면 다들
전처럼 함부로 산에서 나대지 못하게 된다는 거였습니다.
그 나이든 포수는 우리나라의 자연을 위해 그 호랑이가 완벽하게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눈물을 흘리며
그 호랑이를 죽이고서는 사체를 감추어버립니다.
우리나라 산에 호랑이가 단 한마리만 있더라도, 지금처럼 등산객과 백패커들이 산에서 함부로 설쳐대지는 못할 겁니다.
자연 앞에서 많이들 겸손해지겠지요. 산에 갔다가 자기 몸뚱아리가 호랑이 간식거리가 되는 걸 원하지 않을테니까요.
우리나라에는 만년설도,빙하도,사막도 없고, 호랑이나 불곰같은 맹수도 씨가 마른지 오래되다 보니 사람들이
자연을 상당히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만연해 있습니다.
산을 그냥 놀이터로만 생각하는 거지요.
"나의 주말을 위해서 지리산 너는 아름답기만 해야 해, 당연히 위험해서는 안되고, 맹수같은 건 내 신경에 거슬리니
없어야 해. 나의 주말은 자연보다도, 이 우주보다도 더 소중하거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 참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지리산 대신 산자락 팬션이나 리조트 풀장을 찾는 게 여러모로
자연에 더 도움이 될텐데,
그래도 꼭 지리산에는 가겠다면서 자신의 편의를 위해 지리산 반달곰은 존재하면 안된다고들 말하는 사람들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지리산은 등산객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닙니다. 에버랜드하고는 다른 곳입니다.
전에는 곰이 없어서 안심하고 다니던 지리산에 이제 곰을 복원해 불편하다고 푸념할 게 아니라, 반달곰과 마주칠까
두려운 사람은 이제부터 지리산에 가지 않으면 되는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리산의 소나무 1백만 그루보다 그곳의 반달곰 한마리가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리산에, 아니 우리나라 전체에 소나무는 바퀴벌레보다 많지만, 반달곰은 100마리도 채 되지 않으니까요.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은 '전국토의 에버랜드화'라는 큰 추세에 대항해서, 사라진 '야생'을 복원하려는 정말이지
의미 있는 사업입니다.
전과 달리 이제부터는 지리산국립공원 탐방객들이 반달곰 걱정을 해야하는 불편과 위험을 감내하고서 지리산을
찾아야하는 겁니다.
이제부터는 '지리 에버랜드'를 포기하고 '진짜 지리산'에 들고자 하는 사람만 반달곰이 사는 지리산을 찾아가길 바랍니다.
지리산 반달곰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좀더 많은 동호인들이 진지하게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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