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Universe] 경희대학교 한지헌

반드시 그곳에 다다를 테니

혹자는 원하는 목적지에 이르는 과정에서 ‘시작’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한다. 남들보다 이르게 시작하고,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다 보면 자연스레 레이스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결승선까지의 거리가 짧지 않은 장기 레이스일 경우, 언제 시작하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되려 목적지까지 어떤 과정을 거칠 것이며,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을 어떻게 마무리하는지가 더욱 중요하게 작용할 테다. 그렇기에 설령 속도가 나지 않아 불안감이 엄습하고, 때론 뼈아픈 실패를 겪더라도 절대 좌절하지 말자. 차분히 스스로를 단단하게 채워나가는 당신은, 반드시 원하는 그곳에 다다를 테니 말이다.

Photographer 나인비 Editor 김민규 Location 더그아웃매거진 스튜디오

한지헌

출생 2004년 8월 14일
신체조건 185cm 85kg
출신교 서울 건대부중-경기고-청원고-경희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2024년 성적 12경기 52.2이닝 평균자책점 4.75 4승 1패 56탈삼진 33사사구 45피안타

#태극마크를 달고

팬분들에게 인사하면서 시작해 볼게요. (8월 22일 인터뷰)
안녕하십니까! 경희대학교에서 투수를 맡고 있고, 현재 2학년에 재학 중인 한지헌이라고 합니다.

올 시즌도 끝을 향해 가고 있는데, 요즘 일상은 어때요?
얼마 전 대통령기 대회 16강을 마지막으로 팀 차원에서 휴가가 주어졌어요. 근데 전 8월 26일부터 대표팀 합숙 훈련이 있어서, 지금도 계속 운동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명단 발표 후 시간이 흘렀지만, 대표팀 승선을 축하해요! 태극마크를 단 소감이 궁금해요.
처음엔 과분한 게 아닌가 싶었어요. 태극마크까지 달았으니 평소 행동도 그렇고, 운동할 때도 원래보다 신중하게 판단해야겠다는 사명감도 들었고요.

마침, 모교 최태원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을 맡아서 심리적으로 안정되는 느낌도 있겠어요.
아무래도 감독님의 스타일을 잘 알고 있으니까 편하죠. 게다가 감독님이 평소에 아버지처럼 이끌어주시거든요. 대신 그만큼 감독님의 이름에 먹칠하지 않으려면, 저 역시 대표팀에서 맡은 역할을 잘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명단이 발표됐을 때 최태원 감독이 따로 전한 얘기는 없었나요?
기량에 관한 것보다는 국가대표로서의 책임감을 강조하셨어요. 일단 기본적으로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고 하셨죠. 또 최근에 선수들의 SNS로 문제가 되는 경우가 생기곤 하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말고, 솔선수범하길 바란다고 말씀하셨어요.

이번 대표팀엔 대학 선수뿐 아니라 이미 프로 유니폼을 입은 선배들도 있죠. 다양한 소속의 선수들과 뛰면서 기대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프로에 먼저 간 선배님들에게 여러 가지를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커요. 어떤 노하우가 있는지, 어떻게 공을 던지는지 물어보고 싶어요. (특별히 만나보고 싶은 선배는 누구예요?) NC 다이노스의 손주환 선수요. 대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쭉 지켜봤는데, 폼도 와일드하고 투구할 때의 리듬이 멋있다고 느꼈거든요. 그리고 제가 체인지업이나 스플리터 종류의 변화구가 없는데, 기회가 된다면 그런 구종들은 어떻게 던져야 하는지도 배우고 싶어요.

#에이스답게

올해 6월에 열린 고교‧대학 올스타전에 선발됐죠. 당시 대학 올스타의 선발 투수로 낙점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무슨 기분이었나요?
자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됐어요. 무엇보다 많은 분이 지켜보는 무대에 참가한다는 것만으로도 확실히 메리트가 있잖아요. 그래서 그동안 준비한 걸 보여주겠다는 욕심이 있었는데… 실력이 기대만큼 잘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상대하는 선수들이 모두 후배였지만, 다들 1년 동안 고교야구를 주름잡은 주인공이었어요.
저도 거기에 뒤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제가 가진 무기로도 충분히 괜찮은 결과를 낼 수 있겠다 싶었는데, 되려 마운드에서 힘이 들어가더라고요. 그리고 구속을 자꾸 신경 쓰다 보니까 역효과가 난 것 같아요.

경희대 동료인 박효재와 선발 배터리를 이뤘어요. 친구와 함께 경기에 나서는 느낌은 어땠나요?
사실 팀에선 3학년 선배와 배터리를 이룬 적이 더 많았어요. 연습 피칭을 할 때 호흡을 맞춰본 적은 있었지만요. 그래도 다른 팀의 포수랑 하는 것보다는 편안했고, 제 공을 잘 알기 때문에 리드도 잘해줬어요.

U-리그에선 팀 내 최다인 33.1이닝을 소화하고 4승 무패의 성적으로 에이스 노릇을 했어요. 작년에 비해 이닝도 큰 폭으로 늘어났는데, 어떤 점이 성적 향상의 원동력이었나요?
작년 시즌이 끝나고 동계 훈련에 가기 전까지 쉬지 않고 야구를 했어요. 제 몸이 왜소한 편이라고 생각해서 웨이트 트레이닝도 철저히 했고요. 그리고 학교에 트레이너 선생님이 계시는데, 그 선생님과 지난겨울에 착실하게 준비한 게 주효했다고 봐요.

본인의 공에 황두성 코치가 호평을 남기기도 했어요. 특히 커브의 위력이 상당하는 평가가 있었고, 본인도 그 공에 자신감이 있다고 했더라고요.
원래 중학교 땐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썼어요. 근데 왠지 모르게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커브가 갑자기 잘 들어가더라고요. 원래도 가끔 던지긴 했는데, 그립을 살짝 바꾸고 나니까 각도 커지고 구속도 빨라졌어요. 그래서 고등학교 3학년 때는 한창 잘 던졌을 때의 감을 잃지 않으려고 했어요. 이젠 저만의 것이 됐다고 느낍니다.

올 시즌을 돌이켜 봤을 때 만족스러운 점과 아쉬운 점을 하나씩 뽑아본다면요?
초반에 스타트를 잘 끊은 점이 만족스러웠어요. 이번 대통령기에서도 팀은 아쉽게 탈락했지만, 개인적으로는 투구 내용도 괜찮았다고 느꼈거든요. 다만 6월에 있었던 올스타전에서 부진한 것도 그렇고, 그 이후에 리그 경기에서도 짧게 슬럼프가 이어진 게 아쉬웠어요. 시즌 초에 잘 풀리니까 그 페이스를 이어가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고요. 후반기에도 전반기만큼은 해내야 하고, 공도 더 빨라져야 한다는 점을 계속 되뇐 기억이 나요. 그런 생각보다는 평균치를 유지한다는 마음가짐으로 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해요.

‘투수 한지헌’의 최대 매력은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누구를 만나도 위축되지 않고, 주무기인 커브에 굉장히 자신 있다는 거요. 원래 제가 공격적으로 승부를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조금 늦었을지언정

야구는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어릴 때만 해도 야구를 잘 몰랐어요. 근데 어느 날 부모님이 집에서 야구를 보고 계셨는데, 그때 마침 안지만 선수가 공을 던지고 있었어요. 그걸 보고 막연히 멋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아버지한테 저도 야구를 한번 시켜달라고 말씀을 드렸고, 집 근처에 있는 유소년 야구단에 들어갔어요. 처음엔 취미반으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흥미가 생겨서 엘리트반으로 옮기고 싶다고 얘기했어요. 그걸 듣고 부모님도 고민을 하셨는데, 결국 원하는 대로 시켜주셨어요. 그게 초등학교 5학년이었고요.

야구를 시작하기에 그리 이른 나이는 아니었네요.
그래서 부모님도 살짝 걱정하셨어요. 만약 야구를 시작할 거면 무엇보다도 끈기를 갖고 해야 한다고 하시면서요. 늦게 시작한 만큼 처음에 실력은 뒤처질 수 있겠지만,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열심히 할 수 있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는 거였죠. 그래서 저도 자신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일찍 야구를 시작한 친구들을 따라가는 게 힘들기도 했을 텐데요.
초등학생 때 제가 왜소하고 키도 작아서인지 힘에서 밀릴 때가 적지 않았어요. 처음엔 야구를 늦게 시작한 게 아쉬웠죠. 하지만 그럴수록 기본기를 철저하게 배우려고 노력했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점점 몸에 힘이 붙으면서 실력도 자연스럽게 늘어났어요.

투수는 언제부터 시작한 건가요?
원래는 유격수였어요. 근데 제가 건대부중 시절에 감독님께서 포구나 배팅 실력은 조금 부족하지만, 투구하는 건 자질이 있어 보인다고 하신 적이 있어요. 게다가 마침 중학교 1학년 말에 15cm 정도 크면서 공에 더욱 힘이 붙겠다는 판단도 들었고요. 그렇게 한번 마운드에 올라갔는데, 지금까지 투수를 하고 있네요.

원래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2학년 때 청원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더라고요.
중학교 3학년 때 수술을 했어요. 그 여파로 이듬해까지 재활을 했는데, 팔도 잘 안 낫고 하니까 빨리 복귀해야겠다는 마음에 조급증이 생겼어요. 그렇게 성급하게 복귀하고 나니까 또 여러 군데를 다치기도 했고요. 문제는 경기고에 워낙 잘하는 선수가 많았다는 거예요. 여기에 있다 보면 영영 기회를 못 받겠다 싶어서 전학을 결정했어요. 그때 마침 중학교 시절 감독님이 청원고 출신이라, 추천을 받고 학교를 옮겼어요.

어린 나이에 수술을 받았는데, 재활하는 과정이 힘들진 않았나요?
쉽지 않았죠. 친구들은 계속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고 있는데, 전 정체된 느낌이 드니까 조급한 마음도 들었고요. ‘나도 빨리 저렇게 경기를 뛰어야 하는데…’하고 곱씹으면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곤 했어요.

청원고로 전학을 한 후 2학년 땐 2.2이닝을 소화했고, 3학년으로 올라간 후에 35.2이닝으로 이닝을 늘리면서 본격적으로 활약했어요. 재활 이후 본인의 기량은 만족스러웠나요?
긍정적으로 볼 만한 부분이 있었어요. 일단 제가 원래 구속이 그렇게 빠르진 않았거든요. 고등학교 2학년 당시 봉황대기 대회에서 최고 구속이 134km/h였는데,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하고 나서 144km/h까지 올라갔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운 한 해였어요. 다만 후반기에 구속이 줄어들면서 프로 지명까지 이어지진 못했지만요.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했을 땐 진로 고민이 컸겠어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죠. 이 길이 내게 맞는 건지, 야구를 그만하는 게 맞는 건지 고민했을 정도로요. 그땐 많이 울기도 했는데, 주변에서 ‘대학 선수들에게 얼리 드래프트라는 제도가 있다’, ‘2년 뒤에 다시 도전할 기회가 있다’라고 격려를 해줘서 힘을 낼 수 있었어요.

#마음을 다잡고

고민이 있을 때면 책에서 해답을 찾는다고 들었어요. 기억에 남은 책이나 구절이 있나요?
하비 A. 도프만의 ‘이기는 선수의 심리공식’이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었어요. 그 책을 보면 마운드에서 흔들릴 때 어떻게 마음을 다잡고, 그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지 나오거든요. 그걸 보고 심리적으로 큰 도움을 받았어요.

운동을 하면서 책을 챙겨보기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해결 방법으로 독서를 택한 계기가 있었나요?
중학교 때 재활을 하면서 조금씩 읽기 시작했어요. 또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친구들은 잘하고 있는데, 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느낌이 들어서 불안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무작정 서점에 가서 책을 자주 읽곤 했어요. (불안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책이 큰 힘이 됐나 보네요?) 당시에 자기계발서를 주로 읽었고, 주변에서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콘텐츠를 찾아보곤 했어요. 특히 NBA에서 활약한 코비 브라이언트 선수의 이야기가 그랬어요. 브라이언트 선수가 새벽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남들보다 몇 배나 큰 노력으로 최고의 선수가 된 케이스잖아요. 그 선수를 보면서 저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더라고요.

현재 등번호가 17번인 거로 알고 있는데, 혹시 동경하는 선수의 번호인가요?
임찬규 선수를 워낙 좋아해서 처음엔 1번을 달고 싶었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달았을 정도로 애착이 있거든요. 근데 대학교 야구부에서 1번이랑 11번을 모두 선배님들이 달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남는 번호 중에서 오타니 쇼헤이 선수의 17번으로 골랐습니다.

임찬규 선배의 어떤 부분이 그렇게 좋은지 궁금해요.
임찬규 선수가 빠른 구속으로 승부하는 유형이 아니잖아요. 타자와 수 싸움을 하고, 볼 배합을 영리하게 가져가고, 치밀하게 제구를 잡으면서 본인이 프로에서 이겨낼 방법을 찾은 게 멋있다고 느꼈어요. 그리고 평소에 성격이 밝은 스타일이잖아요. 그런 걸 보다 보면 괜히 저도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요. (대화를 나누다 보니 본인도 비슷한 스타일로 느껴지는데, 동의하나요?) 그 정도까진 아니지 않나요? (웃음) 전 조용할 땐 조용한 스타일이거든요. 지금은 꽤 말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요.

공교롭게도 임찬규 선배처럼 본인도 커브가 주무기네요.
제 커브가 속도가 빠른 파워커브라면, 임찬규 선수는 휘는 각이 크고 타이밍을 뺏기 좋은 커브에 가까워요. 그래서 때론 그렇게 속도를 줄여서 완급 조절을 할 수 있으면 어떨까 싶기도 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임찬규 선수의 체인지업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그런 것들을 닮고 싶어서 지금부터 연습하고 있어요.

경기를 준비할 때 EDM을 듣는다고 하던데요. 요즘도 여전한가요?
등판하기 전에 흥을 끌어올려야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항상 그런 노래만 듣는 건 아니지만, 경기 전만큼은 일부러 EDM처럼 빠른 노래를 들으면서 신나는 상태를 만들곤 해요.

평소에는 다른 장르의 노래도 자주 듣나 보네요?
경기가 없을 때는 발라드도 듣고, 싱잉 랩 종류의 노래도 즐겨들어요. 가수도 딱히 특정 아티스트를 정해놓고 듣는 편은 아니고요. 그래도 선호하는 가수를 뽑자면, 허각이나 데이먼스 이어요. (혹시 오늘 오면서 들은 노래 하나만 추천해 줄 수 있어요?) 데이식스의 ‘Welcome to the show’를 들으면서 왔습니다!

#나만의 매력으로

유튜브 채널 ‘경희대야구부프런트’에서의 활약이 대단하더라고요. 출연 요청이 들어오면 적극적으로 응하는 편인가요?
처음엔 신경을 안 썼는데, 몇 번 찍고 나니까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먼저 찍어달라고는 안 하지만, 출연하는 거 자체엔 긍정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와츠 인 마이 백’ 영상을 재밌게 봤어요. 그 영상에서 사인을 멋들어지게 하던데, 언제 만든 거예요?
중학교 때요. 수업을 듣는데 어느 날은 영 집중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책에다가 낙서하듯이 사인을 만들어본 거죠. 특별하게 사인을 할 일이 자주 있진 않은 터라 그걸 지금까지 쓰고 있긴 한데… 나중에도 이걸 그대로 쓸지는 모르겠네요.

영상을 보면 친구들과 사이도 좋고, 굉장히 밝은 성향으로 보여요.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긴 하지만, 소위 ‘인싸’…라고 하긴 민망한 부분이 있어요. MBTI도 I랑 E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거든요. (최근에 검사했을 때는 뭐로 나왔어요?) ENTJ였던 거로 기억해요. (딱히 T 성향인 느낌은 잘 안 드는데, 평소 주변 사람들한테 칼 같은 면모를 보여주나 봐요?) 사실 반대예요. 친구들도 저한테 F가 아니냐고 할 정도거든요. 근데 저 자신에게는 엄격한 편이에요. 마운드 위에 서 있거나, 제가 해야 할 일을 할 때만큼은 T 같아지는 경우가 자주 있어요.

‘프런트 조회수 담당’이라는 애칭이 있더라고요. 본인이 나오는 영상의 조회수가 잘 나오곤 하는데, 그 성공에 본인의 비중은 어느 정도라고 말하고 싶어요?
처음 출연했을 때 조회수가 엄청 높게 나왔더라고요. 그 후로 나오는 영상들도 괜찮게 나오고요. 그래서 제가 스타트를 잘 끊지 않았나… 그래도 50% 이상은 되지 않을까요?

높은 조회수를 만드는 본인만의 인간적인 매력은 뭐라고 보나요?
이건 주변 형들이 얘기한 거긴 한데, 막 바보 같다고 그러더라고요. 순진하다는 얘기도 하고요. 그런 부분이 매력이지 않나 싶습니다. (예를 들면 ‘와츠 인 마이 백’에서 가방 정리가 잘 안 돼 있는 모습이요?) 에이 그건…! (울상) 제가 정리할 때는 날을 잡고 한 번에 하는 스타일인데, 하필 촬영 전에 바쁜 일이 있어서 미처 정리를 못 했습니다. 오해예요. 오해.

대학 진학 후엔 학업도 병행해야 하는데, 야구와 공부를 동시에 해내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1학년 때 힘든 적이 많았어요. 고등학교 때는 수업을 잘 안 들었거든요. 근데 대학교에서는 과제도 해야 하고, 수업 때 조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어요. 필기도 열심히 해야 하고요. 그리고 그게 다 학점으로 연결이 되다 보니까 적응하기가 어려웠죠. 그래도 지금은 익숙해져서 잘 해내고 있습니다.

두 가지 과업을 동시에 해내는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다면요?
제가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고, 친구들의 도움을 구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았어요. 과제를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문하기도 하고, 모르는 게 있으면 공유하기도 하면서요. 그러다 보니 자료 조사나 PPT 만드는 실력은 처음 학교에 들어갔을 때보다 훨씬 늘었어요.

지금까지 네 번의 학기 동안 가장 기억에 남은 수업은 어떤 거였나요?
기억이 잘 안 나서 딱 하나를 고르기가 애매하네요. 제일 성적이 잘 나온 걸 얘기해 보자면 전공 실기 과목 중에 야구 수업이요. (그래도 야구가 주특기인데, 그걸 고르는 건 반칙 아니에요?) 에이, 야구 말고도 성적 잘 받은 과목 있어요! ‘체육 원리’라는 과목이 있는데, 그것도 되게 잘 나왔어요. (오, 그 수업에선 어떤 걸 배웠어요?) 무슨 과목이었냐면… 뭐더라?

#모범이 되겠습니다

이 인터뷰가 나갈 때면 드래프트 결과가 나왔을 시점이에요.
그래서 더 떨려요. 잡지를 받을 땐 지명을 받고 웃으면서 행복하게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올해가 본인에게는 중요한 순간으로 남을 텐데, 나중에 이 순간을 돌이켜보면서 어떤 기억으로 남길 바라나요?
지금까지만 해도 야구 인생에서 가장 뜻깊은 한 해로 남을 거예요. 사실 2학년임에도 이렇게 출전 기회를 받기가 흔치 않은 일이잖아요. 그 가운데에서 결과도 잘 따라줬고요. 그리고 이제 야구를 대하면서 예전보다 진중해졌다는 걸 느껴요. 투수로서 경기를 운영하는 방법도 배웠고, 여러모로 큰 성장을 이룬 순간으로 남았으면 해요.

이 자리에서 메시지를 남기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우선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제가 정말 부족한 아들이지만, 그런 절 늘 지지해주셨거든요. 그리고 부모님만큼이나 응원해주셨던 모든 분께도요. 좌절하고 싶을 때마다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신 주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전하고 싶어요.

오늘 인터뷰하러 온다고 부모님에게 연락은 남기고 왔나요?
그럼요. 되게 영광스러운 일이니까, 잘 준비해서 인터뷰 멋있게 하고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나중에 이 인터뷰를 읽을 부모님에게 특별히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이렇게까지 뒷바라지해주시는 게 정말 쉽지 않다는 걸 알아요. 지금까지 고생하신 것도 잘 아니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꼭 그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항상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야구선수 한지헌’은 어떤 이미지로 기억됐으면 하나요?
마운드에서 항상 당차고, 행동 하나하나에 자신감이 넘치는 투수요. 그리고 늘 에너지가 넘치는 이미지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그럼 ‘사람 한지헌’은요?)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 줄 알고, 활발하고 긍정적인 사람이었으면 해요!

마지막으로 팬분들에게 끝인사를 남기면서 인터뷰를 마무리해 볼게요.
아직 제가 대학생 신분이라 절 모르는 분이 많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기에 이번 국제대회를 포함해서, 앞으로 더 멋진 모습과 강렬한 인상을 보여드릴 수 있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요즘 야구 외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사건이나 사고가 나오고 있는데, 야구 실력만큼이나 사생활적인 부분까지 신경을 써서 타의 모범이 될 수 있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4년 162호 (10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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