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성향의 새 교황, 쇄신·전통 함께 이을 적임자로 낙점

2025. 5. 10.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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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7대 교황 레오 14세
레오 14세 교황이 8일(현지시간) 신임 교황으로 선출된 직후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서 군중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2025년 5월 8일,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가톨릭교회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선거권을 가진 추기경의 80%가 최근 12년 사이에 서임된 이들로 상호 교류가 충분하지 않았을 상황이기에 선출에 걸리는 기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예측하기도 하였지만, 네 번째 투표에서 새 교황이 선출됐다. 예상보다 이르게,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선출된 것은 많은 언론에서 분석하듯 전임 교황의 개혁 정신을 이으면서도 더 유연한 방식으로 교회를 이끌어갈 새 지도자를 바라는 요구와 기대가 컸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교회가 세상의 ‘생명을 증진하고’(요한 복음 20장 31절 참조) ‘모든 이의 삶을 더 생기있고 더 인간답게’(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32~34항 참조) 만드는 본연의 사명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도록, 예언자의 안목으로 가톨릭교회를 이끌어왔다. 그러나 성경이 전하는 예언자의 사명 수행이 늘 그러하였듯, 그의 사목 활동을 반기는 이도 있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았다.

콘클라베 이전에 추기경단은 11차례에 걸친 전체회의에서 현재 교회가 마주한 여러 주제를 다루었다. 전 세계적인 기후 위기와 생태 환경 보전, 빈곤 및 경제적 불평등의 양극화와 이로 인한 문제들(난민과 이주민 등), 무력 분쟁 해소와 평화 회복 등 교회 외적인 주제들뿐 아니라, 시노드 정신에 따른 교회 건설, 세속주의와 상대주의에 대한 대응, 교회 내 보수와 진보의 통합과 일치, 가정과 생명 윤리 문제(낙태·피임·동성애 등) 등 교회 내부의 주제들도 폭넓게 다루었다.

이 과정에서, 전임 교황의 쇄신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는 데에는 추기경들 사이에 이견이 없었을 것이지만, 일부에게 때로 파격적으로 여겨졌던 방식에 대한 우려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보수적이라고 여겨지는 미국 가톨릭교회 출신이면서도 선교사로 활동하였고 전임 교황의 신임으로 교황청 주교부 장관직을 수행하고 있었던 프레보스트 추기경에게 많은 추기경들의 지지가 모이게 하는 요인이었을 것이다.

김주원 기자
이러한 바람에 화답하듯 새 교황은 가톨릭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사회정의를 다룬 회칙 ‘새로운 사태’(1891)를 발표했던 레오 13세 교황의 이름을 이어받아 ‘레오 14세’라는 교황명을 택했다. 동시에, 전임 교황이 2013년 선출 당시 너무 화려하다는 이유로 거절했던 교황의 전통 복장(붉은 망토와 영대)을 착용하고 신자들 앞에 나섰다. 쇄신과 전통, 둘 모두를 수용하는 모습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라는 성경 말씀으로 교황 축복(Urbi et Orbi)을 시작하면서, “사명을 수행하는 하나의 교회, 다리를 놓고 대화를 하는 교회, 이 드넓은 광장처럼 언제나 열려 있고 받아들이는 교회가 되는 길을 함께 모색”하자고 권고했다.

교황을 뜻하는 라틴어 Pontifex는 ‘다리’를 의미하는 명사 pons와 ‘만들다’를 의미하는 동사 facere의 합성에서 유래한다. 문자 그대로 ‘다리를 놓는 사람’이다. 교회의 사명 수행을 위해 전임 교황이 불살랐던 쇄신의 불을 꺼뜨리지 않으면서도,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와 세상을 잇는 다리의 역할을 통해 평화를 일구어내는 것, 새 교황 레오 14세가 마주한 과제일 것이다.

민범식 신부·서울대교구 대신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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