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거래·결제 주기 단축은 필수…장기적으론 실시간 결제” [헤경이 만난 사람-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

홍태화 2026. 4. 21.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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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본시장, ‘레벨업’ 단계 진입
부동산→증시로 머니무브 본격화
“자본시장이 ‘생산적 금융’ 역할”
“부실 상장기업 퇴출은 필수 과정”
중복상장 문제는 핵심 개혁 과제
韓 ‘아시아 거점 거래소’ 도약 목표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15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 이사장은 “한국 자본시장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구조와 제도를 동시에 혁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세준 기자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한국 자본시장이 ‘레벨업’ 단계에 진입했다고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중장기적으로는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구조적 전환기’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국내 주식 거래 시장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글로벌 추세에 맞춰야 한다며 ▷24시간거래 도입 ▷결제 주기 단축(T+1) 등을 핵심 과제로 꼽았다. 나아가 블록체인 기반의 실시간 결제(T+0)까지 염두하겠다고 강조했다.

부실기업 퇴출 의지도 피력했다. 그는 “국내 상장사 시가총액이 미국의 1/20 수준인데 상장사 수는 절반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경제 규모 대비 상장사 수가 너무 많아 국내 증시의 질적 하락을 야기한다고 비판했다. 부실기업 퇴출을 적극 추진하고 중복상장 원천 금지를 강화하는 것도 국내 증시의 중장기적 생존을 위한 고육지책이다.

또, 자본시장의 역할을 ‘생산적 금융’으로 재정의하며, 한국거래소가 ‘아시아 거점 거래소’로 도약하겠다는 성장 전략도 피력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옛말…이유 있는 코스피 랠리=정 이사장은 최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진행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국내 증시의 급격한 상승을 단순한 단기 랠리가 아닌 구조적 변화의 결과로 규정했다.

그는 “2025년 중반까지만 해도 코스피는 2500선에 머물러 있었지만 이후 3000, 4000을 넘어 5000, 6000선까지 올라왔다”며 “이는 유동성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흐름이 아니라 기업가치 제고 정책과 산업 경쟁력 강화가 맞물린 결과”라고 설명했다.

실제 지표도 변화를 뒷받침한다. 정 이사장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기준 한국 증시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약 2배 수준으로 올라서며 일본, 영국 등 주요 시장과 유사한 수준까지 도달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내총생산(GDP) 대비 시가총액 비율 역시 200% 수준으로 일본, 대만과 유사한 수준까지 상승했다”며 “이제는 한국 시장이 선진 시장으로 가는 초입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과거 ‘저평가 시장’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한국 증시가 이제는 글로벌 주요 시장과 같은 범주에서 평가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그는 이런 변화의 핵심 동력으로 ‘밸류업 정책’을 꼽았다. 상법 개정, 배당소득 분리과세, 지배구조 개선 등 일련의 제도 변화가 투자자 신뢰를 끌어올렸다는 설명이다.

정 이사장은 “과거에는 대주주 중심 구조였다면 이제는 소액주주를 포함한 모든 투자자의 이익이 비례적으로 보호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이 같은 변화가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본시장이 ‘생산적 금융’ 이끈다”=그는 자본시장의 역할을 ‘생산적 금융’으로 재정의했다. 현재 한국 가계 자산의 약 65%가 부동산에 집중된 구조에서는 자본시장이 성장 동력으로 기능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정 이사장은 “부동산은 가격 상승효과가 일부 계층에만 집중되는 경향이 있고, 생산과 고용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자본시장을 통해 기업 투자로 이어지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경제 전체의 성장 잠재력이 확대된다”고 강조했다.

정부 역시 이런 방향에 맞춰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기대수익률을 낮추는 동시에 금융투자에 대한 세제 지원과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는 방식이다.

그는 “결국 자금은 기대수익률이 높은 곳으로 이동한다”며 “부동산에서 자본시장으로 자금이 자연스럽게 이동하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장사 수 너무 많아…부실기업 퇴출 강화해야”=시장 신뢰 회복을 위한 구조개혁도 본격화되고 있다. 정 이사장은 한국 증시의 구조적 문제로 ‘과도한 상장사 수’와 ‘부실기업 존속’을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 경제 규모 대비 상장사 수가 많고, 그중에는 실질적인 경쟁력을 상실한 기업도 포함돼 있다”며 “이들 기업이 시장에 남아 있으면 자금이 비효율적으로 배분될 뿐 아니라 불공정 거래의 온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시장에 약 2700개 상장사가 상장돼 있는데, 이는 미국의 절반 수준”이라며 “경제 규모를 생각했을 때 상장사 수가 너무 많다”고 강조했다. 미국 상장사 시총은 국내 상장사 시총의 20배에 달한다. 하지만 상장사 수는 약 2배 많다. 미국 시장과 비교할 때 시총 대비 상장사 수가 너무 많다는 의미다.

거래소는 부실기업 퇴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상장폐지 기준을 강화하고 감시·심리 속도를 높이는 한편, 자금이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으로 재배분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목표다.

정 이사장은 “퇴출은 시장의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라며 “이를 통해 새로운 기업이 진입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된다”고 강조했다.

중복상장 문제 역시 핵심 개혁 과제로 꼽았다. 한국은 모회사와 자회사가 동시에 상장된 비율이 주요국 대비 높은 수준이다.

정 이사장은 “수익의 원천은 하나인데 여러 회사가 나눠 갖는 구조는 결국 주주가치 훼손으로 이어진다”며 “앞으로는 원칙적으로 중복상장을 금지하고, 모회사 주주 권익이 침해되지 않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실제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의 중복상장 비율은 11.2%에 달했다. 미국(0.05%)에 비하면 220배가 넘는 수준이고, 일본(4.0%), 중국(2.4%), 대만(2.7%)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해도 높다.

불공정 거래 근절을 위한 시스템도 대폭 강화되고 있다. 거래소는 최근 창립 이후 처음으로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을 인수해 시장 감시에 활용하고 있다. 기존에는 계좌 단위로 거래를 추적했지만, 이제는 개인 단위로 분석할 수 있다.

정 이사장은 “불공정 거래를 보다 빠르고 정밀하게 탐지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며 “감시부터 심리까지 걸리는 기간도 과거 6개월에서 3개월 이하로 단축됐다”고 설명했다.

기술특례 상장 제도에 대해서는 기회 확대와 함께 엄격한 사후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혁신 기업에는 충분한 기회를 제공해야 하지만 일정 기간 내 성과를 입증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퇴출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그래야 자본이 효율적으로 배분되고 새로운 기업이 지속해서 유입될 수 있다”고 말했다.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 대해서도 유사한 원칙을 제시했다. 다양한 상품 출시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투자자 관심이 줄어든 상품은 정리하는 것이 시장 효율성을 높이는 데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한국이 ‘아시아 거점 거래소’로 도약해야”=정 이사장은 인터뷰 내내 글로벌 경쟁 환경 변화를 강조했다.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위기의식에서다.

자본시장은 국경 중심 구조에서 유동성 중심 구조로 전환되고 있으며, 투자자들은 더 이상 자국 시장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 개인 투자자들이 미국, 일본, 중국 시장으로 적극적으로 자금을 이동시키는 흐름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디파이(DeFi·탈중앙화금융), 토큰화 증권,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 등 새로운 금융 인프라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정 이사장은 “이제는 거래소가 국가 단위로 보호받는 시대가 아니라 글로벌 경쟁에 직접 노출된 산업이 됐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그는 제도 혁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24시간 거래 도입과 결제 주기 단축(T+1)은 필수 과제로 꼽았다.

그는 “글로벌 시장이 이미 24시간 거래로 이동하고 있는데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유동성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며 “글로벌 프리미엄 시장이 되기 위해서는 국제 기준을 선제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블록체인 기반 실시간 결제(T+0)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결제 속도와 효율성은 시장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라며 “기술 발전에 맞춰 제도를 빠르게 바꾸지 않으면 시장 자체가 도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목표는 ‘아시아 거점 거래소’로의 도약이다. 정 이사장은 “한국이 글로벌 프리미엄 시장으로 자리 잡지 못하면 기업과 자금은 더 큰 시장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며 “아시아에서 중국과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의 시장으로 성장해야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모든 변화는 단순한 제도 개선이 아니라 시장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며 “한국 자본시장이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구조와 제도를 동시에 혁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리=홍태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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