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 하나로 강원도 삼척에서 서울로 올라온 박상철.

손에 쥔 건 단돈 20만 원뿐이었다.
반지공장에서 한 달에 9만 원, 미장일로 하루 9만 원을 벌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렇게 만든 1,000만 원.

하지만 그 돈은 작곡가라는 사람에게 속아 한순간에 사라졌다. 허술한 메들리 테이프 한 장이 전부였다.

모든 걸 잃은 청년은 충무로역, 구로역, 서울역을 전전하며 노숙 생활을 시작했다.
밥은 굶기 일쑤였고, 박스를 덮고 자는 날도 많았다. 어떤 날은 충무로 결혼식장 근처에서 구걸도 했다.
“젊음이 자산이니 뭐든 해낼 수 있을거예요”라는 노숙자의 말이 마음에 박혔다.

포기 대신 선택한 건 미용 기술. 군 복무 후 삼척으로 돌아간 박상철은 ‘박상철 헤어아트’를 열고 원장이 됐다.



손님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노래하는 미용사’로 입소문을 탔고, 결국 ‘전국노래자랑’ 삼척편에 출전해 최우수상을 받는다.
이 무대가 그의 인생을 바꾸는 시작점이 됐다.

가수의 꿈을 안고 다시 상경했지만 현실은 여전히 냉정했다.
옥탑방에서 살며 방송국을 찾아다녔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라디오국 앞을 지키며 CD를 건넸지만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급기야 방송국 복도엔 "가수 출입 금지"라는 안내문까지 붙었다.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삼척에서 올라온 청년은 ‘언젠간 터진다’는 믿음으로 버텼다.

2002년, 두 번째 앨범의 타이틀곡 ‘자옥아’가 세상에 나왔다. 라디오 PD 한 명이 그의 사연을 듣고 프로그램에 소개하면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굴은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고, 재연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5년, 운명을 바꾼 ‘무조건’이 발표됐다.
처음부터 방송보다는 노래교실과 케이블 음악채널을 공략했고, 이 전략은 적중했다.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결국 ‘도전 1000곡’ 등 프로그램에서 유명 연예인들이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대박이 터졌다.

'무조건’은 선거송, 응원가, 축가로 널리 쓰이며 국민 트로트가 됐다.
이후 발표한 ‘황진이’, ‘빵빵’ 등도 연이어 히트하면서 그는 명실상부한 스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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