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에서 장수명 제트엔진을 자체 기술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나라는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일본, 우크라이나 정도가 전부죠. 그만큼 진입장벽이 높고, 한 번 그 문턱을 넘어서면 항공 산업 전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핵심 기술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4월 26일, 대한민국이 마침내 그 좁은 문을 두드렸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ADD)가 개발을 주도한 장수명 제트엔진 'KTF5500' 1호기가 창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공장에서 조립을 마친 것이죠.
그동안 전량 수입에 의존해 왔던 핵심 부품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이번 성과는 단순히 엔진 하나를 완성한 차원을 넘어, 무인기는 물론이고 KF-21 같은 군용기, 나아가 비즈니스 제트기 시장까지 본격적으로 노릴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기도 합니다.
단수명과 장수명, 제트엔진을 가르는 결정적 차이
제트엔진은 크게 단수명 엔진과 장수명 엔진으로 나뉩니다.
두 엔진을 가르는 핵심은 결국 '얼마나 높은 온도를 얼마나 오래 버텨내느냐'에 달려 있죠.

제트엔진 내부에서는 팬이 초고속으로 회전하면서 동시에 고온의 연소가스를 견뎌야 하는 극한의 환경이 펼쳐집니다.
이런 조건을 수십 시간만 버틸 수 있는 단수명 엔진은 미사일 같은 일회용 무기체계에나 쓸 수 있을 뿐입니다.
장시간 비행이 필요한 무인기나 사람이 타는 항공기에는 애초에 장착이 불가능한 것이죠.
ADD와 한화에어로의 도전, 그리고 좁은 진입장벽
지금까지 ADD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설계해 온 제트엔진은 대부분 단수명 엔진이었습니다.
장수명 제트엔진의 벽이 그만큼 높았던 것이죠.
앞서 언급했듯 이 기술을 실용화한 국가는 전 세계에서 일곱 나라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나마도 우크라이나는 전쟁의 여파로 엔진 개발 능력을 상당 부분 잃어버린 상태입니다.
한국과 비슷한 도전에 나선 튀르키예 역시 대외적으로는 활발히 홍보하고 있지만, 실제 내실은 다소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장수명 엔진 1호기 조립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성과인 것입니다.
KTF5500, 어떤 엔진인가
이번에 조립을 마친 KTF5500은 무인기에 탑재할 수 있는 장수명 제트엔진입니다.
2019년 12월에 개발이 시작돼 2027년 연말까지 이어지는 장기 프로젝트의 결실이죠.

ADD가 개발을 총괄하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엠엔씨솔루션 등 국내 방산업체들이 체계 종합과 구성품, 보기 시스템 제작에 두루 참여하고 있습니다.
추력은 5500파운드(lb)급으로 우크라이나의 AI-222 엔진과 비슷한 수준입니다.소형 훈련기나 무인항공기에 적합한 체급이죠.
수명은 구체적인 수치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약 2000시간 이상 운용이 가능한 수준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KF-21의 발목을 잡았던 그 문제, 해법이 보인다
KTF5500의 완성은 대한민국 방위산업의 마지막 미개척지를 정복했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동시에 강력한 수출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뜻이기도 한 것이죠. 사실 이 엔진 문제는 그동안 한국 방산 수출에 두고두고 걸림돌이 돼 왔습니다.

K2 전차나 K9 자주포 같은 지상 무기체계도 한때 엔진의 수출 승인(E/L) 문제로 난항을 겪다가, 국산 파워팩을 장착하면서 비로소 이집트 같은 신규 시장을 뚫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곧 실전 배치를 앞둔 KF-21 보라매 전투기 역시 현재 미국 GE사의 F414 엔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글로벌 시장에 본격적으로 나섰을 때 엔진 수출 승인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 왔죠.
장수명 엔진 국산화는 바로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인 셈입니다.
조립은 끝, 그러나 시험은 이제 시작
물론 1호기 조립이 완료됐다고 해서 모든 과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넘어야 할 산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죠. 우선 개발이 지연되면서 KTF5500을 탑재하기로 했던 ADD·대한항공의 'KUS-LW(저피탐 무인편대기)'에는 현재 우크라이나제 AI-222 엔진이 대신 들어가 있는 상태입니다.

KTF5500을 실제로 시험하려면 추가 기체 제작이 필요한데, KUS-LW의 증산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지상 시험을 넘어 비행 시험 단계로 나아가는 데 물리적 제약이 있는 셈이죠.
게다가 최신 무인기 엔진의 핵심 지표인 낮은 비연료소비율(SFC)과 높은 전력 생산 능력을 확보하는 일도 앞으로 완성될 무인편대기(CCA)용 엔진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1만 6000lb급 첨단 엔진을 향한 긴 여정
따라서 앞으로의 과제는 분명합니다.
KTF5500의 시험평가를 빠르게 진행하는 동시에, 수출 경쟁력을 극대화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HAF4500 같은 차세대 소형 무인기용 엔진 개발도 함께 추진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더 나아가 KTF5500 개발 과정에서 쌓인 노하우를 민간 항공우주 산업계로 전수해, 연구소 중심이던 개발 체계를 기업 주도로 전환하는 정책적 진화도 필요한 시점이죠.

이런 선순환 구조가 자리 잡아야만 2040년을 목표로 하는 1만 6000파운드급 첨단 엔진 개발 사업도 탄력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KTF5500 1호기의 조립 완료는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대한민국이 항공 강국의 진짜 문턱을 넘어서기 위한 긴 여정의 첫 걸음을 이제 막 뗀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