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분 짜리 애니메이션인데 벌써 26만명이 극장에서 본 이 영화
(Feel터뷰!) 영화 '룩백'의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을 만나다
영화 <룩백>은 그림에 대한 열정 하나로 이어진 두 소녀의 아름다운 우정을 그린 성장 애니메이션이다. 누계 발행 부수 2,700만 부를 돌파한 글로벌 히트작 [체인소 맨]의 작가이자 일본의 차세대 천재 만화가로 떠오른 후지모토 타츠키의 단편 만화 [룩백]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다.
이 작품으로 데뷔한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은 <바람이 분다>,<더 퍼스트 슬램덩크>,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원화, 작화를 맡았으며 <룩백>으로 TV 시리즈가 아닌 영화로 감독 이름을 알린 차세대 애니메이터다.
11일 내한한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과 메가박스 성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차분한 말투로 만화가의 열정, 영화에 관한 이야기, 일본 애니메이션의 강점 등을 들려주었다. 다음은 그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한국에서 <룩백>의 인기가 크다. 일본 성적도 좋았는데 인기를 실감하나.
“기쁘다. 대체로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에서 하루 종일 애니메이션만 만들기 바쁘다. 해외여행도 종종 하지만 외국에 갈 일이 없었는데 해외 호평이 얼떨떨하기만 하고 상황 파악도 잘 안된다. 인간인 이상 감정의 움직임에는 국경이 존재하지 않음을 실감했다”
-창작자로서 만화에 관한 남다른 열정으로 작업했을 텐데, 작품을 만들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나.
“애니메이션은 원화와 동화로 나뉘는데 일본 애니메이션에서는 원화의 선을 동화로 옮길 때 지우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룩백> 안에서는 원화의 선(밑그림)을 그대로 남겨 표현하기로 했다. <룩백>은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작품이기 때문에 기술이 사람의 손을 대체한다는 소식을 듣고 적극적으로 남겨 두어야겠다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인간이 그린 밑그림을 남기는 건 AI 기술로도 얼마든지 재현 가능하지만 어디까지나 저의 열정이고 본질적인 부분은 흉내 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일본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누린 원작 후지모토 타츠키의 단편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게 된 계기와 개봉 후 일본 사회적인 분위기나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나.
“현대 사회는 창작 분야 종사자가 가장 많은 시대이다. 창작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부분이 많은 공감을 얻었던 것 같다. 또한 시대적으로는 코로나는 겪으면서 집 안에서만 있으면서 만화나 영상 등 신작을 찾아 헤매던 때였기 때문일 것 같다. 특히 이해 불가능한 사건, 사고, 재해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과정에서 좌절감이 많이 쌓여 있었던 사람들이 원작의 구원 서사에 매료된 건 아니었을지 싶다”
-만화를 애니메이션화하면서 중점 둔 부분은 무엇인가.
“원작이 좌절한 자신을 구제하려는 원동력의 작품인데 큰 틀이나 줄거리를 바꾸지 않았다”
-대체 역사물을 넣어 삶이 단절되지 않고 계속 이어지는 과정이 영화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후지노가 ‘내가 하지 않았다면’이라며 후회하는 장면이 인상적인데 원작과 차이를 둔 이유가 궁금하다.
“후지노의 심리에 중점 두었다. 창작이 세상과 연결되는 부분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쿄모토는 살해당하지만 후지노는 계속 작품 활동을 해나간다. 후지노의 갈등이 원작에도 어느 정도 표현되어 있는데 애니메이션화하면서 좀 더 심도 있게 그려나가고 싶었다. 후지노의 창작을 위한 노력을 원작 이상으로 포커스를 두고 작업했다”
-전문 성우가 아닌 목소리 연기에 처음인 배우로 두 주인공을 캐스팅한 이유가 궁금하다.
“테이프 오디션으로 프로 성우, 배우 폭넓게 들었는데 단순하게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연기가 가능한 분을 캐스팅했다. 원작의 그림체 자체가 리얼한 묘사에 중점 두고 있기도 했고, 저의 취향도 리얼리티가 중요하기 때문에 결정한 상황이었다.
카와이 유미(후지노) 씨는 ‘코모토가 학교 쉬는 동안 연습을 많이 했네’라는 대사를 듣는 순간 한방에 결정하게 되었다. 까칠하긴 해도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동시에 추구해야 했기 때문이다.
요시다 미즈키(쿄모토)는 캐스팅에 난항을 겪었다. 존재감을 나타내는 목소리가 없었고 스태프의 의견도 달랐기 때문이다. 일단 쿄모토는 히키코모리 성향이고 사교성도 없다. 전사를 담을 여유가 없어 고민 중이었는데 갑자기 방에서 뛰어나오는 상황의 목소리 뉘앙스만으로 그 모든 것을 담아야만 했다. 요시다 미즈키 씨가 자신 없고 소박하지만 나만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 상호 교류나 대화가 없는 사람을 잘 연기해 주었다.
-코모토(요시다 미즈키)의 사투리 연기 방향은 원작에는 없는 설정이다.
제 고향이 후쿠시마다. 작품 속에서도 아키타현과 같은 동북지방이다. 이 고장은 사투리 억양이 세고 표준어와도 말이 다르다. 특히 시골의 이미지도 커서 꼭 담고 싶었다. 동북지방은 도쿄 입장에서는 엄청난 시골이다. 이 지방 사람들은 사투리를 숨기려고 노력하지만 개인적으로 그쪽 사투리가 훌륭하다고 생각해서 적극적으로 넣었다. 히키코모리라면 부모님과 계속 생활하며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을 테고, 본인이 사투리를 쓰는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썼을 거다. 학교에 가지 않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 학교에서도 협동이 부족했을 거다. 주변에서 다 사투리를 써도 노력하지도 않았을 거다. 둘만의 대비를 강조하기 위해 사투리는 필요했었다”
-후지노가 쿄모토 집에 찾아와 졸업장을 전해주고 돌아가는 길에 빗속을 뛰어가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라이벌로 생각한 쿄모토에게 존경한다는 팬의 고백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이라이트 장면이 아닐 수 없는데, 표현에 중점 둔 부분이 있을까.
“방에서만 있는 장면이 많아서 후지노의 생동적인 감정을 폭발시키는 장면을 넣으려고 했다. 빗속 장면은 힘과 노력을 온전히 들여서 어려운 기법으로 차별화를 두었다. 그 장면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입장에서 에너지와 힘을 표현하는 즉, 애니메이터를 대변하는 것이다.
빗속에서 후지노가 걷는 장면이 대략 18초인데 물웅덩이도 차고 뛰기도 하는 등 여러 동작을 18초 동안에 보여주기 어렵다. 18초 동안 움직이려면 대량의 원화 작업이 필요하고, 한 장씩 수정하기도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즉 단, 한 번의 승부로 그려야 한다. 그래서 이 장면만은 맡기지 않고 제가 도맡아서 작업했다”
-그 장면에서 후지노의 마음은 어땠을지. 리얼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참고한 게 있나.
“학교에서 만화의 일인자라고 자만하던 아이가 갑자기 라이벌이 등장해 자신감을 잃고 좌절한다. 1년 정도 만화 그리기를 중단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는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마음, 인정받고 싶은 감정이 남아 있었다. 쿄모토가 등장하면서 인정받아 기쁘면서도 좌절감에서 해방되는 환희였을 거다. 후지노는 1년 동안 신작에 관한 생각을 했을 것 같은데 그림을 그리려는 계기나 확신이 없었지만 쿄모토를 만나 다음 이야기가 구상되지 않았을까 싶다”
-생동감 있는 표정과 몸짓이 인상적이었는데 스스로 거울을 보면서 연구해서 얻은 건가.
“스튜디오에서 스스로 달려 보기도 했다. 애니메이션 중 손발이 같은 방향으로 가는 장면을 그릴 때도 어느 타이밍인지 직접 해보면서 확인했다. 빗속 물방울이 튀는 장면은 욕실에 물을 채워두고 움직임, 방향을 연구했다.
세밀한 표정은 제 책상에 거울이 있어 확인해 가면서 그렸다. 후지노 책상에도 거울이 있고 모든 작가의 책상에는 거울이 있을 거다. 캐릭터의 표정도 중요하지만 작가도 사람이기 때문에 감정이입도 중요하다. 실제 음악과 영화를 틀어 놓으면서 작업하는데 소리만 들었어도 감정이 고조되는 것을 느꼈다. 컷 안에 많은 그림을 그려야 해서 훨씬 더 많은 양의 그림을 촉박한 시간에 그래야 했다.”
-영화가 끝나도 자리에 앉아 있게 하는 엔딩 크레딧이 인상적이다.
“철저히 설계되고 의도한 엔딩이다. 음악과 함께 후지노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연출과 주변 배경과 시간이 경과되는 흐름을 관객의 감정을 고조시켜 여운을 담으려고 했다. 영화 속에는 아름다운 배경이 많지만 후지노의 일상이 담겨 있는 거다. 특히 가장 아름다운 배경이라 배경 팀에 지시할 정도로 신경 썼다.
쿄모토를 잃은 감정을 담고 싶었다. 만약이란 가정하에 쿄모토를 구하는 내용의 세계관도 그려 넣었지만. 후지노는 쿄모토를 완전히 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있었을 거다. 그래서 해피엔딩을 의도하지 않았다. 더 이상은 스포라 줄이겠다. (웃음) 관객분들이 내포하는 의미를 발견해 주었으면 좋겠다. 영화라는 예술의 매력을 믿고 싶다”
-한국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의 인기는 여전히 높다. 본인이 생각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강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일본 애니의 강정이라면 대량생산 주의라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물론 장단점은 있게 마련이다. 대중적인 작품부터 코어한 팬층을 위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거다. 일본 애니메이터는 장인 집단(창작집단)에 속한 프리랜서가 대부분이다. 스튜디오를 하나만 정하지 않고 여러 스튜디오를 다닌다. 그 과정에서 다른 애니메이터와 노하우를 공유하게 되는데 재능이 모여 훌륭한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음.. 단점이라기보다는 한국처럼 (애니메이션 포함) 영상 쪽에 국가 지원이 있는 게 부럽다. 일본도 하루빨리 한국을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메가박스 단독으로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룩백>은 절찬상영중이다.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은 10월 12-13일 양일간 한국 관객을 직접 만난다.
글: 장혜령
사진: 메가박스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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