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속 대사 ‘이의 있소!’로 너무나 잘 알려진 캡콤의 인기 시리즈, ‘역전재판’의 최신 리메이크 합본작 ‘역전재판456 오도로키 셀렉션’(이하 ‘역전재판456’)의 국내 발매가 성사됐습니다. 바로 지난 1월 25일이었죠. 정말 너무나 오래 기다렸습니다.
아주 오래 전, 닌텐도의 휴대용 게임기인 게임보이 어드밴스(GBA)로 시리즈 첫 스타트를 끊었던 ‘역전재판’ 1편(일본 내 발매 2010년 1월) 때부터 잘 되지도 않는 일본어로 낑낑대며 즐겼던 시리즈의 오랜 팬 입장에서, 그야말로 ‘감개무량’의 정식 발매인데요.

(대부분 ‘베스트 프라이스’ 버전이라는 건 조금 아쉽지만… 모든 패키지 버전과 사운드트랙 CD, 각종 굿즈까지 소장하시는 ‘찐팬’은 못 될지라도 전체 시리즈는 정식 루트로 수 차례 엔딩을 보았을 정도의 애정은 가지고 있습니다)
삐쭉머리 변호사 나루호도 류이치와 파트너인 영매사 아야사토 마요이, 그리고 검사 미츠루기 레이지 3인이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역전재판’ 1편부터 3편까지는 넥슨 등에서 모바일 버전으로 정식 한국어화 발매를 하는 등 국내 게이머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바 있습니다.
반면 오도로키 호스케 변호사와 나루호의 딸(으응?) 미누키가 새롭게 주인공으로 등장해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4편, 닌텐도 3DS로 플랫폼을 갈아타며 3D 렌더링 채택 등 엔진이 일신되고 시리즈 전체 캐릭터들이 골고루 등장하는 5편, 6편의 경우는 정식으로 발매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번 한국어판 정식발매가 정말 팬들로서는 감격에 겨운 순간이 아닐 수 없을 겁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역전재판456’을 빠르게 경험해 보고 느낀 소감을 남겨볼까 합니다. 각 시리즈 별로 사건 에피소드와 스토리 분량이 상당하기도 하고, 스토리 공개 거의 대부분이 스포일러에 해당합니다. 또 이미 원작의 발매 시기가 상당히 오랜 시간 지났기도 했죠(‘역전재판 6’ 발매는 2016년). 그래서 올 클리어 리뷰보다는 시리즈의 새로운 주인공인 오도로키 호스케의 새로운 스토리, 전작 주인공들의 변화된 모습을 즐기면서 언어의 장벽이 없어진 시리즈의 온전한 매력에 빠져볼 준비가 된 게이머들에게 소개하는 형식을 취하는 게 적절할 것 같습니다.

시리즈 각각의 면면을 살펴보자!
역전재판 4 (최초 발매 2007년)

‘역전재판 3’로부터 약 7년이 흐른 시점. 오도로키 호스케 신참 변호사는 7년 전 모종의 사건으로 변호사 배지를 박탈당한 나루호도 대신 법정에 섭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루호도에게는 ‘미누키’라는 장성한(그래봤자 중학생) 딸이 있고 나루호도 법률사무소는 나루호도 ‘엔터테인먼트’가 되어 있었는데…
전체적인 시스템은 3편까지의 그것에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물론 새로운 작품이 나올 때마다 증인이나 범인의 거짓 등을 부수는 트릭은 새로운 것이 추가되죠. 2편과 3편의 ‘곡옥 시스템’과 ‘사이코록‘ 같이 말이지요. 이번에는 오도로키가 팔에 두르고 있는 팔찌, 그리고 극도로 민감한 매의 눈을 활용해 상대의 거짓말을 꿰뚫는(일본어로 ‘미누쿠’, 새 캐릭터인 나루호도 미누키의 이름도 여기서 따온 것입니다) 시스템이 추가되며 새로운 변화를 꾀했습니다. 인간이 거짓말할 때 긴장하거나 하는 등 몸의 변화에 따라 평소와는 다른 ‘버릇’이 나오며 오도로키는 이를 간파해 내는 특수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설정인 겁니다.
역전재판 5 (최초 발매 2013년)

오도로키와 미누키의 도움으로 다시금 법정으로 되돌아온 나루호도 류이치. 신입을 맞아 정말 오랜만에 활기차게 ‘나루호도 법률 사무소’를 재가동시킵니다. 하지만 새로운 사건을 변호하던 중 전대미문의 법정 폭파 사고가 벌어지면서 일본의 법률 시스템이 함께 붕괴될 위험에 처합니다. 지상 최강의 변호사 나루호도와 오도로키, 이 위기를 과연 어떻게 파헤쳐갈 지.
드디어 5편에 이르러 새로운 게임 하드웨어인 ‘닌텐도 3DS’로 출시되며 또 한번의 진화를 거듭합니다. 우선 3DS의 3D 기능을 제대로 활용, 등장 캐릭터와 배경은 모두 3D로 변경되고 카툰 렌더링 방식을 채택해 전작들과의 이질감을 최소화했습니다.
메인 주인공은 나루호도와 오도로키 더블 주인공 체제가 되었고 조력자 캐릭터로 ‘키즈키 코코네’가 등장합니다. 5편 만의 새로운 게임 시스템도 신 캐릭터 키즈키 코코네와 함께 보다 복잡하고 화려해졌는데, (일본판 이름으로는 ‘코코로 스코프’) 증인이나 범인이 증언할 때 느끼는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심리학 전공인 키즈키 코코네의 단짝 ‘모니타’(한국어 버전으로는 ‘동글이’) 장치를 이용, 증언과 감정 간의 괴리감을 골라내 거짓말을 파훼하는 식입니다.
여기에 추가로, ‘생각 루트’라는 시스템이 추가됐습니다. 주로 재판의 막바지에 증거나 증언의 모순을 깨뜨리는 것으로도 진실의 끝에 다다를 수 없게 될 때 쓰이는, 일종의 사건의 맥락을 로직으로 정리하는 방식입니다.
어엿한 중년(응? 30대인데?)의 검찰청장으로 등장하는 미츠루기 레이지와 새로운 검사 ‘유가미 진’, 정의의 형사 ‘반 고조’ 등 새로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매력도 철철 넘치죠.
역전재판 6 (최초 발매 2016년)

나루호도 법률 사무소 소장인 나루호도 류이치는 영매사로서의 수련에 더욱 집중하고 있던 마요이를 데려오기 위해 먼 아시아 끝에 있는 나라인 ‘쿠라인 왕국’으로 떠납니다. 하지만 역시 나루호도가 가는 곳에 사건도 따라다니죠. 이번엔 쿠라인 왕국의 관광을 돕기 위한 가이드 소년이 어이없는 누명을 쓰고 체포되고 맙니다. 그런데 이 왕국의 법정엔 변호사가 없다?! ‘포기의 법정’이라고 불리는 이곳에서의 재판은 죽은 자의 영매를 통해서 일방적으로 결정, 피의자의 호소와 변호사의 변호는 없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 난관을 나루호도는 어떻게 헤쳐나갈지? 또 마요이의 귀환은 과연 이루어질 것인지?
나루호도와 오도로키의 더블 주인공 체제는 계속해서 이어지며, 정말 오랫동안 게임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아야사토 마요이가 귀환한다는 소식에 많은 팬들이 기대했던 작품이고, 발매 후 게임은 호평을 받으며 많은 판매량을 기록, 초기 시리즈의 재미와 감동을 부활시켰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나루호도와 오도로키는 에피소드를 번갈아 가며 사건을 진행하고 그 덕분에 시리즈 전편들에서 등장했던 거의 모든 시스템 –사이코록, 생각 루트, 코코로스코프 등– 이 모두 나옵니다. 당연히 그것 뿐이 아니죠. 영매로 재판을 하는 나라라는 설정답게 피해자(주로 망자)가 죽기 직전 눈으로 본 장면과 당시의 감정, 청각/후각 등이 표시되며 나루호도는 이 중 맥락이 맞지 않거나 위화감을 느끼는 부분을 잡아내 증인이나 범인의 거짓말을 깨버립니다. 바로 ‘아니마 비전’(일본판은 ‘영매 비전’)입니다.
자, 이제 456 오도로키 셀렉션의 일신한 면모를 보자
완벽 멀티 플랫폼 지원으로 화끈하게 문호 개방, 일관된 톤 앤 매너
원작은 원래 닌텐도 전용 하드에서만 작동하는 게임들이었습니다. 이후 인기를 점차 끌어감에 따라 휴대폰 버전 포팅 등으로 조금씩 범위가 넓어져 갔지만 게임을 즐길 장치가 한정되어 있다는 건 역시 약점이었죠. 하지만 리마스터의 혜택을 잔뜩 입은 지금은, 전작 나루호도 셀렉션과 마찬가지로 현 세대의 최신 콘솔 게임기종을 포함한 거의 모든 게임 가능 플랫폼에서 플레이 가능해졌습니다. PC의 경우 스팀 플랫폼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PS5나 엑스박스, 스위치 독 모드 등 거치형에서 즐긴다면 대형 모니터나 TV에 띄워서 볼 수 있는 큰 장점이 생깁니다. 사실 게임 플레이 자체만 놓고 본다면 휴대용으로 즐기는 것이 딱 적당하지만 말이죠. 그러나 5편과 6편은 3D 그래픽을 가지고 있으므로 풀 3D 렌더링된 법정이나 나루호도 등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큰 화면에서 움직이는 걸 보는 맛이 쏠쏠합니다.


4편도 이러한 고해상도 하드웨어에서 위화감 없이 즐길 수 있도록 깨끗하게 그래픽이 업그레이드됐기 때문에 오히려 더 돋보이는 부분이 있죠. 그만큼 발매 시간차가 크기 때문에요. 이번 체험을 위해 가지고 있던 닌텐도 DSi로 예전 4편을 즐기다가 다시 이번 버전으로 돌아왔을 때 느낀 그 ‘역체감’은 상당했습니다(노안으로 인해 침침해진 시력은 덤…).


‘역전재판456’은 그 이전 발매되었던 ‘역전재판123 나루호도 셀렉션’과 같은 형식으로 발매된 리마스터 합본의 개념이어서 전체적인 게임의 ‘톤 앤 매너’가 통일된 인상을 주는 것도 게임을 하다 보면 어느새 눈치채게 되는 소소한 장점입니다.
시리즈가 거듭되면서 인터페이스 파트에 편의 기능 등이 계속 추가되었던 것을 집대성, 시리즈의 각 에피소드를 자유롭게 선택해서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나(예전에는 이전 에피소드를 클리어 해야 다음 에피소드가 열리는 방식) 심지어 한 에피소드의 전개도 자잘하게 쪼개, 언제든 진입할 수 있도록 해두었습니다.

특히, ‘역전재판123’과 비교해 ‘역전재판456’의 큰 장점이라 한다면 한국어, 일본어 등 다양한 언어 버전으로 바꿔서 즐길 수 있는 것에 더해 기존 언어 버전 세이브 파일이 다른 언어로 즐길 때 그대로 사용 가능하게 됐다는 점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학 공부를 위해서나, 원작의 뉘앙스를 변경 없이 즐기고 싶어서 일본어 버전으로 하고 싶어졌을 때 기존에 한국어 버전의 세이브 파일이 완벽하게 호환된다는 건 정말 너무나 편한 일일 겁니다(기존 ‘역전재판123’에서는 처음부터 다시 했어야 했죠).

합본만의 두둑한 선물 보따리가 가득!
흔히 ‘오마케’라고 불리는 다양한 게임 부가 요소들이 있죠. 이 시리즈는 역사도 오래됐고 특히 BGM도 호평을 받는 요소 중 하나라 그간 시리즈가 거듭되며 사운드트랙 CD가 발매되거나 오케스트라 연주회도 진행하는 등(물론 일본 현지 한정) 많은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캐릭터 일러스트도 정말 다양하게 변용되어 가며 등장했구요. 또 5편과 6편에서는 기간 한정 DLC로 다운로드받을 수 있던 추가 에피소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진정한 합본팩답게 ‘역전재판456’에는 이 오마케 요소들이 전부 담겨 있습니다. 왠만한 매니아가 아니고서는 소장하기 힘들었던 OST나 일러스트 설정집 등의 요소가 디지털화되어 포함되어 있으니 게임을 클리어하고 나서도 두고 두고 오랫동안 ‘역전재판’의 매력을 즐길 수 있게 됐습니다.


가장 중요한 ‘한국어화’, 그 평가는? ‘참 잘했어요!’
‘역전재판123’은 멀티 플랫폼 대상의 1~3편의 정식 한국어화 버전으로 출시 전부터 많은 게이머들이 기대했던 것과 동시에 ‘과연 정식 한국어화는 잘 되었을까?’라는 의구심을 품었었죠. 아쉽게도, 한국어화 부분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 정도, 아니 오히려 ‘평타 이하’라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할 정도로 ‘별로’였습니다.
제대로 띄어쓰기가 안 된 부분들, 같은 단어가 중복되어 여러 번 들어간 부분은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표준어라고 부르기 애매한 비문들도 난무하는 등 ‘과연 캡콤이라는 거대 게임기업에서 제공하는 로컬라이제이션이 이 정도 수준인가?’, ‘한국 유저들에게 역전재판 시리즈는 찬밥인가?’ 라는 비난을 받아도 할말 없는 수준이었다고 할까요.

특히 게임 자체가 액션이라는 게 전무할 정도로 차분한 플레이를 요구하며, 장르적 특징에 따라 사건 해결과 스토리 이해를 함께 해야 해 언어 부분에서 사용자가 최대한 읽고 이해하기 편하도록 배려되어야 하는 이 시리즈에서 이러한 자막 번역에서의 문제점은 크나큰 실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비교해, ‘역전재판456’의 한국어 로컬라이제이션 수준은 그야말로 ‘환골탈태’라고 할 정도로 많은 부분에서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할 만합니다. 게임 속 다양한 배경의 일본어도 전혀 위화감 없도록 꼼꼼하게 한글 번역과 그래픽 작업이 이루어졌고, 탐정 추리물에서의 다양한 특정 언어를 이용한 트릭들도 영리하게 한국어화 되었습니다.


특히 이 부분은 한국어화보다 훨씬 일찍 진행, 호평받았던 영어판에서 이미 캡콤이 실력발휘를 한 적이 있었는데, 한국어 버전에서도 훌륭하게 재창조됐습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4편 세 번째 에피소드의 중요 주인공의 이름까지 바뀌었죠(‘라미로아’에서 ‘아프로미아’로 수정됐습니다). 무엇보다 게임 내 사건 해결에 필수 불가결한 부분이어서 ‘원작훼손’ 측면으로 부정적으로 보기엔 애매한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오히려 ‘머리를 많이 썼구나…’ 라고 존중해주는 게 마땅할 것 같네요.


기본적인 띄어쓰기 오류는 거의 완벽하게 자취를 감추었고, 특히 전편에서 말 줄임표와 문장이 계속적으로 띄어쓰기가 안 되어 읽기에 화가 날 정도로 짜증났던 부분도 사라졌죠. 일본어 특유의 표현 같은 것도 번역을 담당하는 분들이 일본 및 이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았으리라 예상할 수 있을 만큼 자연스럽게 되었습니다.
가장 손에 닿기 쉬운 플랫폼으로 골라 마음껏 삿대질 하자! ‘이의 있소!’
사실 ‘역전재판’ 합본 시리즈의 한국어화 발매는 이미 수년 전 캡콤에 있었던 정보 유출 사건으로 알려진 지 꽤 된 것입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끝에 발매된 게임의 뚜껑을 열어보니 전편에서 실망을 주었던 많은 부분들이 거의 다 수정되고 조금 더 진화된 게임으로 나온 것이 시리즈의 오랜 팬들에게 기쁨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비록 전작 3개가 있지만 이번 ‘역전재판456’으로 시리즈에 입문해도 크게 문제될 부분이 없을 정도로 신규 게이머들의 진입 장벽도 아주 낮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번 설 연휴를 맞아 최신 그래픽의 액션이나 RPG 등으로 피곤해진 두뇌와 손을 잠시 쉬고, 정의감 넘치면서도 허당끼 충반한 좌충우돌 두 변호사, 오도로키 호스케와 나루호도 류이치와 함께 열심히 삿대질 해가며 ‘이의 있음!’를 외쳐보지 않으시겠습니까.

글/ 베이더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