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산다는 조국이 마음 쓰이제" "미워도 이재명이 안 낫겄어"...흔들리는 호남 표심[르포]
무소속 후보 3번 당선됐던 영광서 접전
'지민비조' 옛말... 인물 경쟁력이 변수
"역시 우리 자식" "자식은 둘 있는 게 낫다"
"키도 훤칠하고 잘생긴 사람이 이런 촌구석에 와서 사우나도 다니고 고생하잖여. 이번에는 조국이 한번 찍어줄랑께."
25일 오후 전남 곡성의 5일장에서 만난 주민 정모(63)씨는 군수 선거 얘기를 꺼내자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편을 들었다. 그러자 옆에서 팔다 남은 채소를 정리하던 상인 차모(65)씨가 "그건 아니제"라며 끼어들었다. 차씨는 "조국이나 민주당이나 어차피 갵은 형제 아니여. 미우나 고우나 큰형을 밀어줘야 된당께"라고 더불어민주당에 힘을 실어줬다.
조국이 '메기' 역할...이재명도 선거전에 속도
호남은 민주당 텃밭이다. 전국 단위 선거든, 재보궐 선거든, 역대로 민주당이 "작대기에 옷만 입혀 놔도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결과는 일방적이었다. 하지만 다음 달 16일 예정된 전남 곡성·영광 군수 선거 분위기는 지금까지와 좀 다르다. 지난 4월 총선에서 호남에서 재미를 톡톡히 본 조국 대표가 일찌감치 곡성과 영광 주민 표심 잡기에 돌입하면서다. 판세가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보고가 올라가자 이재명 대표도 선거전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요동치는 두 지역 분위기는 현장에서 고스란히 전해졌다. 영광터미널시장의 한 상인은 "TV에서만 보던 사람들이 계속 동네를 왔다 갔다 하니께 둘만 모여도 이재명이 쪽을 뽑아야 하느니, 조국을 밀어줘야 한다느니 옥신각신하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고 말했다. 이 대표와 조 대표가 번갈아 얼굴을 비치면서 '명국대전'이라는 얘기까지 주민들 사이에서는 회자되고 있다.
영광 "공천 잘못했다" vs "철새로 찍히면 안 돼"
특히 접전이 펼쳐지는 곳은 영광이다. 지난 4월 총선 때는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 분위기 속에 민주당의 비례 위성정당이었던 더불어민주연합(40.14%)과 조국혁신당(39.46%)이 엇비슷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하지만 8번의 역대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아닌 무소속 후보가 3번이나 당선된 전례가 있는 만큼, 조국혁신당은 승리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실제 조국혁신당은 지난 8월 영광에서 의원 워크숍을 진행하는 등 일찌감치 세몰이에 나섰다. 영광터미널시장에서 만난 60대 김모씨는 "조국이 월세 산다는 기사 나올 때부터 고생한다, 안쓰럽다 싶었는데 어제 요 앞에 와서 인사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더 쓰이제"라고 했다.
'곡성살이'에 나선 조국 대표에 맞선 민주당도 호남 출신 한준호 최고위원을 영광에 상주시키는 등 선거에 당력을 쏟아붓고 있다. 이날 영광 KT&G 사거리에서 만난 이모(47)씨는 "총선 이후에도 조국혁신당이 민주당과 같이 갈 거라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이후에 사사건건 부딪히는 모습을 보면 실망감이 커져 민주당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다"고 말했다.
'명국대전'이란 얘기까지 회자되지만, 주민들의 속내를 들어보면 후보 경쟁력에서 승부가 갈릴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실제 조 대표는 지난 21일 장현 조국혁신당 후보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그 후보의 전과가 있는지 없는지, 그 후보의 도덕성은 어떤지 살펴보겠다"면서 장세일 민주당 후보의 전과를 겨냥했다. 그러자 이 대표도 2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안타깝게 일부 후보는 '경쟁 자체가 싫다. 내가 후보가 될 가능성이 적다' 이렇게 생각해서일지 몰라도 경쟁 체제를 벗어났다"며 민주당을 탈당해 조국혁신당으로 향한 장 후보를 저격했다.
군수선거라는 특징상 중앙당 차원의 바람몰이보다 후보 경쟁력에 주민들의 시선이 더 쏠리는 눈치다. 영광읍의 한 옷가게 앞에서 만난 신모(79)씨는 "민주당이 공천을 잘못했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며 "동네가 좁아서 장세일이가 무슨 일을 하고 다녔는지 뻔히 안다"고 말했다. 반면 한모(79)씨는 "장현이는 민주당 후보로 출마선언까지 해놓고 그렇게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느냐"며 "'철새'로 찍혔는데 누가 찍으려고 하겠느냐"고 했다.
진보당 후보도 당락을 가를 변수로 꼽힌다. 두 명의 영광 도의원 중 한 명이 진보당 출신이라, 지역 조직이 가동되고 있다. 최근에는 농사일까지 직접 거들며 선거전에 당력을 집중하면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후보의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
곡성서 벌어진 '자식' 논쟁… "그래도 바꾸긴 힘들제"
조상래 민주당 후보와 박웅두 조국혁신당 후보가 맞붙은 곡성은 '그래도 민주당 아니냐'는 기류가 감지됐다. 석곡 5일장에서 만난 차모(65)씨는 "젊은 사람은 조국혁신당 찍어도 나이 든 사람은 '그래도 민주당이여' 한다"며 "노인네들이 많은 동네라 민주당이 유리하지 않겄느냐"고 예상했다. 곡성터미널 앞에서 만난 50대 이모씨는 "이재명이가 호남에 애정이 있는가라는 말이 나오기는 한다"면서도 "그래도 우리는 민주당 골수분자잖어. 조국이로 바꾸기 힘든 나 같은 사람 많을 것이랑께"라고 했다. 하지만 영광에서 세몰이에 탄력이 붙은 조국혁신당 역시 곡성에서 뒤집기가 가능할 것이란 기대감을 품고 있다. 24일 곡성을 방문한 이 대표가 "'역시 우리 자식이여' 하며 흔쾌히 지지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하자, 이튿날 조 대표가 "자식은 둘 있는 게 낫다"고 응수하면서 맞불을 놓은 것도 이런 맥락이다. 조국혁신당 관계자는 "선거 초반에 비해 지지세가 올라가고 있어, 충분히 붙어볼 만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영광·곡성 =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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