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단주가 모시려 합니다”…이승엽 감독 ‘운명의 회전목마’

[베팬알백] ㊿‘국민타자’ 이승엽, 제11대 베어스 감독 시대 개막

두산 제11대 사령탑 이승엽 감독이 2023년 시즌 개막전에서 선수들에게 축하를 받으며 기뻐하고 있다. 감독 데뷔전에서 연장 11회말 호세 로하스의 극적인 끝내기 홈런으로 승리를 거뒀다. ⓒ두산베어스

2022년 10월 12일 토요일 저녁. 페넌트레이스가 끝난 지 4일 뒤였다. 두산 베어스 전풍 사장과 김태룡 단장, 김승호 운영팀장은 잠실야구장 인근 서울 테헤란로에 있는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호텔로 향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기회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전풍 사장이 인사를 건네자 이승엽 KBO 총재특보(SBS 해설위원)는 고개를 숙여 답례했다.

4명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저녁 식사를 마쳤다.

이어 호텔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 한 야구팬이 이승엽과 김태룡 단장을 알아봤다. 그날 밤 곧바로 야구 커뮤니티 사이트에 목격설이 올라왔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하루 전인 10월 11일 두산 구단이 “김태형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한 터여서 야구팬들은 두산이 이승엽을 새 감독으로 선임하기 위해 접촉했다고 추측하기 시작했다. 야구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뜨거운 논쟁이 펼쳐졌다.

이튿날 구단 관계자들에게 기자들의 확인 전화가 폭주했다. 결국 두산 구단은 월요일에 공식 보도자료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두산은 14일 “제11대 감독으로 이승엽 KBO 총재특보를 선임했다. 계약기간은 3년, 총액은 18억 원(계약금 3억 원+연봉 5억 원)”이라고 발표했다. 이승엽 감독은 현역 시절 '국민타자'로 불린, 한국 야구가 낳은 최고 스타다.』 <연합뉴스 2022년 10월 14일자>

[베팬알백_베어스 팬이라면 죽기 전에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시즌2-두산 베어스 시대’ 50번째 주제는 제11대 이승엽 감독 시대 개막과 두산 베어스의 새로운 도전 이야기다.

두산그룹 박정원 회장이 2022년 11월 이승엽 신임 감독과 FA 포수 양의지를 불러 일식집에서 식사를 했다. 박정원 회장이 이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양의지의 두산 복귀 가능성이 점쳐졌다. ⓒ두산베어스

◆ ‘국민타자’ 이승엽이 두산 감독이 된 시작점

두산은 2022년 9월 3일 9위로 내려앉은 뒤 10월 8일 시즌 종료 때까지 한 번도 순위 변동 없이 그 자리를 지켰다. 10개 구단 중 9위. 꼴찌는 면했지만 김태형 감독이 2015년 두산 사령탑에 오른 뒤 받아 든 최악의 성적표였다.

성적이 추락하면서 팀 분위기가 흐트러졌고, 김태형 감독의 리더십도 흔들렸다. 긴 연승이 끊길 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피로감처럼,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전무후무한 위업을 달성한 이후 찾아온 피로감이 선수단을 휘감았다. 김인식 감독, 김경문 감독 시대에도 경험했지만 감독의 장기집권에 따른 부작용도 감지됐다.

구단은 진지하게 리더십 교체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나아가 재창단 수준의 팀 재건이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현역 시절 두산 포수 김태형과 삼성 주자 이승엽이 홈에서 교차하는 장면. 베어스 제10대 김태형 감독의 뒤를 이어 제11대 이승엽 감독이 부임했다. ⓒ두산베어스

그러던 찰나, 두산 베어스 구단주인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이 직접 새 감독으로 이승엽을 점찍게 된다.

2022시즌이 파장 분위기에 접어든 막바지, 우연히 이뤄진 식사 자리였다.

이승엽과 유희관은 당시 야구 예능 프로그램인 ‘최강야구’에 함께 출연하고 있었는데, 이들과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을 잘 아는 지인이 중간다리를 놓아 자리를 마련했다. 피자와 파스타를 잘하는 서울 역삼동의 한 레스토랑이었다.

“그날 회장님께서 야구에 대해 엄청 많이 물어보셨어요. 야구에 대해 워낙 관심도 많고 해박하시니까 한국야구는 물론이고 일본야구도 물어보시더라고요. 전반적으로 정말 많은 야구 이야기를 나눴어요.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야구 얘기만 하다 2~3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현재 두산 사령탑이 된 이승엽 감독의 회상이다.

감독 인터뷰 자리였을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셈이지만, 이승엽 감독은 손사래를 쳤다.

“그날 처음 회장님을 뵀는데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 했던 것 같아요. 제가 혹시 다른 생각(두산 감독이 되고자 하는 생각)을 했다면 더 조심스럽게 말했을 겁니다. 그게 아니니까 그때는 정말 편하게, 솔직하게 말씀을 많이 드렸어요.”
이승엽은 삼성 라이온즈 상징과도 같은 인물. 두산 유니폼을 입은 이승엽 감독 뒤로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 외야 관중석 벽면에 이승엽 벽화가 그려져 있다. ⓒ두산베어스

◆ 박정원 회장이 직접 새 사령탑으로 점찍다

오히려 진솔한 이야기가 박정원 회장의 마음을 더 움직였는지 모른다. 식사 자리가 끝날 즈음 박정원 회장이 이승엽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언젠가 우리 팀에 감독으로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승엽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는 선수 생활의 시작과 끝을 삼성 라이온즈에서 했다. ‘국민타자’ 이전에 ‘라이언킹’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삼성 라이온즈 원클럽맨’ 색채가 강했다. 누구라도 이승엽이 지도자가 된다면 삼성에서 시작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두산 김태룡 단장도 마찬가지였다. 이승엽이 해설위원 시절 야구장에서 만나 진로를 고민하면 야구인 선배로서 “대구(라이온즈파크)에 벽화도 있는데 삼성 가야지”라고 대답하곤 했다. 이승엽 스스로도 다른 구단에서 지도자 제의가 들어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승엽도 처음엔 박정원 회장이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인사차 건네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그렇게 그날 식사를 마치고 헤어졌다. 그런데 다음날 휴대폰 문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구단주가 직접 모시려 합니다.”

발신인은 박정원 회장이었다.

두산 전풍 사장이 2022년 10월 18일 잠실야구장에서 두산 베어스 제11대 사령탑으로 취임한 이승엽 감독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두산베어스
“회장님께서 직접 보내신 문자인데 마치 다른 분이 대신 전하는 것처럼 보내시더라고요. 솔직히 감동을 받았습니다. '내가 갈 곳은 이곳(두산)이구나' 생각했어요. 다음날인가? 단장님한테 연락을 드렸죠. '두산에 가겠다'고. 회장님의 문자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식사하던 그날 그냥 인사치레로 말씀하신 게 아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룹 오너께서 직접 제의를 해주셨는데 제가 ‘기다려달라’고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았어요.”

이 스토리는 필자가 스포티비뉴스 전문위원으로 활동할 당시 이승엽 감독 부임 직후 인터뷰를 통해 밝힌 내용이다.

그러니까 10월 12일 토요일 저녁에 전풍 사장과 김태룡 단장, 김승호 운영팀장이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호텔에서 이승엽을 만난 것은 감독 협상을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이미 구단주가 새 감독을 낙점한 상황. 최고 대우는 당연했다. 상견례를 겸해 세부적인 계약 조건과 코칭스태프 조각에 대한 조율을 위한 자리였던 셈이다.

이승엽은 두산 구단에서 제시한 연봉 조건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다 받아들였다. 초보 감독 역사상 최고 대우이니 다른 말을 꺼낼 필요도 없었다.

다만 김한수 전 삼성 감독을 수석코치로 기용하는 등 코칭스태프 조각에 대해서만 자신의 뜻을 전해 두산 구단과 조율을 했다.

이승엽은 대구 출신이지만 1982년 KBO 출범 원년에 OB 베어스 어린이 회원에 가입했던 추억이 있다. 대구 연고팀인 삼성 라이온즈 어린이 회원 모집이 매진되면서 OB 베어스 어린이 회원에 가입했던 것. 그것이 인연이라면 인연의 시작이었다. 박철순은 어릴 때 그의 우상이었다. 동네야구를 할 때도 박철순을 흉내내면서 투수를 했고, 이만수를 흉내내면서 타자를 했다.

돌고 돌아 처음 출발했던 장소에 도착하는 회전목마처럼 이승엽은 어린이 회원이었던 팀에 41년 만에 운명처럼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지도자로 첫 걸음을 내딛게 됐다.

두산 베어스 제11대 사령탑이 된 이승엽 감독(왼쪽)이 전풍 사장(오른쪽), 김태룡 단장과 '화수분 야구'의 요람인 경기도 이천의 베어스파크를 거닐고 있다. ⓒ두산베어스

◆ 양의지와 알칸타라 돌아오고, 박세혁은 나가고

새 감독이 선임될 때면 각 구단에서는 프리에이전트(FA) 시장에서 큰 전력을 사서 ‘취임 선물’을 하곤 한다.

두산은 박정원 구단주가 이승엽 감독을 직접 선임한 만큼 FA 시장에서도 통 크게 지갑을 열었다. 4년 전 NC 다이노스에 빼앗겼던 KBO 최고 포수 양의지를 영입하게 됐다.

2022년 11월 22일 두산은 FA 포수 양의지와 최대 6년(4+2년) 총액 152억 원에 계약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총액 기준으로 김광현이 미국 메이저리그 생활을 접고 돌아오면서 SSG 랜더스와 맺은 4년 151억 원(비FA)을 넘어선 '최고액 계약'이었다(이후 2024시즌을 앞두고 메이저리그에서 한화로 복귀한 류현진이 최대 8년 총액 170억 원으로 양의지를 넘어섰다).

사실 이에 앞서 박정원 회장은 하루 전인 11월 21일 이승엽 신임 감독, 양의지와 일식집에서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러면서 ‘웰컴백! 양사장’이라는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양의지의 계약이 성사됐음을 암시했다.

두산 베어스로 복귀한 양의지가 2023년 개막전에서 시구자로 나선 레전드 사령탑 김인식 전 감독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2023시즌을 앞두고 전력 변화가 일어났다.

양의지가 NC로 떠난 뒤 주전 포수로 발돋움했던 내부 FA 박세혁이 NC로 이적했다. FA 보상 선수로 두산은 내야수 박준영을, NC는 투수 전창민을 지명해 주고받았다.

외국인 선수 3명도 모두 교체했다. 2020년 20승을 올린 뒤 일본프로야구(한신)에 진출한 라울 알칸타라를 데려왔고, 우완 딜런 파일을 새롭게 영입했다. 외국인 타자는 호세 로하스와 계약했다.

하지만 호주 스프링캠프 막판 딜런 파일이 훈련 도중 타구에 머리를 맞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동료들과 함께 귀국하지 못하는 불운이 발생했다.

이승엽 감독이 2023년 개막전에서 연장 11회에 호세 로하스의 극적인 끝내기 홈런으로 승리한 뒤 밝은 표정으로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 ‘미러클 DNA’로 출발한 이승엽 시대

4월 1일 잠실구장. 롯데와 치른 시즌 개막전에서 난타전 끝에 거짓말 같은 역전 드라마를 만들었다. 1회말 3점을 선취했지만 믿었던 알칸타라가 4이닝 4실점으로 조기 강판하면서 3-8로 역전을 당할 때만 해도 패전이 눈앞에 다가오는 듯했다.

그러나 두산은 무서운 뒷심을 발휘하면서 추격전에 나섰고, 결국 9회까지 9-9로 승부를 가리지 못하면서 연장전에 접어들었다.

연장 11회초 1점을 내줘 9-10으로 뒤진 상황. 그런데 11회말 새 외국인 타자 로하스가 끝내기 역전 3점 홈런을 치면서 12-10으로 이겼다.

이승엽 감독은 사령탑 데뷔전을 기분 좋은 역전 드라마로 장식했다. ‘미러클’이라는 DNA와 ‘개막전의 강자’라는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받으며 두산 팬들에게 베어스의 일원이 됐음을 신고했다.

그러나 풍랑을 만나지 않고 순항할 수만은 없는 법. 시즌을 치르면서 거친 파도가 몰아쳤다. 부상자가 속출하면서 페넌트레이스를 버텨내는 게 숙제로 떠올랐다.

두통 후유증에서 벗어난 파일이 5월 4일 잠실 한화전에서 시즌 처음 등판했지만 4이닝 5실점으로 무너졌다. 11일 사직 롯데전에 다시 선발등판했지만 5이닝 4실점(3자책점)을 기록한 뒤 이번엔 팔꿈치 통증을 호소했다.

여기에 영건 선발투수 선두주자 곽빈은 허리 통증으로 5월에 전열에서 이탈한 뒤 공백이 길어졌다.

두산은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4월에 12승1무11패, 5월에 11승11패로 5할대 승률을 맞췄다. 하지만 6월에 결국 10승14패로 주춤했다. 위기감이 엄습했다.

6월 8일 KBO에 딜런 파일의 웨이버 공시를 요청했다. 그리고는 대체 외국인 투수 좌완 브랜든 와델을 영입했다.

두산 이승엽 감독은 2023년 KBO 역대 사령탑 데뷔 시즌 최다연승 신기록을 작성했다. 기념구에 문구가 새겨져 있다. ⓒ두산베어스

◆ 구단 역사상 최다 11연승 新…5위로 가을야구 진출

두산은 7월 1일 울산 롯데전 2-1 승리를 시작으로 25일 잠실 롯데전 8-5 승리까지 무려 11연승을 내달렸다. 11연승은 베어스 창단 이후 구단 역사상 최다 연승 신기록. 아울러 KBO 역대 한국인 감독 데뷔 시즌 최다 연승 신기록이기도 했다(외국인 감독을 포함하면 2008년 롯데 제리 로이스터 감독 11연승과 타이기록).

7월에만 11승5패 호성적을 올린 두산은 8월에 10승13패로 슬럼프에 빠지는 듯했다. 8월 17일 5연패를 기록할 때는 시즌 처음으로 순위가 7위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9월에 7연승을 포함해 10경기에서 9승1패를 기록하는 등 다시 상승세를 타면서 월간 성적(15승1무6패) 1위로 반등에 성공했다.

두산 강승호가 2023년 9월 15일 광주 KIA전에서 홈런-3루타-2루타-안타를 차례로 쳐내면서 KBO 최초 '리버스 사이클'을 달성한 뒤 방송 인터뷰를 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그 과정에서 진기록도 나왔다. 강승호가 9월 15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전에서 ‘리버스 사이클’을 달성한 것. 6번타자 1루수로 선발출장한 강승호는 이날 1회초 볼넷을 골라 나간 뒤 3회초 좌월 솔로홈런을 날렸다. 5회초 3루타, 7회초 2루타에 이어 9회초에는 KIA 마무리투수 정해영을 상대로 투수 강습 내야안타로 ‘히트 포 더 사이클(사이클링히트)’를 완성했다.

두산은 10월 12일 잠실 NC전부터 14일 잠실 LG전까지 3연승을 올리면서 3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잔여 3경기가 남은 시점. 그런데 중위권 대혼전 속에 두산은 이 3경기를 모두 놓치면서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15일 잠실 LG전을 2-5로 졌고, 16일과 17일 인천 SSG전에서 각각 2-3, 0-6로 패하고 말았다.

결국 이승엽호 첫해 74승2무68패(승률 0.521)로 페넌트레이스 5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3위로 올라갈 수 있었던 상황에서 5위로 미끄러졌기에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시즌 마무리였다.

두산 선수들이 2023년 10월 19일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앞두고 훈련을 시작하기 위해 그라운드로 나서고 있다. ⓒ두산베어스

◆ 단 1경기로 끝난 허무한 와일드카드 결정전

와일드카드 결정전은 정규시즌 4위 팀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제도다. 규정상 모든 경기는 4위 팀 홈구장에서 열리게 된다. 게다가 4위 팀은 1승의 어드밴티지를 안고 출발한다. 1승 또는 1무만 기록해도 준플레이오프에 오를 수 있다. 반면 5위 팀은 무조건 1차전 승리 후 2차전까지 이겨야 하는 불리한 처지다.

그래서일까, 2015년 처음 와일드카드 결정전 제도가 도입된 뒤 5위 팀이 2연승으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사례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두산으로선 역사와 통계만 놓고 보면 가능성 0%에 도전하는 셈이었다.

10월 19일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이 4위 NC 다이노스 홈구장인 창원NC파크에서 열리게 됐다. 하지만 그해 10월 22일부터 11월 2일까지 창원국제사격장에서 제15회 아시아선수권대회가 열리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창원 지역의 웬만한 숙소는 이미 예약이 불가능했던 것. 결국 두산은 버스로 1시간30분 거리의 대구에 숙소를 잡았다. 컨디션 관리에 불리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경기가 막상 시작되자 초반 분위기는 두산이 장악했다. 1회부터 3회까지 1점씩 뽑으면서 3-0으로 앞서나가면서 기선제압에 성공했다.

두산 이승엽 감독이 2023년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패한 뒤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 감독은 “한 경기만에 가을야구가 끝나 무척 아쉽다”면서 “내년에 더 높이 올라가겠다”고 다짐했다. ⓒ두산베어스

그러나 NC의 저력 또한 무서웠다. 3회까지 곽빈의 구위에 눌려 무득점에 그쳤지만 4회말 한꺼번에 5점을 쓸어 담으며 빅이닝을 만들었다.

두산으로선 4회말 2사 만루서 서호철에게 만루홈런을 허용한 것이 뼈아팠다. 단숨에 역전을 허용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만루홈런이 나온 것은 사상 처음. 이어 포수 유망주 김형준의 백투백 홈런이 터졌다. 곽빈은 3.2이닝 5실점으로 무너지면서 강판됐다.

두산 타자들이 다시 힘을 냈다. 5회초 2점을 뽑아내면서 5-5 동점을 만든 것. NC 선발투수 태너 털리는 4이닝 5실점을 기록하면서 물러났다. 결국 양 팀 선발투수가 예상보다 일찍 강판하면서 불펜 백병전이 펼쳐졌다.

NC가 5회말 1점, 7회말 2점을 추가하며 8-5로 앞서나가자 두산은 8회초 1점을 뽑아내면서 2점차로 따라붙었다.

하지만 두산은 8회말 김형준에게 3점 홈런을 맞는 등 6점을 내주면서 6-14로 크게 뒤지게 됐다.

마지막까지 안간힘을 쓰며 9회초 3점을 얻어냈지만 전세를 뒤집기엔 역부족. 결국 9-14로 패하고 말았다.

두산은 선발 곽빈에 이어 김명신, 이영하, 최승용, 김강률, 정철원, 홍건희, 이병헌까지 8명의 투수를 투입하고도 NC 타선을 막아내지 못했다.

2022년 9위로 주저앉은 뒤 2년 만에 다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성과를 올린 데 만족해야만 했다. 하지만 단 한 경기로 가을야구를 접었기에 미련과 허탈감이 밀려들 수밖에 없었다.

장원준이 2013년 10월 17일 인천랜더스필드에서 선수생활 마지막 투구를 하고 있다. 장원준은 이날 정확히 통산 2000이닝을 채운 뒤 공을 내려놨다. ⓒ두산베어스

◆ 2024년의 도전과 두산 베어스의 미래

두산은 2022시즌이 끝난 뒤 다시 팀 정비에 돌입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2015년 두산 유니폼을 입은 뒤 한국시리즈 2연패(2015~2016년 우승)를 이끈 좌완 장원준이 은퇴를 하게 된 것이었다.

장원준은 2004년부터 2023년까지 KBO 통산 2000이닝을 던져 132승119패, 1세이브, 14홀드, 평균자책점 4.28을 기록했다. 두산에서만 47승42패, 1세이브, 12홀드, 평균자책점 4.49의 성적을 올렸다. 두산 팬들이라면 장원준을 떠올릴 때 ‘판타스틱4’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우승을 이끈 시절의 추억을 잊을 수 없다.

두산은 내부 FA 대상자 2명 모두 잔류시키는 데 성공했다. 거포 내야수 양석환과 최대 6년(4+2년) 78억 원에 계약하고, 투수 홍건희와 2+2년 최대 24억5000만 원에 사인했다.

외국인 투수 2명(라울 알칸타라, 브랜든 와델)은 재계약했다. 타자 호세 로하스와 결별하고 2022시즌 스위치히터 헨리 라모스를 영입했다. 라모스는 2022년 kt 위즈에서 활약한 뒤 2023년 미국 신시내티 레즈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던 인물. 다시 KBO리그에 돌아오게 됐다.

두산은 시범경기에서 경쾌한 출발을 했다. 8승1무를 기록하면서 1위에 올라 2024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두산이 시범경기를 1위로 마친 것은 2014년(4승2패5무·승률 0.667) 이후 10년 만이자 구단 역사상 6번째(1984, 1990, 1994, 2000, 2014, 2024년)였다. 시범경기 무패는 1995년 롯데(5승 1무), 1999년 한화(5승)에 이어 KBO 역대 세 번째 기록이었다.

두산 베어스의 미래를 책임질 우완 에이스로 각광받고 있는 곽빈. ⓒ두산베어스

3월 23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2024시즌 개막전에서 두산은 9회말 NC 외국인타자 맷 데이비슨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았다. 시범경기는 무패였지만, 정규시즌은 패배부터 시작했다.

두산이 잠실이 아닌 다른 구장에서 개막전을 치른 것은 2016년(대구 삼성전) 이후 8년 만. 개막전에서 패한 것은 2000년(잠실 LG전 2-8) 이후 4년 만이었다.

두산은 곧바로 3연승에 성공하며 반등하는가 했으나 외국인 에이스 라울 알칸타라의 부상 이탈을 비롯해 다시 부상자가 속출하면서 시즌 초반 힘겨운 레이스를 펼쳤다. 5월 2일까지 16승19패로 승패 마진 –3을 기록하며 하위권으로 처졌다.

그러나 5월 3일 잠실 LG전 승리를 시작으로 14일 광주 KIA전까지 9연승 행진을 펼치며 반격의 시동을 걸었다.

무엇보다 젊은 선수들의 약진이 고무적인 부분이다. 미래의 에이스로 각광 받는 곽빈이 본 궤도에 오르면서 선발 마운드의 축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2023년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투수 최준호도 데뷔 첫 승을 올리는 등 선발 자원으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고교야구 최고 유망주 우완투수로 평가 받은 김택연이 즉시 전력감으로 가세하고, 2022년 1차지명 좌완 파이어볼러 이병헌도 팔꿈치 수술 후유증에서 벗어나 불펜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두산의 새로운 도전,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두산 베어스는 1982년 3월 28일 서울운동장 야구장(동대문야구장)에서 OB 베어스라는 이름으로 MBC 청룡과 구단 역사상 최초의 경기를 펼쳤다. 역사적인 첫 경기에서 박철순의 완투 속에 9-2로 승리하며 장엄한 첫발을 내디뎠다. KBO 최초 창단팀으로서 KBO 최초 한국시리즈 우승팀이라는 빛나는 역사를 썼다.

그로부터 43번째 시즌. 두산 베어스는 희로애락이 점철된 지난날의 역사를 뒤로 하고 새로운 미래를 위해 달려가고 있다. 세월은 흘러도 ‘뚝심’과 ‘허슬두’를 바탕으로 한 베어스 야구는 팬들의 가슴을 계속 뛰게 할 것이다.

2024년과 2023년 1라운드 지명을 받고 입단한 투수 김택연과 최준호. 이들은 두산 마운드의 세대 교체 주역으로 꼽히고 있다. ⓒ두산베어스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 OBS라디오 프로야구 해설위원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