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 들수록 삶은 더하는 것이 아니라 빼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60대에 접어들면서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무엇을 더 얻을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놓아줄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

1. 지나간 취미의 흔적들
김훈 작가는 말했다. "나는 이제 높은 산에 오르지 못한다. 등산 장비 중에서 쓸 만한 것들은 모두 젊은이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나머지는 버렸다. 책은 버리기 쉬운데, 헌 신발이나 낡은 등산화를 버리기는 슬프다. 뒤축이 닳고 찌그러진 신발은 내 몸뚱이를 싣고 이 세상의 거리를 쏘다닌, 나의 분신이며 동반자이다. 헌 신발은 연민할 수밖에 없는 표정을 지니고 있다. 헌 신발은 불쌍하다. 그래도 나는 내다 버렸다." 지나간 취미의 물건들을 붙잡고 있는 것은 이미 지나간 자신을 붙잡고 있는 것과 같다. 골프채를 휘두르던 열정,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세상을 담아내려 했던 의욕, 낚싯대를 드리우며 찾았던 고요함이 모두 소중했지만, 이제는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이런 물건들을 정리하는 것은 단순히 공간을 비우는 일이 아니라 현재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용기의 표현이다. 지저분한 것들을 남기지 말고 가자. 빌려온 것 있으면 다 갚고 가자. 남은 것 있으면 다 주고 가자.

2. "혹시나" 쓰려고 쌓아둔 물건
집 안 곳곳에는 언젠가 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보관해온 물건들이 넘쳐난다. 고장 난 전자제품, 맞지 않는 옷, 읽지 않는 책, 사용하지 않는 주방용품들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물건들은 실제로는 우리의 마음속 불안감의 투영이다. 무언가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미래에 대한 걱정이 물건을 붙잡게 만든다. 하지만 60년을 살아온 경험은 우리에게 알려준다. '언젠가'는 오지 않는다. '지금 쓰지 않으면 영원히 안 쓴다'가 정답이다.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많지 않으며, 필요할 때 구할 수 있다는 믿음이 삶을 더 가볍고 자유롭게 만든다. 물건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것은 삶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3. 자녀의 어릴 적 물건
부모는 자녀의 성장 과정에서 수많은 물건들을 간직해왔다. 첫 신발, 배냇저고리 등 다락방 한켠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성인이 된 자녀들에게 이런 물건들은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들은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고, 과거의 추억보다는 현재와 미래에 집중하고 있다. 그들의 추억은 그들의 몫이다. 부모의 공간은 이제 자신의 현재를 위한 곳이어야 한다. 자녀를 키우느라 미뤄두었던 부부만의 시간, 개인적인 관심사, 새로운 관계들을 위한 여유가 필요한 시기다. 과거에 매몰되어 현재를 놓치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깨닫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선택이다.

4. 이름 모를 서류와 영수증 더미
세월이 흐르면서 집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서류들이 쌓여간다. 이미 만료된 보증서, 의미를 잃은 계약서, 수년 전 영수증들이 서랍과 파일박스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런 서류들은 과거의 일들에 대한 강박적 기록 욕구의 결과물이다. 모든 것을 증명하고 보관해야 한다는 생각이 만들어낸 무의미한 흔적들이다. 60대가 되면 진짜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긴다. 법적으로 보관해야 할 최소한의 서류를 제외하고는 과감하게 정리할 때다. 서류 더미를 치우고 나면 머릿속도 함께 정리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복잡했던 생각들이 단순해지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이것이야말로 나이 들어가는 것의 특권이자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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