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산의 방산부문은 기업가치를 견인하는 알짜사업이다. 연간 매출 비중은 30%지만 영업이익의 70% 이상을 창출하며 앞으로 성장 모멘텀도 열려 있다. 풍산이 호황을 맞은 방산부문을 매각하려 했던 건 오너 3세가 미국 국적자라 한국의 방위사업체를 승계할 수 없기 때문으로 예상된다.
풍산그룹이 방산부문을 매각하면 오너 3세가 승계를 할 수 있으며 방산부문을 처분한 자금으로 신동부문을 강화하거나 신사업에 나설 수 있다. 이는 풍산이 공식적으로 밝힌 방산부문 매각 추진 사유인 '기업가치·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사업구조 개편'과도 부합한다.
방산 매각 시 승계 법적 리스크 해소
29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풍산그룹 오너 3세인 로이스 류 씨(한국명 류성곤)는 미국인이다. 류 씨는 콜번스쿨과 하버드-웨스트레이크 스쿨 등 미국 명문 사립학교를 다니며 청소년기를 보냈고 스탠퍼드와 스탠퍼드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경력도 미국에서 쌓았으며 밀뱅크와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기업에서 정규직으로 근무했다.
풍산이 방산부문 매각을 추진한 이유는 오너 3세가 미국인이라 한국의 방위사업체를 소유할 수 없기 때문으로 관측된다. 류 씨가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것은 21세 때로 병역 의무를 이행해야 할 시기와 맞물린 만큼 국적 회복이 어렵다. 국적법 제9조 제2항에 따르면 병역 기피 목적의 국적 상실자는 국적을 회복할 수 없다.
풍산 방산부문은 한국군이 사용하는 탄약을 사실상 독점 공급하는 핵심 방위사업체다. 외국인투자 촉진법과 방위사업법에 따르면 외국인이 한국의 방위사업체 주식을 취득해 지배력을 행사하려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임원으로 선임되려면 방위사업청장에게 신청해 승인을 받아야 한다.
방산부문 매각이 승계의 포석이 될 수 있다. 풍산이 방산부문을 떼어내면 소전 등 구리 제품을 생산하는 신동부문만 남게 된다. 풍산의 또 다른 축인 신동부문은 구리와 동합금을 가공해 소전과 배관, 전기차용 동합금, 반도체 리드프레임 등을 만드는 일반 제조업에 해당한다.
신동부문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할 경우 법적 리스크가 해소돼 오너 3세로의 승계가 가능해진다. 풍산이 방산부문을 매각하면 국가 안보라는 특수성과 연결고리가 끊어지고 일반 제조기업이 된다. 일반 제조업은 국가 안보와 관련된 특별한 제재를 받지 않아 외국인이 소유할 수 있다.
외국인이 한국 기업을 지배하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일반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은 자본 시장이 개방돼 외국인 투자와 기업 인수에 제약이 덜하다. 한국GM과 르노코리아는 각각 미국 제너럴모터스와 프랑스 르노그룹이 지배한다. 에쓰오일의 최대주주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기업인 아람코다. 배달의민족과 요기요 등 한국 플랫폼 서비스도 사실상 해외자본이 소유하고 있다.
지주사 막대한 현금 확보 기회
풍산은 방산부문을 매각할 때 인적분할을 선택할 것으로 보이며 이번 매각 추진 때도 인적분할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적분할은 회사를 나눌 때 기존 주주들이 보유한 지분율만큼 신설회사의 주식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풍산은 방산부문과 신동부문을 인적분할한 뒤 오너 3세가 승계할 수 없는 방산부문 지분은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매각해 막대한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 풍산그룹 오너일가는 지주사 풍산홀딩스를 통해 풍산을 지배하고 있다. 최근 인적분할을 통한 방산부문 매각 시도에서 풍산홀딩스가 보유한 풍산 지분 38%의 처분 가격은 약 1조5000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풍산그룹 오너일가에게 방산부문 매각은 오너 3세의 국적 리스크를 해소하고 합법적인 승계의 길을 여는 유일한 수단이다. 류 씨는 규제에서 벗어난 풍산홀딩스를 승계하고 방산부문을 처분한 현금으로 신동부문 확대나 신사업 투자에 나설 수 있다.
류 씨는 2022년 풍산의 미국 법인이자 북미 최대 규모의 구리 소재 제조 기업인 PMX의 Executive Vice President(부사장)을 맡기도 했다. 현재 미국의 '스타라 캐피탈(Stara Capital)'이라는 투자운용사에 참여하며 PMX 부사장에서 물러난 상태다.
류진 회장에게 두 자녀가 있지만 승계 재원 마련과 경영 능력 측면에서 승계 가능성이 높은 인물은 로이스 류 씨다. 류 씨는 법무박사(JD) 학위를 가진 고학력의 금융 전문가다. 골드만삭스 등에서 근무한 이력으로 투자운용사 창업에 도전하고 있으며 승계 재원 확보가 원활할 전망이다. 장녀 류성왜 씨는 경영 등 대외 행보가 남동생보다 적다.
나영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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