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산화수소 1등’ 한솔케미칼, 포스코·OCI와 경쟁 속 성장 이어갈까[소부장 슈퍼을]
우리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기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전방기업과 협력하며 성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다면 소부장도 슈퍼을로 군림하는 네덜란드 ASML과 같은 기업도 있습니다. 미래 ‘슈퍼을’을 노리는 우리 소부장 기업을 소개합니다.
고순도 과산화수소 앞세운 국내 대표 반도체 소재 기업
한솔케미칼은 국내 대표 반도체 소재 기업으로 꼽힌다. 주력 제품은 과산화수소다. 회사 전신인 한국퍼록사이드는 1980년 창립부터 국내 최초로 과산화수소를 생산하기 시작해 1989년에는 일본 미쓰비시가스화학과 합작투자로 삼영순화를 출범하며 본격적으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정에 쓰이는 초고순도 제품까지 영역을 확대했다. 1991년에는 역시 국내 최초로 초고순도 반정제 과산화수소 생산을 시작했다. 현재까지도 한솔케미칼이 1차 원료를 공급하면 삼영순화가 초고순도 과산화수소로 정제해 이를 다시 한솔케미칼에 납품하는 식으로 협력이 이뤄진다. 오랜 시간 반도체용 과산화수소 사업을 영위하며 현재 고품질 제품 시장에서는 1위 입지를 지키고 있다.
2009년에는 반도체 박막재료인 전구체(프리커서) 사업을 본격 추진해 2013년 사업화에 성공했다. 국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더해 대만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기업인 TSMC, 미국 메모리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등을 고객사로 확보했다. 미국 종합반도체기업인 인텔에도 전구체를 판매한다. 디스플레이 소재 영역에서는 2014년 세계 최초로 양자점(QD) 양산을 시작해 삼성전자에 독점 공급한다.
최근에는 차세대 신소재 사업 발굴이 한창이다. 2015년 음극바인더 상업화를 시작으로 이차전지용 소재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사업 부문은 정밀화학제품과 반도체, 디스플레이용 전자재료, 제지·환경 제품 등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주력인 과산화수소는 정밀화학제품에 포함된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용 초고순도 품목에 더해 섬유에 사용하는 차아황산소다 등 범용 제품도 생산한다.
정밀화학제품 올해 1분기 매출은 520억1200만원으로 비중은 36.2% 수준이다. 생산능력은 전주공장에서 7만6100톤, 울산공장이 7만8000톤으로 총 15만4100만톤 규모를 확보했다. 회사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고객사 증설에 발맞춰 안정적인 공급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생산능력 확대를 꾸준히 추진하고 있음. 올해에도 추가적인 과산화수소 생산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증설에 나설 전망이다.
전자재료부문은 반도체 공정에서 박막을 형성하는 데 사용하는 전구체와 디스플레이용 양자점이 대표 제품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이차전지 소재까지 사업영역을 넓히며 리튬이온전지용 소재인 음극바인더, 분리막바인더, 실리콘음극재 등도 생산한다.
전자재료부문의 올해 1분기 매출은 634억1200만원으로 회사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4.1%다. 전주공장을 중심으로 2020년 6100톤규모에서 이듬해 6200톤, 지난해에는 7500톤까지 점진적으로 생산능력을 높였다.
회사는 제지·환경 제품 사업에서는 제지산업에서 부재료로 쓰는 라텍스와 제지약품, 폐수처리에 투입하는 고분자응집제(PAM) 등을 만든다. 매출은 올해 1분기 202억8800만원이며 이는 전체 매출 약 14.1% 수준이다. 전주공장에서 지난해 기준 12만500톤 규모 생산능력을 갖췄다.
여기에 종속기업으로는 중국 시안에 과산화수소 생산 법인인 한솔 일렉트로닉을 비롯해 이차전지와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에 쓰이는 전자재료용 테이프 기업 테이팩스, 특수가스를 생산하는 솔머티리얼즈, 에이치에스머티리얼즈 등을 거느리고 있다. 최근에는 식품의약품 공정용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바이옥스를 추가로 인수했다. 관계사로는 과산화수소를 정제하는 삼영순화가 있다.
최대 주주는 조동혁 한솔케미칼 회장으로 지분 11.65%를 갖고 있다. 여기에 친인척과 회사 임원 등 특수관계인 11인 지분율까지 더하면 15.08%다. 조 회장은 미등기 임원으로, 사내이사로는 박원환 한솔케미칼 대표이사, 조 회장 장녀인 조연주 한솔케미칼 부회장, 한장안 한솔케미칼 경영지원본부장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독보적 반도체 소재 경쟁력에 이차전지까지 다각화 추진
실적 개선을 이끌어 온 품목은 반도체용 과산화수소와 양자점, 전구체 사업이다. 국내 반도체용 과산화수소는 한솔케미칼과 OCI 등 일부 업체가 과점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한솔케미칼은 경쟁사 대비 더 높은 시장지배력을 갖췄다고 평가받는다. 반도체용 과산화수소는 반도체원판(웨이퍼)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식각 공정에 주요 쓰이는데 순도가 높을수록 생산효율과 직결되기 때문에 수요가 높다. 호황과 불황이 주기에 따라 반복되는 메모리반도체 업황에도 과산화수소 사업이 일정 이상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지켜온 비결로 꼽힌다.
고객 기반도 견조하다. 세계 D램 시장에서 합산 점유율이 70%가 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력 고객사로, 전방 수요업체가 갖춘 경쟁력은 독보적이다. 오랜 기간 이들에게 독점적으로 과산화수소를 공급하며 밀접한 관계를 형성해 왔다. 반도체 공정 미세화에 따른 고순도 과산화수소 수요가 증가하는 추세다. 국내에서 삼성전자 D램과 낸드 과산화수소 공급망에서 한솔케미칼 점유율은 약 70% 수준으로 추정된다.
또 다른 반도체 소재인 전구체 사업도 고객사 수요에 발맞춰 첨단 제품을 개발하며 공급망 내 시장점유율을 높여왔다. 전구체는 반도체 박막 증착 공정에 투입하는 소재다. 웨이퍼 위에 박막을 형성해 전기적 특성을 갖게 하는 역할을 한다. 장비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기술적 한계를 재료 변화로 극복하는 최근 반도체 제조 추세에 따라 성능과 원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프리커서 역시 지속적인 성장이 예상된다.
전구체는 반도체 종류와 공정 특성에 따라 다양하며 비메모리부터 D램, 낸드플래시(이하 낸드) 등 사용처도 다변화됐다. 여기에 디스플레이와 태양광 등 신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실리콘과 메탈, 하이케이(고유전율) 제품 등 다양한 제품을 개발해 시장 확대를 추진 중이다. 한솔케미칼은 지난 2012년부터 디이소프로필아미노실란(DIPAS)과 비스티에틸아미노실란(BDEAS), 트리실릴아민(TSA) 등 전구체 상업생산을 시작하며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이어 3차원(3D)낸드에 주로 적용되는 3DMAS까지 품목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D램 미세화를 위한 DIPAS, BDEAS를 공급하며 TSMC, 인텔 등 외국 주요 비메모리 기업에는 TSA 전구체를 공급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TSV는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국내 시장에서 80% 이상 점유율을 확보했다. BDEAS는 60% 수준이다.
전구체와 함께 양자점 역시 세계 시장에서 선두 지위를 갖춘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매출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삼성전자 주력 TV 제품인 ‘QLED TV’에 한솔케미칼이 독점 공급한 양자점이 사용된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지난 2021년 양산을 시작한 ‘QD디스플레이’ 역시 양자점을 활용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로, 기존 QLED TV용 패널보다 양자점이 5배 이상 들어간다. 향후 삼성전자가 자사 OLED TV 제품군을 강화하면서 성장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한솔케미칼 과산화수소 매출은 약 2338억원, 전구체는 909억원 규모다. 양자점 부문은 1270억원 수준이다. 올해에는 전방수요 둔화로 인한 반도체, 디스플레이 투자 축소로 소재를 생산하는 한솔케미칼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업황 부진에도 인텔 등 신규 고객사 효과와 더불어 DIPAS 등 점유율 확대로 매출 성장세가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올해 매출 전망치는 과산화수소가 2239억원, 양자점 1324억원, 전구체 1055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최근에는 이차전지 분야로 사업다각화가 한창이다. 이차전지는 사업 성장성이 높고 현재 삼성SDI 등 주요 고객사가 투자를 확대는 흐름이 나타나며 향후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질 전망이다. 전자재료 부문에서 흑연과 동박에 접착력을 구현하는 음극바인더, 고내열 분리막용 바인더, 차세대 고용량 실리콘 음극재 등을 생산해 국내외 전기차 배터리 기업에 공급한다.
당초 음극바인더 시장은 일본 제온과 JSR 등이 독식하고 있었지만, 한솔케미칼이 2012년경 개발에 성공하면서 시장에 진입했다. 국산화 효과로 국내 배터리 기업과 공동 개발을 추진하며 매출이 지속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400억원 규모였던 매출은 올해 620억원 이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최근에는 이차전지 4대 부품 중 하나인 음극재 영역에 진출했다. 전북 익산에 공장을 마련해 지난 3월 가동을 시작했다. 연 750만톤 규모 생산능력을 갖추고 실리콘 음극재를 생산한다. 주요 공급사는 삼성SDI로 전망된다.
이차전지로 진출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편중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 업황 변동에 따른 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지난 2016년 이차전지용 테이프를 생산하는 테이팩스 인수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한솔케미칼이 추가적인 인수합병에 나설 여지가 있다. 회사는 올해 1분기 지분 취득을 통해 식품의약품 제조용 화학제품 제조와 판매를 담당하는 바이옥스를 자회사로 편입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 등에 식품의약품 공정용 화학제품을 공급해 온 업체다. 생물반응기(바이오리액터)용 세정제가 주력 제품이다.
최근 3년간 매출 지속 성장…재무 안정성도 대폭 개선
수익성 향상을 바탕으로 전반적인 재무지표가 모두 개선세를 나타내고 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모두 지속적인 증설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높아진 영업현금창출력으로 재무구조를 안정적으로 유지해 나가는 모습이다. 최근 3년간 매출은 지속 성장세다. 영업이익 역시 지난해 전년 대비 소폭 감소했지만, 여전히 영업이익률이 20% 이상으로 긍정적인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부채비율과 순차입금비율이 낮아지며 재무안정성이 높아지는 흐름이 눈에 띈다.
지난해에는 영업활동으로 현금을 창출하는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인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이 2201억7000만원으로, 이를 매출로 나눈 EBITDA 마진율은 24.86%에 달했다. 통상 신용평가사 등에서는 해당 수치가 20%를 상회하면 수익성면에서 원가우위가 우수하고 일정 규모로 이익을 창출하는 능력이 안정적인 것으로 판단한다.
EBITDA 대비 자본적지출(CAPEX) 지표는 지난해 1.97배를 기록했다. 반도체 기업은 미래 수요를 예측하고 적기에 설비투자를 시행해야 하는데, 이때 자금소요가 기업이 창출할 수 있는 현금 여력과 어느 정도 차이를 갖는지가 중요하다. 현금이 부족해 설비투자가 적기에 적정규모로 이뤄지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시장지배력을 잃게 되고, 이는 영구적인 경쟁력 훼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한솔케미칼이 지난해 기록한 1.97배는 벌어들인 돈이 나가는 돈보다 2배 가까이 많다는 의미로, 외부에서 돈을 빌리지 않아도 적정규모로 적기에 설비투자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현금흐름이 안정적이라는 말이 된다.
다만 올해 1분기에는 매출 1973억원, 영업이익 34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1%, 36% 감소했다. 과산화수소를 중심으로 반도체향 소재 매출이 크게 꺾였기 때문이다. 다만 올해 2분기부터 삼성전자 평택3공장(P3)이 가동을 시작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2분기는 전년 동기 대비 성장으로 반등이 예상된다.
반도체 소재 시장재편 가능성…이차전지 경쟁도 부담
최근 포스코퓨처엠과 OCI가 합작기업 피앤오케미칼을 앞세워 지난해 10월 반도체용 고순도 과산화수소 생산을 시작하면서 도전장을 내밀었다. 연산 5만톤 규모로 여기서 3만톤 정도가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공정에 투입되는 고순도 제품이 될 전망이다. OCI는 1979년부터 과산화수소를 생산해 온 업체로 기존에도 한솔케미칼과 국내 시장을 복점해왔다. 여기에 피앤오케미칼을 앞세워 고순도 과산화수소 부문에서 생산능력을 크게 확대하게 됐다.
당장 한솔케미칼에 미치는 영향을 크지 않을 전망이다. 품질 면에서 확보한 우위를 바탕으로 국내 시장 지위가 높아 점유율 하락 우려가 적은 데다 국내 반도체 업계가 계속해서 증설을 이어가며 과산화수소 수요는 지속해서 확대되고 있어서다.
다만 경쟁사가 생산능력을 공격적으로 확대하며 경쟁강도가 높아지는 점은 장기적으로 부담이다. 여기에 피앤오케미칼 사례처럼 높은 수익성이 보장되는 반도체용 과산화수소 시장에 신소재 부문 경쟁력을 갖춘 신규 기업이 진입할 여지도 높다.
사업다각화를 위해 진출한 이차전지 소재 부문은 이미 경쟁이 치열하다. 국내에도 대주전자재료와 포스코실리콘솔루션, SK머티리얼즈 그룹 등이 투자를 확대하는 추세다. 실제 상용화는 LG에너지솔루션을 통해 납품한 대주전자재료가 유일하다. 실리콘 음극재는 차세대 음극재 기술로 유망하지만 그만큼 경쟁 강도가 높아지며 투자와 기술 개발을 위한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