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빠이 아저씨' 이상용, 81세로 별세... 삶의 고난에 모두가 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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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방송인 '뽀빠이 이상용씨가 2025년 5월 9일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이들의 애도가 이어졌습니다.

뽀빠이 이상용, 향년 81세로 별세
KBS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방송인 '뽀빠이 이상용이 2025년 5월 9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상용은 이날 정오 서울 서초구 자택 인근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귀가 중 쓰러졌으며, 서울성모병원으로 긴급 이송되었으나 끝내 심정지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고인의 측근은 "지병 없이 감기 증세로 병원을 찾은 것이었는데 갑작스러웠다"고 밝혔습니다. 이로 인해 가족은 물론, 대중 역시 충격과 슬픔에 잠겼습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1호실에 차려질 예정이며, 유족 중 한 명은 홍콩에 거주하고 있어 장례 일정 조율이 진행 중입니다.

이상용은 방송인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수많은 심장병 어린이 후원 활동을 펼쳐온 인물로, 국내 방송사와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긴 상징적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국민 MC의 발자취
tvN

키 160cm에 다부진 체격, 벽돌을 깨는 퍼포먼스로 익숙한 '뽀빠이' 이상용은 1973년 MBC '유쾌한 청백전'으로 방송에 데뷔했습니다. 이후 KBS '모이자 노래하자', MBC '신나는 토요일', 그리고 그를 상징하는 프로그램인 '우정의 무대'의 MC로 대중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1989년부터 1996년까지 방송된 MBC의 군 위문 프로그램 '우정의 무대'는 전국 장병과 가족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전설적 인기를 끌었습니다. 무대에 선 장병과 어머니가 눈물로 상봉하고, 이상용이 외치던 "고향 앞으로 출발!"은 그 시절을 상징하는 대표 멘트였습니다.

그는 또한 '전국노래자랑' 2대 MC로 1년간 활약하며, 故 송해 선생에게 바통을 넘기기도 했습니다. 여러 tv 출연에서도 유쾌한 입담과 정감 있는 이미지로 대한민국 대표 MC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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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

1980년대 어린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중, 이상용은 한 아이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뒤 심장병 어린이 지원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전세금 600만 원으로 살던 그는, 아이 수술비 1,800만 원을 직접 마련하며 본격적인 후원 활동에 나섰습니다.

그는 이후 한국어린이보호회를 세우고 약 600여 명의 어린이를 돕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그의 헌신은 국민훈장 동백장, 문화관광부장관 표창 등으로 이어졌고, 시민들의 박수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996년, 그는 심장병 어린이 후원금 횡령 혐의를 받으며 '우정의 무대' MC 자리에서 하차해야 했습니다. 3개월 후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언론과 대중은 그의 억울함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습니다. 이후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관광버스 가이드로 생계를 이어가며, 일시적인 실명과 극단적 시도까지 경험했습니다.

억울했던 누명, 정치적 보복의 의혹까지
회장님네사람들

이상용은 생전에 해당 횡령 의혹이 정치적 이유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 측으로부터 대전 지역 국회의원 출마 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했고, 이후 방송 프로그램 '추적 60분'에서 공금 횡령 내용이 방영되며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그는 방송 3일 전 김현철 최측근으로부터 협박 전화를 받았다는 사실도 뒤늦게 밝혔으며, 아버지는 무죄 판결문을 손에 들고 억울함을 호소하다가 숨졌고, 본인도 감정적·육체적으로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 사건은 이상용의 인생에서 돌이킬 수 없는 전환점이 되었고, 그는 끝내 방송계로 복귀하지 못한 채 조용히 살아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tv 프로그램 '회장님네 사람들'에 출연해 유쾌한 모습으로 근황을 전하며 팬들을 반갑게 했습니다.

마지막까지 병원 다니며 성실히 살아간 뽀빠이 이상용
스타다큐 마이웨이

이상용은 최근에도 다리 골절, 전립선 문제, 당뇨 등 복합적인 건강 문제로 고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방송을 통해 그는 "밥맛이 없어 하루 한 끼만 제대로 먹는다"며 소고기와 오리고기를 번갈아 섭취한다고 전했습니다. 또한 위문을 가면 "뽀빠이도 병원에 오네?"라는 반응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그의 재산이나 사적 생활은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후원에 거의 대부분을 사용했고, 말년에 이르러서도 송도 아파트에서 소박하게 생활했다고 전해집니다. 부인 윤혜영 씨(같은 해 출생)와의 사이에는 아들 2명, 딸 1명이 있으며, 현재 며느리 박지영 씨와 손자 이노엘 군도 유족으로 남았습니다.

마지막까지 따뜻한 말과 사랑을 전하려 했던 이상용. 그의 삶은 화려하진 않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선한 영향을 남긴 국민적 인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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