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와 위기 공존하는 日 이시바 시대…야스쿠니 참배는 거부, 방위력 강화엔 적극적
(시사저널=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9월27일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이시바 시게루 전 간사장이 당선되었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에선 집권당 대표가 총리가 된다. 이시바 자민당 신임 총재는 10월1일 임시국회의 지명선거를 통해 102대 총리로 취임했다. 한일관계 개선의 흐름 속에서 일본의 새로운 리더십 등장은 한일관계에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수 있어 우리의 관심도 모아진다.
그는 '비주류' '여당 내 야당' '반(反)아베' '아베 대항마'로 알려져 있다. 국방·안보 분야에 유독 깊은 관심을 보여 '안보통'으로도 평가된다. 전함, 전차, 전투기 등의 프라모델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군사 마니아', 철도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철도 마니아', 1970년대 일본 아이돌인 캔디즈의 팬이라 '아이돌 마니아'라는 별명도 있다. 애니메이션과 카레, 라멘을 좋아하고, 돗토리현의 한 박물관 행사에 만화 《드래건볼》에 나오는 '마인부우' 캐릭터 분장을 하고 나타나 주목받기도 했다. 국회 내 '라멘 문화진흥 의원연맹' 회장이기도 하다.
정치적으로는 일본에서 가장 작은 인구 55만 명의 도시 돗토리현을 지역구로 하는 정치 경력 38년, 12선의 베테랑 국회의원이다. 돗토리현 지사와 자민당 간사장을 지낸 할아버지, 돗토리현 지사와 자치대신, 국가공안위원장 등을 지낸 아버지의 뒤를 이은 1957년생 67세의 세습의원이다.
정계에 입문한 건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인 이시바 지로가 사망하고, 당시 미쓰이은행에 다니던 이시바는 아버지의 오랜 친구인 다나카 전 총리의 권유로 다나카 파벌 사무소에서 근무를 시작해 1986년 중의원 선거에 출마, 당시 29세의 최연소 나이로 당선됐다.
4전5기 끝 총리로…'공부벌레' 정책통 평가
각종 언론에 자주 출연해 국민적 인지도가 높고, 차기 총리로서 적합한 인물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항상 1~2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동료 의원들에게는 인기가 없다. 동료 의원들과 친목을 다지는 시간보다 공부하는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그는 동료 의원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친목 자리에서도 정책 논쟁만 한다고 한다. 그는 상당한 정책통이다. 그의 사무실 책장에는 책이 가득하고, 여태까지 그가 낸 저서도 수없이 많다.
이력도 화려하다. 아베 내각에서 자민당 정조회장과 간사장을, 고이즈미 내각에서 방위청장관, 후쿠다 내각에서 방위대신, 아소 내각에서 농림수산대신, 아베 내각에서 지방창생담당대신을 지냈다. 그러나 당에 쓴소리를 하고, 자신을 대신으로 임명한 아소 당시 총리의 퇴진을 요구한 탓에 아소 다로와는 견원지간으로 알려져 있다. 아베 전 총리와도 총재 선거에서 맞붙으며 사이가 좋지 않았다. 1993년 자민당을 탈당했다가 1997년 복당한 경력 때문에 배신자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4번(2008년, 2012년, 2018년, 2020년)의 총재 선거에 출마해 고배를 마셨고, 2021년에는 고이시카와연합(고이즈미 신지로, 이시바 시게루, 고노 다로)을 이루며, 고노를 지지했지만 실패했다. 이런 이력 탓에 당에서는 오랜 기간 비주류로 분류됐다. 그런 그가 2024년 9월, 5번의 총재 선거 도전 끝에 승리했다.
자민당 총재 선거는 국회의원 수(368명)와 당원 수(전국 약 105만 명)를 1:1 비율로 환산한 1차 투표에서 과반이 넘으면 바로 총재로 당선된다. 그러지 못할 경우 가장 많이 득표한 2명의 후보가 다시 결선투표를 벌인다. 이때 1차와 달리 국회의원 수(368표)와 전국 47개 도도부현 각 1명씩(47표)을 더해 결정돼 국회의원 표의 비중이 크게 늘어난다. 당초 의원들의 표를 얻기 힘들 것이라고 여겨졌던 이시바가 근소한 차이로 다카이치 사나에를 이기고, 총재로 당선되었다. 이시바는 어떻게 당선될 수 있었을까?
첫째, 타 후보의 불안정성이 이시바에 대한 소극적 지지로 이어졌다. 사상 최다 9명의 후보가 출사표를 던지고, 역대 가장 긴 15일 동안 선거운동을 한 이번 자민당 총재 선거는 후반부로 갈수록 고이즈미 신지로, 다카이치 사나에 그리고 이시바 시게루의 3파전으로 좁혀졌다. 선거운동 초반부 쇄신과 혁신, 결착을 키워드로 젊은 세대의 바람을 일으키며 크게 주목받던 고이즈미는 토론회가 거듭될수록 준비 부족과 경험 부족이 드러났고, 아베의 후계자를 자임한 다카이치 사나에는 지나친 강성보수 성향으로 주변의 우려를 샀다.
특히 다카이치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강행 의지에 대해 일본 내에서도 한국·중국·미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이러한 가운데 경험과 연륜이 돋보이는 이시바는 노련했다. 국방·안보 등 자신의 관심 분야에서는 강력한 주장을 하는 한편, 논쟁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강경하지 않았다. '납득과 공감의 정치'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그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선택적 부부 별성, 여성 천황제 등 논쟁적 사안에 대해 용인하는 입장이지만,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며 반대파를 안심시켰고, 그렇게 소극적 지지를 이끌어냈다.
극우 대신 온건보수 이시바 선택한 자민당
둘째, 총재 선거 이후 치러질 중의원, 참의원 선거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자민당 총재 선거 기간 중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당대표로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가 당선된 것도 변수였다. 물론 자민당에 대한 콘크리트 지지층이 30% 정도 있는 반면,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지지는 10%도 채 되지 않아 여당과 야당이 바뀔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지속되는 정치자금 문제로 인해 자민당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높아지고, 자민당의 신뢰 및 지지율이 하락하는 가운데 곧 치러질 중의원, 참의원 선거에서 총리 경험자를 당대표로 내세운 야당을 누가 대응할 것인가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가운데 고이즈미와 다카이치로는 안 된다는 의견이 퍼져 나갔다. 상당한 논쟁가로 알려진 노다 전 총리를 경험과 능력 부족의 고이즈미와 강성보수의 다카이치가 상대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특히, 다카이치를 지지하는 의원들 상당수는 정치자금 문제에 연루된 사람들이었고, 이는 선거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판단이 많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반사이익을 얻은 이가 이시바였다. 논쟁가 이시바는 노다 전 총리를 상대하기 충분하고, 노다와 비슷한 정책적 성향을 가지고 있어 선거에서 중도파, 무당파층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셋째, 캐스팅보트를 쥔 건 기시다 총리였다. 파벌 해체 후 처음으로 치러진 이번 선거에서 적어도 표면상 파벌정치가 작동하기는 어려웠지만, 파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고이즈미 지지를 공식 선언한 스가 전 총리는 무파벌이지만, 그에게는 수십여 명의 스가 그룹이 있고, 고이즈미가 결선에 올라가면 고이즈미를, 이시바가 올라가면 이시바를 지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오랜 기간 킹메이커 역할을 해온 아소 부총재는 유일하게 해체하지 않은 아소파(54명)의 수장으로 건재했다. 결선투표에서 '이시바(스가 그룹) 대 다카이치(아소파)'의 구도가 형성되면서 키를 잡게 된 쪽은 기시다 총리였다. 기시다는 투표 전날까지도 특별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는데, 선거 당일 '다카이치와는 정책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기시다파는 해체했지만, 결속력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기시다파 수십여 명이 이시바에게 투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표 결과 이시바가 당선됐지만, 향후 국정 운영은 쉽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결선투표에서는 이겼지만, 이시바가 1차 투표에서 얻은 의원 표는 총 368표 중 46표에 불과했다(1위 고이즈미 75표, 2위 다카이치 72표). 다시 말해, 이시바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와 동의가 아니라는 의미다. 결선에서 접전을 벌인 다카이치의 표가 상당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1차 투표에서도 당원 표 1위는 109표를 얻은 다카이치였다. 이시바는 2위로 108표였다. 다시 말해, 이시바와 정책적 성향이 매우 다른 다카이치를 지지하는 국회의원, 당원 수가 상당하다는 의미다. 더욱이 다카이치는 이시바가 제안한 당의 요직 중 하나인 총무회장 자리를 거절해 이시바 내각과 대립각에 설 수 있음을 예고했다.
한국 자극하는 언행 안 할 가능성 높아
이시바 총리는 이례적으로 총리로 취임하기 하루 전에 총리의 전권인 중의원 해산을 시사하고, 10월27일 중의원 선거 실시를 발표했다. 이는 선거운동 기간에 이시바가 이야기해온 부분과 달라 많은 비판을 받았다. 지지율이 높을 때 선거를 치러야 한다는 당내 의견을 따른 것으로 보이지만, 총리로 취임하기도 전에 이미 기존에 자신이 했던 말을 바꾸고, 리더십을 보이지 못한 것이라는 비판이다. 중의원과 참의원 선거 결과가 이시바 내각의 장기 집권 여부를 판가름하는 주요 요소가 되겠지만, 적어도 초기의 모습은 불안정해 보인다.
한국에 온건보수로 알려진 이시바의 당선이 안도감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다카이치가 예고한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한국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고, 어렵게 이끌어온 현재의 한일관계에 악재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본의 과거 직시, 전쟁 책임 인정, 사죄 필요 등을 언급하며 보여준 이시바의 전향적인 역사 인식은 한국으로 하여금 역사 문제의 진전을 기대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국회의원 개인의 입장과 일본을 대표하는 총리의 입장이 다를 수 있어 지나친 기대는 이르지만, 변화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또 공부와 논쟁을 좋아하고, 신중한 성향의 이시바가 한국을 자극하는 발언이나 행동은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캐스팅보트를 쥔 기시다가 이시바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것도 안심되는 부분이다. 기시다가 자신의 임기 최대 성과 중 하나로 꼽은 한일관계를 악화시키는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시바의 오랜 지론인 '아시아판 나토(NATO) 창설' '전수방위' '비핵3원칙' 재검토, 그리고 '미일지위협정' 재검토, '안보기본법 제정' 등 급진적인 안보인식은 불안 요소다. 특히 자위대의 처우 개선을 중시하는 '안보통' 이시바의 일본 방위력 강화, 일본의 전력 보유를 금지한 헌법 9조2항 삭제 주장은 한국으로서는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주장들이 일본 내에서도 논쟁적인 사안이고, 주변국들의 반대가 적지 않아 실현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논의선상에 오르는 것 자체에 대한 부담이 크다. 그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이시바 신임총리의 저력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