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과에서는 뭘 하나요?_건축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전하는 전언
건축을 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사람과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일’이다_
그 안에서 결핍을 찾아내고 그 해결을 건축이라는 매개체medium을 통해 해답을 제시하는 일이다. 건축학과에 다니면서 건축이 이렇게 사회를 들여다보는 학문이었나? 하고 많은 건축학과 학생들이 뒤늦게 깨닫곤 한다. 보통 ‘건축’이라고 하면 예쁜 집 짓고, 아름다운 공간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건축학과는 그것을 배우는 곳이라고 지원했을 것이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건축학과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건축설계스튜디오' 시간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미적인 형태를 만드는 시간보다 구축의 원리, 인간의 행태와 심리, 사회적 현상, 공간의 본질, 미래의 세상을 고민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
건축을 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사람과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일’이다.
건축은 궁극적으로 ‘물리적 실체'를 만드는 일’이다. 그 본질은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건축을 한다면 건축의 재료와 구축, 구조와 기술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것에 관해 기본적인 숙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정보와 지식의 축적, 교육의 전달로 가능한 영역이다. 이 부분만으로 건축 기술 전문가는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건축의 구축적 기술을 이용해 인간에게 꼭 필요한 공간화하는 작업은 다른 차원이다. 인간을 이해하고 시대를 읽어야 하며 그것을 건축적 사고로 전환하여 건축 기술로 만들어내는 일이다. 이것은 고도의 감각적 숙련, 더불어 다른 차원의 특별한 시선을 필요로 한다. 그 이유는 보이지 않은 영역을 다루기 때문이다. 건축학과의 수업이 건축의 재료, 구조,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만으로 머물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건축학과가 기능인이나 기술자를 만드는데 목표가 있지 않다는 것이다.
건축설계스튜디오에서 건축설계를 위한 건축언어와 표현기법을 배우는 것 외에도 사람들의 욕망과 활동, 변화하는 사회현상, 제도, 경제적 흐름, 심리적 반응 등에 주목한다. 진보된 미래를 위해 건축이 할 수 있는 해안을 찾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이유이다. 현재 한국의 건축학과는 5년제인데 그 정점의 시간이 5학년 졸업설계스튜디오와 졸업논문의 시간이 아닌가 한다.
건축은 보이지 않는 영역을 다룬다.
요즘 수능이 끝나고 전공학과를 지원하는 시기이다. 수시지원에서는 이미 학과를 결정했을 것이고, 정시지원은 곧 한 달 뒤면 결정의 시점이다. 세상이 유연해져 전공과 상관없이 영역을 넘나 든다고 해도 한 분야에 4년, 5년(건축학과), 6년(의학과)의 공부하는 시간을 투자한다고 보면 전공의 선택을 그리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대학교 전공의 결정은 앞으로 자신이 살아갈 삶의 방향의 결정이며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영역의 결정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대학교 전공을 지원할 때 자신이 지원한 학과가 무엇을 배우고 무엇을 쌓는 곳인지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지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의문을 가진다. 가족이나 가까운 친지가 그 과에 몸담고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어렴풋한 짐작된 정보들을 가지고 학과에 지원하게 되는 것이 보편적인 현실일 것이다..
대학교 전공의 결정은 앞으로 자신이 살아갈 삶의 방향의 결정이며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영역의 결정이다.
그럼 '건축학과' 지원자들은 어떠할까? 건축학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1, 2학년 학생들을 가르쳐보면, 지원 동기가 그림을 좀 그리는데 그렇다고 미대에 가긴 그래서 왔다는 학생들, 건축학과는 보통 공과대에 안에 있는데, 공과대 중에서 외부적으로 폼은 좀 나는데 지원 점수가 낮은 편이어서, 아니면 순수하게 수능 점수에 맞춰서.라는 답변을 듣는다. 하다못해 내 집을 짓고 싶어서요라던가 건축가가 되고 싶어서요 도 실은 소수이다. 이렇듯 건축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도 욕망도 매우 부족한 상태에서 지원한다는 사실이다. 한편 이것은 우리 사회가 건축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된 시각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들어온 학생들은 우선 건축학과 수업강도에 놀라고 (의대 다음으로 잠을 못 자는 학과이다) 그림을 그리듯 설계 기술을 배우는 줄 알았는데, 사회학적 관점, 지리학적 관점, 심리적 관점, 구조적 관점 등등 다초점의 시각을 요구하고, 끊임없이 자신이 그려낸 논거의 증명을 요구받고, 문이과의 통합된 사고와 예술적 미학까지 해내야 하는 것에 당황하고 좌절한다. 게다가 눈에 보이는 프로덕션 만들기까지 수행해야 하니 시간 쫓김은 기본이다.
다학적 인재로 배양되는 곳
건축학과
대신 이러한 다학적인 모든 면을 섭렵하는 사고의 과정, 문제해결, 그리고 시각적 다이어그램 도출, 기술적 설계, 물리적 모델 프로덕션까지 하는 과이다 보니, 건축학과 과정을 제대로 끝낸 사람들은 졸업 후 그 어떤 분야를 가도 기획에서부터 눈에 보이는 시각적 모델까지 만들어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건축학과의 강점은 이것에 있다고 본다.
핵개인의 사회가 되어가고, 어디 소속이 아닌 각 개인의 능력이 곧 자생력의 핵심으로 부각되어 가는 현실에서 건축학과만큼 그 능력을 배양해 주는 학과가 또 있을까 싶다.
건축의 본질로 다시 돌아가 건축학과를 졸업한다면 우선 '건축가'가 되는 것일 터인데, 그럼 건축가는 무엇이고, 건축가로 사는 일은 어떠할까?
건축가는 ‘먼저 가보는 자’이다.
보통 건축작업을 '프로젝트'라 칭한다. 건축작업을 ‘프로젝트 project’라 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project의 뜻에는 ‘투사하다. 예측하다’ 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기계, 프로젝션 projection을 생각해 보면 좀 더 이해가 쉬울 것이다. 건축가의 작업은 말이나 글로 전달하는 ‘계획’에서 끝나지 않는다. 미래를 ‘가시화된 세계로 투사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즉, 미래를 눈으로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타자를 상상할 수 있게 해 주려면 건축가가 먼저 ‘제대로 상상’ 할 수 있어야 한다. 건축적 상상은 건축이 물리적인 실체로써 사람들을 담고 시간을 견디며 존재하여야 하기에 소설가가 그리는 상상과는 차원이 달라야 한다. 건축가에게는 사람들의 삶의 영위를 책임지는 예견자로서의 역할이 분명히 존재한다. 사회적 책임이 따르는 ‘제대로 된 상상’을 하기 위해 건축가는 건축의 구축술과 공간의 적합성 그리고 자신이 투사하는 미래를 뒷받침하는 논거를 끊임없이 찾고 연구해야 하는 것이다.
건축가에게는 사람들의 삶의 영위를 책임지는 예견자로서의 역할이 분명히 존재한다.
건축은 ‘건축가의 의식 속의 건축‘과 ‘실체로서 건축‘이 있다.
건축가의 의식은 계속 흐른다. 건축가로 사는 일은 자신의 뇌를 동시점에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세계에 놓는 일이기도 하다. 의뢰가 들어오면 건축가는 현재가 아닌 미래를 그린다. 건축가의 현재는 이미 미래에 가 있게 된다. 그 프로젝트가 건축물의 실체로 만들어지면 비로소 의뢰자의 현재(현실)가 된다. 프로젝트 project에서 작품 works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건축이 세상에 현존하는 방식이 바뀌는 순간인 것이다.
건축가의 머릿속에 있던 건축이 완공된 건축물로 세상에 실체를 드러낼 때, 이 순간은 건축가만이 느낄 수 짜릿한 순간이기도 하다. 이와 동시에 건축가에게 건축의 현거 the present life는 과거가 된다. 이것은 동시대에 과거를 실체로 보는 경험이다. 건축가에게 ‘현재로서의 건축‘은 자신의 머릿속에 그리는 이미지이며 도면으로 존재한다. 세상에 건축물로 현존하기 이전에, 사유하고 그려내고 검증하고 품고 있는 시간들이다.
건축가 자신에게 건축이 실체로서 현존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짧다고 본다. 건축가의 숙명은 이미 또 다른 미래를 그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토스트
글. 전이서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건축가이자 교육자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건축시선을 통해 더 나은 삶과 도시를 만드는 건축적 감각을 전하고자 글을 쓰고 있다.
#건축을한다는건 #건축학과 #건축 #건축에세이 #문화 #건축가로사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