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뒤 농사지으러 갑니다”…도시에서 찾은 자급자족의 길

신효진 기자 2025. 2. 10.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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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 한 번에 먹거리 해결되는 시대
친환경에 자급자족 가능한 도시농업
삶의 균형 찾는 지속가능한 농업 방식
지난해 6월8일, ‘반농반X자급자족연구회\'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인근 논에서 토종 벼 140종을 기르는 채종포 자리를 만들기 위해 손모내기를 했다. 반농반X자급자족연구회 제공.

지난해 4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농림어업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농가 수는 99만 9000가구로 집계됐다. 1970년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농가 수가 100만 가구를 밑돌았다. 농업인구의 고령화, 식량의 해외 의존도 증가, 쌀 소비량 감소로 인한 농가소득 감소 등 국내 농업이 직면한 복합적 문제가 빚어낸 결과다. 인구의 5%도 되지 않는 농부들만의 힘으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모든 것이 클릭 한 번으로 해결되는 도시에서 농업의 위기를 체감하기는 더욱 어렵다. 새벽 배송을 통해 신선한 채소를 받고, 전국 각지의 특산물을 당일로 주문하는 편리함 속에서 도시민들은 생산과 소비가 분리된 삶을 살고 있다. 반면 온라인을 통한 인스턴트 소비에서 벗어나 먹거리의 자급자족을 꿈꾸는 도시농부들이 점점 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국의 도시농업 참여자는 176만5천여명에 이르며, 이중 서울시 참여자만 해도 약 65만명에 이른다. 최근 기후위기와 먹거리 안전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농업에서 친환경 먹거리와 자급자족의 가치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난 까닭이다. 초기 도시농업이 취미나 여가 활동에서 시작했다면, 최근에는 토종 종자 보존 등 생태적 가치를 포함해, 정서적 안정감을 찾는 치유농업, 이웃 공동체와 교류하는 공유농업 등 대안적 삶의 방식으로서 의미를 넓혀가고 있다.

평일엔 직장인, 주말엔 토종 벼 농부

평일에는 직장인, 주말에는 농부로 살아가는 ‘반농반X자급자족연구회’의 도시농부들은 지난해 경기도 남양주에서 600평(약 1983㎡) 규모의 논에 토종 벼농사를 일궜다. ‘반농반X’는 일본의 생태운동가 시오미 나오키가 제시한 삶의 방식이다. 작은 농사를 지으면서도 자신의 재능을 살려 다른 일을 병행하며 수입을 얻는다는 개념이다. 한때 영화 관련 일을 하던 최유리씨는 도시와 농사를 잇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 나섰다. 그렇게 그는 평일에는 본업을, 주말에는 농사를 짓는 ’도시 농부’가 되었다.

이들은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고 토종 벼를 재배했다. 토종 벼는 한반도의 토양과 기후에 최적화한 벼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쌀 수탈을 극대화하기 위해 수확량이 많은 품종으로 강제 개량되면서 토종 벼는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갔다.

최씨는 “일반미는 이미 많은 농부가 재배하고 있으니, 자급자족하려는 농부에게는 일반미보다 생태적 가치가 있는 토종 벼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고 토종 벼를 선택한 이유를 말한다. 전체 쌀 생산량(358만톤)에서 토종 쌀의 비중은 0.0001%(30톤)에 불과하다. 그는 “씨앗이 보존되려면 계속 농사를 짓고, 먹고, 채종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며 토종 벼농사의 의미를 설명했다. 다만 이상과 현실의 균형을 강조한다. 한참 농사가 바쁜 시기는 놀러 다니기에도 가장 좋은 계절이기 때문이다. 그는 “주5일을 일하고, 주말에 농사짓기 쉽지 않다”며 “도시생활자라면 문화생활도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정도의 규모를 택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2015년부터 도시농업을 시작한 최씨지만 토종 벼농사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서울 근교에서 적당한 크기의 논을 찾는 것부터 어려웠다. 몇 달을 수소문한 끝에 지인을 통해 힘들게 논을 얻었다. 농사 기술도 큰 과제였다. 기본적인 농사 감각은 있었지만, 벼농사는 달랐다. 그는 “텃밭은 작은 공간에 계절마다 작물을 바꿔가며 심을 수 있지만, 논농사는 달랐다”고 말한다. 최소 200평 이상을 한꺼번에 관리해야 하고, 물 관리부터 수확까지 모든 과정이 새로웠다. 책을 통해 벼의 생육 과정을 이해하고, 주변 농부들에게 물어가며 실전으로 배워나갔다. 특히 토종 벼를 키우는 ‘우보농장’ 이근이 대표의 도움이 컸다. 600평의 논 중 200평은 토종 벼 140종을 기르는 채종포 자리로 제공하고, 나머지 400평에서는 10종의 토종 벼를 심었다.

가장 큰 시련은 잡초와 싸움이었다. 주말에만 갈 수 있으니 그사이 자란 잡초가 어마어마했다. 수확도 만만찮았다. 토종 벼는 키가 크고 까락(벼수염)이 길어 기계 수확이 어렵다. 더구나 10종의 토종 벼와 140종의 채종용 벼를 심은 탓에 다양한 품종의 벼가 섞이면 안 됐다. 그래서 콤바인을 빌리지 않고 낫으로 모두 수확하고 발 탈곡기로 일주일 동안 논에서 직접 탈곡을 했다. 아날로그에 대한 열망 때문이 아니었다. 주어진 인프라와 상황에서 택할 수밖에 없는 방법이었다. 제대로 수확이 이뤄진 300평 규모의 논에서 280kg의 나락을 얻어 최종 200kg 가까운 쌀을 수확했다. 같은 면적의 일반벼 수확량(514kg)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지만, “거름도, 제초제도, 농약도 쓰지 않은 초보 도시농부의 수확치고는 나쁘지 않은 결과”라고 최씨는 평가했다.

다양한 품종의 토종 벼가 서로 섞이지 않게 하기 위해 기계가 아닌 발 탈곡기로 일일이 나락을 털고 있는 최유리씨. 반농반X자급자족연구회 제공.

600평의 논을 3명이 관리하는 것은 한계가 명확했다. 최씨는 “모내기 때는 자원봉사자들이 도왔지만, 풀 매기와 수확은 정말 힘들었다”고 회상한다. 이런 경험은 ‘공유농사’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했다. 그는 공동체라는 말 대신 ‘공유농사’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공동체성은 갑자기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도시민들에게는 모이고 싶은 욕구와 더불어 혼자이고 싶은 욕망도 있잖아요. 하지만 수줍은 ‘아이’(I·내향형) 성향의 개인도 농사를 짓고 싶을 수 있죠. 그래서 경작지, 경작 노하우, 일손, 필요한 자재와 시설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공유하는 일종의 ‘농생활 그라운드’를 만들고 싶어요.”

그의 도시농부 실험은 올해 파주에서 계속된다. 최유리씨는 “작년은 시행착오를 온몸으로 겪느라 다른 일을 할 여력이 없었다”며 다시 사람들을 모아 “모두가 귀농할 수는 없지만, 도시에서도 충분히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도시농부의 자급자족 실험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반농반X자급자족연구회’는 지난 1년간의 토종 쌀 농사기록을 소개하고, 직접 수확한 토종 쌀로 밥을 지어 먹으며 도시에서의 자급자족과 생태적 삶의 가능성을 나누기 위해 지난해 12월 7~8일 서울 종로구의 한 공방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반농반X자급자족연구회 제공.

도시 텃밭에서 찾은 순환의 지혜

서울 강북구의 이보라씨는 20평 남짓한 텃밭에서 도시농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건강에 적신호가 왔을 때 시작한 텃밭 가꾸기는 어느새 15년 차에 접어들었다. 그는 “몸이 아프다 보니 먹는 것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고 말한다. 몸에 좋다는 건강식품을 먹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자신이 먹는 것을 직접 키우고 싶었던 이보라씨의 텃밭에는 계절별 푸성귀와 허브까지 다양한 채소가 자란다. “요즘에야 어디서나 쉽게 먹거리를 구할 수 있지만, 씨앗을 심어 수확하기까지의 고단함과 소중함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는 특히 기후위기 시대에 자급자족의 의미가 더욱 커진다고 강조했다.

더 특별한 것은 순환의 실천이다. 텃밭의 퇴비는 집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와 텃밭 부산물을 모아 직접 만든다. 처음에는 주변에서 낯설게 생각했지만, 어느새 마을 주민들도 퇴비간에 음식물 쓰레기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이보라씨는 3년 전부터는 마을의 ‘어진이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에서 ‘레인보우파티’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모임에서 채소 중심의 케이터링 일과 제로웨이스트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활동 반경을 넓혔다. 그는 “나와 우리 이웃의 먹거리를 만들고, 그렇게 만든 음식을 이웃과 나눠요. 그 과정에서 나온 음식물 쓰레기는 다시 퇴비가 되죠”라고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우리의 삶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순환하는 것”을 느낀다고 말한다. 작은 텃밭에서 시작된 마을의 변화를 경험한 이보라씨는 “텃밭을 통해 만나는 동네, 순환이 있는 마을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마을마다 이런 공간이 하나씩 생긴다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서울 강북구에 거주하는 이보라씨는 집앞 20평 남짓한 텃밭에서 계절별 푸성귀와 허브 등 다양한 채소를 기르고 있다. 지난해 봄, 마을 사람들과 함께 진달래 화전을 만든 뒤 텃밭에 모여 우쿨렐레 공연을 즐기고 있는 모습. 이보라씨 제공.

도시농부들은 본격적인 농사를 짓거나 작은 텃밭을 가꾸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귀농이나 전업 농부의 길을 택하지 않더라도, 도시에서 자급자족과 순환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신효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 jinnytr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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