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마다 김장 날이면 온 가족이 어머니 댁에 모여 김치를 담급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늘 마지막에 김치 한 통을 따로 싸서 베란다 구석에 두셨습니다.누구 몫이냐고 여쭤봐도 어머니는 웃기만 하셨습니다. 올해 그 한 통의 주인을 알게 되고 나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해마다 따로 싸 두던 김치 한 통
어머니는 김장이 끝나면 가장 잘 익을 만한 배추로 한 통을 따로 채우셨습니다. 뚜껑 위에는 늘 이름 없는 작은 메모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자식들 몫은 넉넉히 나눠 주시면서도 그 통만큼은 손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형제들끼리 누구 것인지 궁금해하며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끝내 대답을 미루셨습니다.

한밤중에 집을 나선 어머니
올해는 김장을 마치고 하룻밤 어머니 댁에서 자게 되었습니다. 늦은 밤 현관문 소리에 나가 보니 어머니가 그 김치통을 들고 나서고 계셨습니다. 조용히 뒤따라가 보니 어머니는 아랫집 현관 앞에 통을 내려놓으셨습니다. 그 집에는 몇 해 전 남편을 보내고 홀로 지내시는 할머니가 사셨습니다. 어머니는 초인종도 누르지 않고 발소리를 죽여 돌아오셨습니다.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
다음 날 아침 조심스럽게 여쭙자 어머니는 그제야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 김장을 못 하던 해가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아랫집 할머니가 말없이 김치 한 통을 문 앞에 두고 가셨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해마다 갚아 오신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의 김장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래된 고마움을 잊지 않고 갚아 가는 마음은 그 무엇보다 단단한 인연을 만듭니다. 부모님이 묵묵히 이어 오신 정은 자식에게도 큰 가르침으로 남습니다.올해 김장 때는 부모님께 그동안 고마웠던 이웃 이야기를 한번 여쭤보시면 어떨까요. 그 이야기 속에서 부모님이 살아오신 시간을 새롭게 만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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