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 SM7은 한때 국산 대형 세단의 자존심으로 불렸지만, 단종 소식은 한국 자동차 시장 변화의 상징이 됐다. 2004년 1세대 출시 이후 10여 년간 꾸준히 존재감을 유지했으나, 2010년대 후반부터 세단 수요가 급격히 줄며 경쟁력을 잃어갔다. 그 공백을 SUV가 빠르게 채우면서, 대형 세단의 ‘승차감’과 ‘정숙성’만으로는 소비자를 붙잡기 힘든 시대가 열렸다.

특히 SUV 판매 비중은 불과 몇 년 만에 60%를 넘기며 시장 판도를 완전히 뒤집었다. 가족 단위 레저 활동 증가, 높은 시야, 넓은 적재공간 등 SUV의 장점이 세단의 매력을 압도했다. SM7은 이런 변화 속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었고, 대형 세단의 전통적인 가치만으로는 시장에 남기 어려웠다.

르노코리아 입장에서도 SM7은 부담스러운 카드였다. 판매량 대비 개발·유지 비용이 높은 대형 세단은 수익성이 떨어졌다. 여기에 글로벌 본사 르노그룹이 탈리스만 단종을 결정하는 등 세단 라인업을 축소하면서, 부산공장은 XM3·QM6·캡처 같은 SUV와 향후 전기차 생산 준비에 집중하게 됐다. SM7은 자연스럽게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국내 경쟁 환경도 SM7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현대 그랜저와 기아 K8은 주기적인 풀체인지와 상품성 강화로 시장을 주도했지만, SM7은 부분변경에 머물렀다. 소비자들의 선택지가 줄어든 가운데 판매량은 연간 수천 대 수준으로 급락했고, 브랜드 인지도 역시 약화됐다.

향후 SM7의 부활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다. SUV와 크로스오버가 대형 세단 시장까지 잠식했고, 르노그룹의 세단 전략은 이미 축소됐다. 르노코리아의 투자 방향도 SUV와 전동화에 집중되고 있어 내연기관 기반의 SM7 후속은 거의 불가능하다. 다만 전기차 기술이 성숙하고 대형 전기 세단 수요가 늘어난다면, ‘SM7 EV’나 전혀 다른 이름의 글로벌 플랫폼 기반 플래그십 전기차로 재탄생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결국 SM7의 단종은 한 시대의 끝을 알리는 사건이다. 소비자 취향, 글로벌 전략, 제조사 자원 배분이 SUV로 쏠린 지금, 전통적인 대형 세단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어렵다. 르노코리아가 SM7의 빈자리를 채울 방법은, 세단이 아닌 플래그십 SUV나 전기차로 브랜드의 새 이미지를 구축하는 길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