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국경 영구 봉쇄, 요새화”…‘대남 차단벽’ 쌓는 김정은의 무도한 도박
(시사저널=이영종 뉴스핌 통일전문기자)
북한이 군사분계선(MDL) 인접 지역에서 남북 간 철도·도로를 차단하고 방벽을 쌓는 작업에 전격 착수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0월9일 군 총참모부가 나서 "견고한 방어 축성물들로 요새화하는 공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곧바로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폭파 작업과 구조물 구축에 들어간 것으로 우리 군 당국은 대북 감시 장비를 통해 파악하고 있다.
이 같은 북한의 전례 없는 행태로 인해 동서부 휴전선 비무장지대 일대에서 일촉즉발의 긴장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대선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으로 어수선한 틈을 노려 한반도 정세를 뒤흔들려는 김정은의 의도와 향후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북한 군부가 대남 차단벽을 치고 나선 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2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적대'로 규정하고 한국을 '제1의 주적'으로 규정한 데 따른 후속조치로 판단된다. 올 1월에는 김정은이 시정연설에서 대한민국 헌법 3조의 영토 조항에 자극받은 듯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권행사 영역을 합법적으로 정확히 규정짓기 위한 법률적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南 연결 도로·철도 끊고 도발 준비 나서
당시 김 위원장은 "공화국 헌법이 개정돼야 하며 다음번 최고인민회의에서 심의돼야 한다"고 구체적인 주문을 했다. 그런데 지난 7~8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1차 회의 결과를 전한 북한 관영 선전매체들의 보도문에는 영토 조항 개헌이 빠졌다.
이를 두고 정부 당국과 전문가 그룹에서는 북한이 영토 조항을 헌법에 신설하고도 사안의 민감성 때문에 공개하지 않았거나, 아예 이번 회의에서 다루지 못했을 가능성을 두고 관측이 엇갈리고 있다.
다만 김정은이 최고인민회의에 불참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개헌이 성사되지 못했을 것이란 쪽에 무게가 실리는 기류다. 자신이 직접 지시한 영토 조항이 다뤄졌다면 최고인민회의 석상에 등장해 관련 조치를 주도하는 듯한 연설을 했을 것이란 측면에서다.
이 때문에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무시한 새 해상 경계선 획정의 어려움 △남북한을 '국가 대 국가'로 주장하면서 한반도 전체를 북한 영토라고 주장하는 모순점 △'통일'이나 '민족' 등의 단어를 헌법에서 빼는 문제 등에서 해법을 찾지 못한 것이란 진단이 나온다.
북한 군부의 철도·도로 차단물 구축은 최고인민회의 결과 발표 몇 시간 후 나왔다. 영토 조항 불발에 쏠린 관심을 돌리면서 남북 적대관계를 상징적·실질적으로 보여주는 카드를 들고 총참모부가 전면에 나선 모양새다.
대남 대립각 세우기의 정점이라 여겼을 헌법 영토 조항 신설에 이상기류가 감지되면서 향후 김정은이 어떤 도발 행보를 보일지에 대북 부처와 군 당국자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7월말 압록강변 홍수 수습에 나선 이후 김정은이 공개활동의 상당 부분을 대남 타격용 방사포(MLRS·다연장로켓)와 신형 무기 생산, 특수전 부대 훈련 참관 등에 할애했다는 점에서다. 가을 시즌에 맞춰 준비한 모종의 도발 시나리오가 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현무-5 등장에 김정은 상당한 충격"
특히 김정은과 북한 핵심 지도부는 국군의날 76주년 행사에서 현무-5 지대지 탄도미사일이 전격 공개되고, 윤석열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북한이 핵무기 사용을 기도한다면 그날이 바로 북한 정권 종말의 날"이라고 경고한 점에 반발하며 매우 격앙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온전치 못한 사람" 등 거친 언사로 비난했고, 여동생인 김여정까지 나서 "핵보유국 앞에서 졸망스런 처사"라고 비방을 펼쳤다.
대북 정보 관계자는 "탄두 무게 8톤에 지하 100m 지하벙커까지 파고들어 적 지휘부를 궤멸시키는 현무-5 등장에 김정은과 평양 핵심층이 상당히 충격을 받은 분위기"라며 관련 첩보가 있음을 암시했다. 북한이 감정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도 이런 맥락에서 제기된다.
체제 내부 사정이 녹록지 않은 점도 김정은의 고민거리다. 무엇보다 식량난 등 경제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 지원으로 러시아에 기대를 걸었지만 돌파구를 열지 못했다. 교역의 80~90%를 중국에 의존하는 북한이 비중 1% 미만인 러시아와의 경제 교류로 막힌 문제를 푼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외교관 등 고위층의 체제 이반이나 서울을 향한 탈북·망명이 잇따르고 있고, 젊은 층은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요 등에 빠져 있다. 주민들에게 세습독재의 문제를 알리고 외부 정보를 유입하겠다며 대북 전단과 전방 확성기 방송이 이어지지만 북한으로서는 쓰레기 풍선을 날리는 무기력한 대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김정은의 대남 차단 조치는 이대로 가다가는 한류 문화에 체제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의 반영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북한은 대선 이후 미국과의 대화 재개와 핵 협상을 통해 핵보유국 인정에 버금가는 '선물'을 챙길 수 있는 방도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노골적인 대미 비난을 자제하며 한국 때리기에 치중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7차 핵실험 등 극단적인 도발 가능성도 우리 정부는 제기하고 있지만, 미국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는 점에서 제약이 따른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일단 차단벽 공사를 빌미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충돌 유도 등으로 한미 대응 기류를 탐색하려 할 공산이 크다. 서해 NLL 지역을 분쟁 수역화하려는 해상 도발의 가능성도 있다. 또 쓰레기 풍선을 집중적이고 지속적으로 보내며 남한 내부의 갈등을 유발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북한의 도발 행보에 어떻게 대응하고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를 관리할지는 윤석열 정부의 몫이다. 북한의 도발에는 철저히 대비하고 응징해야 하겠지만 미 대선 이후 북·미 대화나 새로 출범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 체제에서의 북·일 협상 재개 가능성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
한미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압박 속에서도 평양 정권의 후견 역할을 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산소호흡기와 같은 존재다. 상대적으로 소원해진 북·중 관계에도 중국의 대북 영향력은 견고한 상황이다. 이런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외교적 지략을 발휘해야 하는 건 쉽지 않은 문제지만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갈수록 무모해지는 듯한 김정은의 도박이 자칫 큰 재앙으로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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