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탄압받았잖아" 이 말, 실제론…내가 낸 세금으로 키웠다?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으로 해외 번역 등 K-문학의 세계 진출을 위한 지원을 늘려야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세계 문학계의 시선이 K-문학으로 향한 지금, 다른 좋은 작품들도 세계에 소개해야 한단 것이다.
이를 위해선 민간의 노력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정부의 지원책이 필요하다는 게 문학계의 요구다. K-문학의 해외 번역·출판 예산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일단 내년 예산안에 관련 예산을 증액 시켜 국회에 넘긴 상태다.
야당 일각에서 이번달 국정감사 시즌 중 노벨상 소식이 전해지자, 번역출판예산이 윤석열 정부에서 줄어든 것처럼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과 달리 오히려 이번 정부에서는 번역출판예산이 늘었다.
번역출판 지원액은 문재인 정부인 2020년에서 2022년까지는 18억4300만원으로 동결됐었다. 오히려 윤석열 정부 출범(2022년 6월) 이후인 2023년 21억2300만원으로 번역문학상 예산이 포함되며 소폭 늘었고, 다음해엔 번역단가를 올려주면서 다시 2024년 기준 23억2000만원이 됐다. 번역원에 따르면 내년 예산안이 31억2000만원으로 올해 대비 8억원이 늘어난 건 각국 언어 등 번역공모 수요가 늘어난 점이 반영된 것이다.
번역출판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내년 예산을 8억원이나 이미 올려 잡았지만 아직 국회 통과 전이고 의석수 과반이상을 차지하는 야당이 번역 예산을 크게 늘려주면 '포스트 한강'을 키울 번역출판 지원 사업이 더 활성화될 것"이라며 "나라가 세금쓰는 일에 가장 신경써야 할 곳이 국회이고 최종 결정 권한을 갖고 있는 곳도 국회인데 이런 노벨상 같은 경사가 있을 때 크게 생색이라도 내면서 예산을 확 늘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강을 두고 '블랙리스트 피해'를 운운하며 마치 정부의 탄압을 받은 작가처럼 묘사하는 이들도 있지만, 실제론 정부 예산이 지원되는 다양한 문학지원 사업의 혜택을 직간접적으로 받았다.
오히려 대통령 탄핵과 결부돼 '블랙리스트 의혹'사건이 불거졌던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1인당 가장 예산이 많이 드는 지원사업인 '해외 레지던시' 대상자에 선정돼 폴란드에 머물며 작품을 쓰기도 했다.
한강은 문체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가 발간을 지원하는 '문학과 사회'로 1993년 등단했다. 이후 1998년 예술위가 지원하는 미국 아이오와대학교 국제창작프로그램(IWP)에 참가했었다. 아이오와대 IWP는 1967년부터 시인·소설·극작가 등 문인들을 위해 운영하는 것으로 전 세계에서 뽑힌 30여 명의 작가들을 대학 내 아이오와 하우스 호텔에서 함께 지내며 집필하고 교류할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이다.
각 나라에서 온 문인들과 강연, 세미나, 낭독회, 토론회 등 문화교류 기회도 많아 젊은 작가들에게 큰 혜택이 된다. 20대 후반에 IWP에 참가할 수 있었던 한강도 이때의 경험에 대해 "한국을 대표한다는 느낌보다는 문학을 하는 이들의 공통점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교류의 기회였다"고 회고한 바 있다. 1998년은 IMF 시기였음에도 한강의 IWP 참가에 1000만원이 지원됐다.
한강은 2000년에도 예술위 신진문학가 지원을 받았고, 2005년 예술창작지원사업으로 예산 1000만원을 지원받아 '몽고반점'을 냈고 이 작품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한강은 예술위가 문학인을 위해 운영하는 다양한 플랫폼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2005년부터 약 2년 동안 작가가 직접 만드는 라디오 방송인 '문장의 소리' DJ로도 활동했다. 2008년에는 3개월간 문학전문 웹진인 '문장웹진' 편집위원으로 참여했다.
특히 소설 '흰'을 집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 '2014 폴란드 바르샤바대학교 레지던시' 참여도 박근혜 정부 시절의 예술위 사업이었다. 약 1600만원이 지원됐고, 한강은 현지에 4개월간 머물며 소설 구상과 쓰기에 전념할 수 있었다. '흰'은 65개의 짧은 이야기로 구성된 소설로 한강이 폴란드에서 머물며 깊은 사유를 거쳐 옮긴 자전적 얘기를 담아 2016년 출간했다. 바르샤바 레지던시 생활에 대해 그는 "낯선 곳에서 가을과 겨울을 보내며 밤마다 '흰'을 조금씩 써간 시간이 참 좋았다"고 최근 인터뷰에서도 밝힌 바 있다.
'작가 레지던시'는 특히 창작에 중요한 도움을 주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어 창작자들에겐 선호되는 혜택이다. 여러 나라의 호텔을 돌며 집필하며 명작을 남긴 것으로 잘 알려진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사례와 같이 집중을 요하는 작업을 위해 집이 아닌 공간에서 머무는 것을 선호하는 작가들이 많다.
문체부 산하 번역원의 번역출판지원 사업을 제외하더라도 한강은 예술위를 통한 발간지원과 해외교류 그리고 레지던시 참가지원 등 총 18건, 7700만원의 지원을 받았다.
다른 분야에선 이 금액이 작아 보일 수 있지만, 문학·출판계는 수백만원의 지원 예산도 크게 쓰일 정도로 예산 규모단위가 작다. 비평지 원고료로 원고지 1매당 몇천원을 올려주느냐 마느냐를 놓고도 격론이 벌어지는게 문학·출판계다.
앞서 문체부는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이 전해지자, 한국문학을 전 세계에 더욱 널리 알리기 위한 지원을 이어간다고 밝힌 바 있다. 문체부는 "작가들에게 안정적인 집필 환경을 제공하고자 문학시설 상주작가 사업과 작가 집필공간 지원사업을 계속 추진하고 문학나눔 도서 보급 사업을 확대한다"며 "우수 한국문학 작품을 소개하고 이를 조명하는 비평 활성화 사업도 새롭게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11일 '책의 날' 기념행사 인사말을 통해 "내년 예산을 세우면서 일단은 올해보다는 30억원 정도 더해서 독서진흥, 지역서점 지원 등 몇가지 문학계 문제들은 대부분 예산에 반영시켰다"고 설명한 뒤 "이번 수상을 계기로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의 중심으로 인식되고 있는 만큼 문학 작가들이 마음 놓고 창작하고, 한국문학이 해외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을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 지원하겠다"라고 밝혔다.
유동주 기자 lawmak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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