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보수주의의 형식

기자 2025. 3. 5.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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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단어 뜻대로라면 전통적인 가치와 사회의 질서를 수호하려는 정치사상을 의미하지만, 역사적으로는 조금 더 복잡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영국 언론인 에드먼드 포셋은 <보수주의>에서 근대 이후 서구 보수주의가 생존해온 맥락을 이렇게 정리한다. 19세기 초 자유로운 시장과 유연한 노동을 지지했던 자유주의자들과 달리 보수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흐름에 반대하면서 폐쇄된 시장과 안정적인 질서를 지키고자 했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보수주의자들은 법, 종교, 군사를 관할하는 단체의 지원을 얻어내면서 선거에서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자본주의의 가치를 옹호, 대변하는 집단이 됐다. 요컨대 보수주의는 특정한 이념을 고수하기보다는 시대마다 새로운 가치와 충돌하거나 결합하면서 세력을 유지해왔다.

이 책의 중요한 가설은 보수주의에 의외로 뚜렷한 원칙이 없다는 것이다. 평등이나 자유와 같은 보편적인 원칙에 의지하는 자유주의와 달리 보수주의는 추구하는 목표나 이상을 명확하게 설정하지 않는다. 대신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된다. 그리고 이를 위한 논리적인 사상이 아니라 근사한 격언을 설파한다. 정치철학자 앤서니 퀸턴의 비유대로 이것은 운전자 교본 같은 것이다. “버스가 좁고 구부러진 도로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라.” 그런데 좁고 구부러진 도로가 뭐지? 버스는 무엇을 의미하나? 어떻게 해야 운전자가 까다로운 도로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생략한다는 것이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권위다. 보수주의는 질서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와 비슷한 구석이 있지만, 질서를 정당화하는 권위를 이해하는 시각은 다르다. 자유주의가 권위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의문에 부친다면(“내가 왜 국가에 복종해야 하는가? 왜 세금을 내야 하는가?”), 보수주의는 일단 권위가 세워지면 당연히 따라야 한다고 여긴다. 권위에 따라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권위이기 때문이라는 동어반복의 논리다. 역사학자 루돌프 피어하우스의 말을 빌리자면 이때 권위는 ‘할 것이다’(의지)나 ‘해야 한다’(당위)가 아니라 ‘이다’(진리)라는 어미로 구축된다. 어떤 원칙이 진실이기 때문이 아니라 권위로부터 나왔거나 권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추구한다면, 그 원칙은 사실상 없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온건해야 할 것 같은 보수주의가 때로는 과격한 급진주의처럼 보이는 현상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생존에 압박을 받을 때 보수주의는 법, 관습, 대중에 맞서면서 급진적으로 반응한다. 법원에서 폭동을 일으키며 국가 질서에 반하거나, 음모론을 퍼뜨리며 사회적 신뢰를 흔드는 모습이 그렇다. 아니, 그 이전에 12월3일 선포된 계엄령이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는 논리가 더 정확히 그렇다. 질서를 지키겠다면서 오히려 기존 합의를 무너뜨리고 폭력을 동원하는 것은 원칙의 정당성보다 권위의 지속을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기기 때문이다.

계엄의 형식? 그러나 형식이란 투명한 그릇이 아니라 권력이 얽혀 있는 촘촘한 그물망이다. 질서를 담아내는 고정된 틀이 아니라 질서를 변화시키는 역동적인 힘이다. 자체로 현실을 재구성하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국민에게 국가 위기를 호소하기 위해 계엄의 형식을 빌려야 한다면, 다양한 가치를 보장하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형식을 만들어야 할까. 형식이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권위를 재배열하는 힘이라면 우리에겐 어떤 형식이 필요할까. 이 질문은 그 자체로 정치적 과제가 된다.

인아영 문학평론가

인아영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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