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즌 마치는 인사까지 했는데”
또 챔피언에 등극했다. 다저스의 왕조가 밝았다.
역대로 가장 흥미진진한 월드시리즈였다. 주연은 단연 야마모토 요시노부(27)였다. 4승 중 3승이 그의 손에서 이뤄졌다. 시리즈 MVP는 당연히 그의 차지다.
경기 후 인터뷰다.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기자 “피로도가 어느 정도인가?”
야마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다. 완전히 탈진한 상태다.”
기자 “오늘 등판은 예정이 됐었나?”
야마 “아니다. 어제(6차전) 던지고 나서, ‘올해는 내 일이 다 끝났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야다 선생께 인사도 드렸다. ‘1년간 감사했습니다’라고.”
기자 “그런데 어떻게?”
야마 “그랬더니 야다 선생께서 ‘내일 불펜에서 던질 수 있을 정도로만 몸을 만들어보자’라고 하시더라. 무슨 말씀인가 했더니, ‘불펜에 있기만 해도 팀원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라는 뜻이었다.”
기자 “실제 투입은 아니고 그냥 몸만 푸는 정도를 말하나?”
야마 “그렇다. 던질 계획은 전혀 없었다. 그랬는데, 오늘 경기장 나오기 전에 호텔에서 치료받으며 ‘이런 식으로 움직여 봐라’ 하셔서, 몸을 놀려보니 감각이 괜찮기는 하더라.”
기자 “불펜에서 실제로 공을 던져보고 결정한 것인가?”
야마 “맞다. 야다 선생이 공 던지는 걸 보시더니 ‘좋은데, 힘을 빼니까 더 괜찮은 공이 나오고 있어’라며 격려해 주시더라. 그리고는 정신 차려보니까 마운드 위에 올라가 있더라. (웃음)”

신비한 도인 느낌의 스승
여기서 등장하는 이름이 있다. ‘야다 선생’이라는 인물이다. 풀네임 야다 오사무(矢田修), 올해 67세다.
다저스의 정식 스태프다. 직함은 경기력 강화 부문의 자문역(Performance Consultants)이다. 작년 초에 사인했다. 기간이나 급여는 알려진 게 없다. 다만 야마모토의 개인 스태프라는 짐작은 가능하다.
‘야다 선생’의 이력이 독특하다. 오사카 인근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된 접골원을 운영한다. 어긋나거나 손상된 뼈를 치료하는 곳이다.
또 ‘키네틱(라틴어 Kinetic, 움직임) 포럼’이라는 조직도 이끈다. 운동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고, 회복하는 모임인 것 같다. 동양적인 대체의학의 일종으로 보인다.
추구하는 가르침도 인상적이다. 홈 페이지에 이런 문구가 걸렸다.
‘세상은 꿈인가, 생시인가, 환상인가 / 꿈에서 깨어난다→넘어간다 / 꿈속으로 빠진다→깊이를 찾다 / 나는 이노우에 요스이의 (대중가요) '꿈속으로'를 무척 좋아합니다 / 현실을 받아들이고, 함께 꿈을 쫓아갑시다.’
얼핏 야릇한 느낌이 드는 스승이다. 야구 관련 이력은 없는 것 같다. 공을 던지는 법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다. 그냥 도인의 느낌이다.
경기장에서도 신비롭다. 제자의 묘사다.
“평소에는 어디 계신 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런데 내가 불펜에만 들어가면, 어느 틈에 옆에 나타난다. 신기할 정도로 정확하다. 그리고 동작을 살피면서, 자세한 조언을 해 주신다.”

“150㎞짜리 포크볼을 던지고 싶습니다”
9년 전이다. 까까머리 고교생이 접골원을 찾았다. 원장 선생 앞에 당돌하게 나선다.
까까머리 “이제 프로야구 선수가 되려고 합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원장 “그래? 뭘 하고 싶은데?”
까까머리 “시속 150㎞짜리 포크볼을 던지는 투수가 되고 싶습니다.”
원장은 빙긋이 웃는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지금도 투수로는 작은 체격(178cm, 80kg)이다. 그때는 더 마르고 왜소했다. 한마디로 실현 가능성이 없는 얘기다.
안 된다고 거절했다. “고향으로 돌아가거라. 고기나 잡으면 딱 좋을 몸이구만.” 그러면서 매정하게 돌아 앉는다. 하지만 그래도 버틴다. 결국 다짐을 받는다. “시키는 건 뭐든지 하겠습니다.”
그날이 시작이다. 상식을 벗어난 하루하루가 이어진다. 이건 야구 선수의 훈련이 아니다. 수련 혹은 단련으로 불러야 맞다.
일체의 웨이트 트레이닝은 금지된다. 쓸데없는 근육은 방해만 된다는 지론이다. 야구공도 뺏긴다. 대신 요가 매트, 고무줄, 장난감 창(槍, javelin) 같은 걸 가지고 다닌다.
하루 종일 고무줄을 당긴다. 물구나무를 서고, 한 손으로 팔 굽혀 펴기도 한다. 레슬링 선수처럼 백 스프링 자세로 한 바퀴 빙그르르 돌기도 한다. 공 대신 애꿎은 장난감 창만 던진다.
이제 갓 입단한 고졸 신입(드래프트 4번 지명)이다. 그러고 있으니 코치들이 혀를 찬다. ‘도대체 뭐 하는 짓이냐’라며 눈을 부라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의 방법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다.
급기야 투구폼도 바꾼다. 일본 특유의 다리 드는 동작을 없앴다. 그냥 쭉 뻗으며 내딛는다. ‘그런 자세로 체중이동이 제대로 되겠냐’라며 혼쭐이 난다. 하지만 소 귀에 경 읽기다. 황소처럼 질긴 고집이다.

다저스의 사설 교습소 출신들
이번 가을 일찍이 주목받은 다저스의 스태프가 있다. 롭 힐이라는 이름이다. 직함은 피칭 디렉터다.
그는 사사키 로키를 살려낸 주인공이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이렇게 소개한다.
“(사사키) 로키는 재활 기간 동안 애리조나에 있는 구단 시설에서 상당히 효과적인 세션을 가졌다. 그 과정에서 볼의 스피드가 예전에 가까운 수준으로 돌아왔다. 롭(힐)과의 작업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유명한 드라이브라인 베이스볼(DBㆍDriveline Baseball) 출신이다. 여기서 클레이튼 커쇼의 교정 작업을 도왔다(2019년) 그러면서 다저스의 눈에 띄었다. 나이가 23세(현재 29세) 때다. (아직도 겸직 상태로 알려졌다.)
레슨 방식이 현대적이다. 트랙맨 데이터를 적극 활용한다. 이를 통해 수정/교정 작업이 이뤄진다. 여기에 소통 능력이 뛰어나다. 사사키 로키의 회복도 그런 효험 덕이다.
롭 힐만이 아니다. 그런 인물이 더 있다. 로버트 반 스코요크(38)라는 타격 코치도 그중 한 명이다. 그 역시 사설 교습소(?) 출신이다. 재야의 고수로 알려진 덕 래타가 운영하는 볼 야드(BallYard)에서 일했다.
대표적인 수강생이 저스틴 터너다. 별 볼일 없는 타자라고 방출됐다. 구직 기간 중에 여기서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다저스에 입단해, ‘터너 타임’의 신화를 이뤘다. 스코요크는 2019년에 다저스로 이직했다.
그러니까 우리로 치면 ‘야구 아카데미’ 출신들이다. 이들은 흔히 말하는 엘리트와 거리가 멀다. 메이저리그 근처에도 못 가본 인물들이다. 그런 인재들이 다저스를 구성한다.

그 정점에 있는 것이 ‘야다 선생’이다. 이제까지 MLB의 프런트 라인과는 180도 다르다.
나이 많은 동양인이다. 영어도 서툴다. 야구와 관련도 없고, 지도자 출신도 아니다. 현대식 교육을 이수한 트레이닝 파트의 전문가도 아니다.
그런 인물이 팀 운영에 참여한다. 선수 관리와 기용에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거기서 월드시리즈 MVP가 탄생했다. 그게 다저스라는 조직의 힘이다.
야마모토의 7차전 마지막 투구다. 알레한드로 커크를 유격수 병살타로 유도한 공이다. 92.1마일(148.2㎞)짜리 스플리터였다.
“150㎞짜리 포크볼을 던지고 싶다”라던 까까머리의 9년 전 꿈이 이뤄진 것이다. 최고의 무대, 최고의 순간에.
(스플리터와 포크볼이 완전히 같은 구질은 아니다. 다만 비슷한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