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장일치 신인왕’ 박재홍 이전에 윤석환이 있었다…3호는 김택연?

[베팬알기] ⑭역대 만장일치 신인왕과 MVP 이야기

KBO 역대 만장일치 신인왕을 차지한 OB 윤석환(1984년)과 현대 박재홍(1996년) 그리고 2004년 강력한 신인왕 후보 두산 김택연(왼쪽부터). ⓒ두산베어스, KBO
『한화 구대성과 박재홍이 96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 최우수선수(MVP)와 신인왕에 각각 선정됐다.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신인왕, MVP 동시 석권을 노렸던 박재홍은 11표 차로 MVP를 놓쳤으나 신인왕 투표 14회 만에 처음으로 만장일치로 신인왕에 뽑혔다. 유효표 65표를 모두 받았다.』 <1996년 9월 25일자 경향신문>

이 기사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지점이 있다. 1996년 박재홍이 ‘처음으로 만장일치’로 신인왕에 뽑혔다고 설명한 부분이다.

최근 기사에서도 역대 신인왕 중 ‘만장일치’로 선정된 주인공은 박재홍이 ‘유일’하다고 알려주는 사례가 자주 나온다. 팬들은 물론 야구 관계자 중에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KBO 신인왕 투표 역사에서 최초로 만장일치 신인왕에 오른 주인공은 1996년의 박재홍이 아니다. 1984년의 윤석환이 원조다. 그러니까 역사적으로 2명이 존재한다.

올해 두산 베어스의 루키 김택연이 만장일치 신인왕에 오를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역대 3호 주인공이 탄생한다.

[베팬알기-베어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기록 이야기] 이번 편은 KBO 역대 만장일치 신인왕과 만장일치 MVP에 관한 이야기다.

1984년 OB 베어스 윤석환은 구원왕에 오르면서 KBO 최초 만장일치 신인왕을 차지했다. ⓒ두산베어스

◆ 1984년 ‘KBO 최초’ 만장일치 신인왕 윤석환

1996년 박재홍이 KBO 최초이자 유일한 ‘만장일치 신인왕’이 아니라는 사실은 다음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84년 전문의 기사와 같은 경향신문의 기사다.

『최동원이 타격 3관왕 이만수를 제치고 대망의 84년도 최우수선수(MVP) 자리를 차지했다. 9일 야구기자단 투표 결과 최동원은 70점을 얻어 64점으로 접근한 이만수를 따돌리고 MVP에 올라 부상으로 승용차 1대를 받았다. 이날 투표는 1위표 10점, 2위표 5점, 3위표 2점을 배당하는 지난해와 같은 방식을 적용했는데 최동원은 1위표 6개, 이만수는 4개를 각각 얻어 승부가 갈렸다.

최우수신인상은 12승8패25세이브를 기록한 OB 베어스 구원전문투수 윤석환이 110점을 얻어 만장일치로 결정됐다. 한편 한국시리즈 MVP로는 7차전에서 결승 3점홈런을 날린 유두열이 투표결과 최동원(한국시리즈 4승)을 6-5로 누르고 영광을 안았다.』 <1984년 10월 10일자 경향신문>

여기서 먼저 알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KBO MVP와 신인왕 투표의 변천사다. 1982년부터 1995년까지는 투표를 통해 점수제(득점제)로 MVP와 신인왕을 뽑았다.

위 기사에서 보듯 1984년 투표권을 가진 언론사 기자단의 유효투표수는 총 11개에 불과했다. 프로야구를 전문적으로 커버하는 언론사와 야구 전문기자가 그만큼 적었다는 의미다. 지난해 한화 문동주가 신인왕에 선정될 때 유효투표수가 111표였다는 점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1984년 당시 1위표에는 10점, 2위 표에는 5점, 3위표에는 2점을 부여했는데, 1984년 신인왕 투표 결과 OB 베어스 루키 윤석환이 110점을 얻었다. 다시 말하자면 1위표 11개를 싹쓸이했다.

그해 MBC 1루수 김상훈(훗날 ‘미스터 LG’로 성장한다)이 12점(2위), 롯데 외야수 조성옥(2009년 간암으로 별세)이 5점(3위)으로 뒤를 이었다.

KBO가 시상식 때 취재 기자들에게 제공하는 자료에 별도의 만장일치 설명 없이 1위, 2위, 3위 선수에게 점수만 표기해 놓다 보니 윤석환의 110점이 만장일치가 아닌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투표제도를 깊이 있게 들여다 보면 윤석환은 1위표를 전부 휩쓸었기 때문에 만장일치 신인왕이라고 해야 맞다.

그러니까 윤석환은 1995년까지 KBO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만장일치 신인왕’이었다. 1996년 ‘리틀 쿠바’ 박재홍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1980년대 OB 베어스 마운드를 책임진 윤석환이 시상식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두산베어스

◆ 1984년 신인왕 경쟁 어땠길래 만장일치?

KBO리그 출범 3년째인 1984년, 굵직한 선수들이 대거 프로에 들어왔다. OB 베어스에는 윤석환(선린상고-성균관대)을 비롯해 투수 김진욱(북일고-동아대, 훗날 두산 베어스 감독이 되는 인물), 외야수 김광림(공주고-고려대) 등이 1차지명을 받고 입단했고, 재일교포 투수 최일언도 가세했다.

MBC 청룡에도 1루수 김상훈(동대문상고-동아대)을 필두로 투수 김봉근(상문고-동국대), 내야수 김경표(신일고-한양대) 등이 들어왔고, 삼성에는 내야수 김성래(경북고-연세대), 투수 진동한(경북고-고려대) 등이 입단하면서 전력이 강화됐다.

롯데에서는 ‘자갈치’ 1루수 김민호(부산고-동국대), 훗날 ‘고독한 황태자’가 되는 우투수 윤학길(부산상고-연세대)과 좌투수 이문한(경남상고-동국대)이 주목을 받았고, 삼미에서는 투수 최계훈(인천고-인하대)이 눈에 띄었다. 해태에는 아마추어 무대의 거포 김윤환(광주일고-고려대)과 당시로선 흔치 않은 고졸 투수 문희수(광주일고)가 입단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이들 중 1984년 페넌트레이스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신인 선수는 단연 윤석환이었다. KBO 최초 전문 마무리투수로 자리 잡아 무려 57경기(선발 4경기)에 등판했다. 당시 규정이닝(100)을 훨씬 뛰어넘는 146이닝을 던져 10구원승 포함 12승8패, 25세이브, 평균자책점 2.84의 성적을 올렸다. 당시엔 구원왕을 세이브포인트(구원승+세이브)로 가렸는데, 윤석환은 35세이브포인트를 기록했다.

윤석환 외에 신인왕 후보에 오른 MBC 김상훈은 팀의 100경기 중 87경기에 출장해 홈런 없이 타율 0.271, 31타점을 올리며 가능성을 보여줬다. 롯데 조성옥은 75경기에 나서서 타율 0.218에 1홈런 1타점을 기록했다.

누가 봐도 윤석환의 퍼포먼스를 따라잡을 신인왕 후보는 없었다. 윤석환이 역대 1호 만장일치 신인왕을 차지한 데 대해 이견이 없었다.

1996년 KBO 역대 2호 만장일치 신인왕에 오른 박재홍. 2022년 KBO 40주년 기념 '레전드 40'에 선정될 만큼 전설적인 활약을 펼쳤다. ⓒKBO

◆1996년 ‘KBO 2호’ 만장일치 신인왕 박재홍

1996년엔 KBO MVP와 신인왕 투표제도에 변화가 찾아왔다. 1982년부터 1995년까지는 점수제로 주인공을 가렸으나 이때부터 득표제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득표제는 1위에게만 표를 주는 승자독식의 방식. 2위 이하에는 투표하지 않는다.

‘호타준족’의 박재홍은 126경기에 출장해 타율 0.295, 30홈런, 36도루, 108타점을 올리면서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 특히 KBO 최초 30홈런-30도루 클럽을 개설하면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신인왕 후보에 오른 다른 선수들도 루키답지 않은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박재홍에 견주기 어려웠다. 2위~4위에 차등 점수를 주는 득점제였으면 다른 후보도 일정 수준의 점수는 얻었겠지만, 1위에게만 투표하는 득표제로 전환한 상황. 박재홍은 유효투수 65표를 싹쓸이하면서 역사상 두 번째 만장일치 신인왕에 올랐다.

해태 투수 김상진, 한화 외야수 송지만, 삼성 투수 최재호가 대항마로 나섰지만 모두 0점에 그쳤다.

김상진(위암으로 1999년 6월 별세)은 9승5패, 평균자책점 4.29를 찍으면서 고졸 신인투수로서 팀 마운드에 큰 힘을 보탰지만 1표도 얻지 못했다. 최재호도 9승5패 5세이브, 평균자책점 4.84를 기록했지만 표심을 흔들지 못했다. 송지만은 타율 0.287, 18홈런, 53타점으로 될 성 부른 떡잎처럼 보였지만 역시 투표인단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박재홍은 그해 신인상뿐 아니라 MVP를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성적이었다. 하지만 한화 구대성이 같은 해 미친 활약을 펼쳤다. 18승3패, 40세이브포인트(16구원승+24세이브), 평균자책점 1.88, 승률 0.857. KBO 최초로 투수 4관왕(다승, 평균자책점, 구원, 승률)을 차지했다.

결국 MVP 투표에서 구대성이 30표를 얻고, 박재홍이 19표를 획득해 운명이 갈렸다. 박재홍으로서는 1984년 윤석환에 이어 KBO 역대 두 번째 만장일치 신인왕에 만족해야 했다.

1982년 박철순은 KBO 최초이자 유일한 만장일치 MVP 사례로 남아있다. ⓒ두산베어스

◆만장일치 MVP는? 1982년 박철순이 유일한 사례

페넌트레이스 최우수선수(MVP)는 어떨까. 만장일치 MVP는 1982년 박철순이 유일하다. 박철순은 원년에 22연승 신화와 함께 24승4패, 7세이브, 평균자책점 1.84, 승률 0.857을 기록하면서 다승, 평균자책점, 승률 3관왕에 올랐다. 타자 쪽에서 MBC 청룡 백인천이 4할 타율(0.412)을 올려 MVP 경쟁자가 될 수 있었지만 당시 감독 겸 선수인 백인천보다 원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박철순에게 표를 몰아주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 이후 만장일치가 될 만한 후보는 몇몇 있었다. 그러나 만장일치 MVP는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1999년 KBO 최초 50홈런 시대를 열며 54홈런을 기록한 삼성 이승엽은 1위표 77표를 얻었는데 그해 정민태(현대)가 2표, 마해영(롯데) 진필중(두산) 임창용(삼성)도 1표씩을 받아 만장일치에 이르지는 못했다.

56호 홈런으로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쏘아올린 2003년에도 81표를 얻었지만, 2위인 심정수(현대)가 13표로 뒤를 이었고, 현대 정민태(7표), SK 조웅천(1표) 등이 섞이면서 만장일치에 성공하지 못했다.

최근 사례로 보면 2022년 키움 히어로즈 이정후가 만장일치 MVP에 가장 가까이 갔다. 유효투표수 107표 중 104표(97.2%)를 얻었다. 그런데 롯데 이대호(2표)와 키움 안우진(1표)에게 표가 가면서 만장일치에 실패했다.

2024년 가장 강력한 신인왕 후보 두산 김택연이 역동적인 폼으로 투구를 펼치고 있다. ⓒ두산베어스

◆김택연, KBO 역대 3번째 만장일치 신인왕 가능? 불가능?

2024년 두산 베어스의 최대 수확이라면 인천고 출신의 김택연 영입이다. 2024 KBO 신인드래프트 전체 2순위로 뽑았는데 단숨에 KBO리그를 대표하는 특급 마무리투수로 도약했다.

60경기에 등판해 3승2패 19세이브 4홀드, 평균자책점 2.08을 기록했다. 시속 150㎞를 넘나드는 강력한 구위를 바탕으로 65이닝을 던져 78탈삼진을 기록할 정도로 타자를 압도했다.

특히 2006년 롯데 나승현(현 롯데 1군 매니저)이 작성한 16세이브를 18년 만에 깨뜨리면서 역대 고졸 신인 투수 최다 세이브 기록을 작성한 부분이 가산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다른 후보들을 보면 투수 중에 2021년 입단한 SSG 조병현(75경기 4승6패, 12세이브, 12홀드, ERA 3.58), 두산 선배인 3년생 최지강(55경기, 3승1패, 1세이브, 15홀드, ERA 3.24), KIA 2년생 좌완투수 곽도규(4승2패2세이브, 16홀드, ERA 3.56) 등이 후보에 올랐다.

타자는 SSG 내야수 정준재(88경기, 타율 0.307, 66안타, 1홈런, 23타점 16도루)와 황영묵(123경기, 타율 0.307, 105안타, 3홈런, 35타점, 4도루)이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객관적인 성적과 화제성을 놓고 볼 때 김택연이 2024년 신인왕을 차지하는 건 ‘떼논 당상’처럼 보인다.

문제는 과연 1984년 윤석환과 1996년 박재홍에 이어 역대 3번째 만장일치 신인왕을 수상할 수 있느냐다.

하지만 KBO리그 투표 제도와 환경을 놓고 볼 때 만장일치가 나오기는 쉽지 않다. KBO MVP와 신인상 투표에는 KBO리그를 커버하는 한국야구기자회 소속 기자들이 투표인단으로 참여하는데, 여기에는 각 지역 언론사 기자들도 포함된다.

그렇다 보니 만장일치가 예상되는 후보가 나오더라도 성적과는 별개로 특정 선수에게 애정이 담긴 소신(?) 투표를 하는 기자도 있다. 지역 언론사 기자 중 연고지역 선수에게 무조건적인 투표를 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메이저리그보다 만장일치가 어려운 이유다.

일례로 2006년 한화 류현진이 사상 최초로 신인왕과 MVP를 차지했지만 신인왕 투표에서 만장일치 달성에는 실패했다. 당시 유효투표수 92표 중 류현진이 82표를 받았는데, KIA 한기주가 8표, 현대 장원삼이 2표를 얻었다.

이런 환경을 놓고 보면 올해 김택연 역시 가장 유력한 신인왕 후보라고 해도 만장일치 신인왕의 역사를 쓰기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같은 이유로 가장 강력한 MVP 후보인 KIA 김도영 역시 1982년 박철순 이후 만장일치를 달성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만약 만장일치로 신인왕과 MVP가 탄생한다면 그것 자체만으로 KBO의 한 획을 긋는 역사가 만들어진다.

두산 투수 정철원이 2022년 신인왕에 오른 뒤 소감을 말하고 있다. 베어스는 역대 7번째 신인왕을 내놓으면서 최다 신인왕 배출 구단이 됐다. ⓒ두산베어스

◆ 신인왕 산실 베어스, 8번째 신인왕 배출할까

1983년부터 지난해까지 구단별 신인왕 배출을 보면 두산이 7명으로 가장 많다. 1983년 초대 신인왕을 차지한 박종훈부터 1984년 윤석환, 1999년 홍성흔, 2007년 임태훈, 2009년 이용찬, 2010년 양의지, 2023년 정철원이 베어스 유니폼을 입고 신인왕에 올랐다.

두산이 괜히 ‘신인왕의 산실’로 불리는 게 아니다. 특히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2020년대 신인왕을 모두 배출한 구단은 베어스가 유일하다. 김택연이 2024년 신인왕을 차지한다면 구단 역사상 8번째 신인왕이 된다.

두산의 뒤를 이어 LG 트윈스(MBC 청룡 포함)와 삼성 라이온즈가 6명으로 공동 2위에 올라 있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현대 유니콘스(삼미-청보-태평양 포함)도 6명의 신인왕을 내놓았다.

한화 이글스(빙그레 포함)는 4명, 히어로즈는 3명을 배출했다.

KIA 타이거즈(해태 포함)는 한국시리즈 최다 우승(12회)에 빛나는 구단이지만 신인왕만큼은 인연이 많지 않았다. 2명(1985년 이순철, 2021년 이의리)에 불과하다. 2010년대에 창단한 신생팀 NC와 kt도 2명씩의 신인왕을 내놓았다.

한편 롯데 자이언츠는 KBO 원년 멤버지만 신인왕은 1992년 염종석이 유일하다. 쌍방울 레이더스는 1991년 조규제를 유일한 신인왕으로 내놓은 뒤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SSG 랜더스는 전신 SK 와이번스 창단 첫해인 2000년 이승호 이후 신인왕과 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KBO 신인상(KBO 표창규정 제7조)

KBO 신인상이란 해당 연도의 KBO 정규시즌에서 신인선수로 출장하여 기능·정신 양면에서 가장 우수하여 타의 모범이 되는 선수에게 시상한다.

전 항의 신인선수란 KBO 소속구단의 선수로서 다음과 같은 누계 출장수를 초과하지 않은 자에 한한다.

▲5년 이내(당해 연도 제외) ▲투수는 30회(이닝) 이내(당해 연도 제외) ▲타자는 60타석 이내(당해 연도 제외) ▲단, 외국 프로야구 기구에 소속되었던 선수는 신인선수에서 제외된다.

한편 KBO는 한국야구기자회와 함께 2024 MVP와 신인상 후보를 사전에 선정해 지난달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 개최에 앞서 투표를 실시한 바 있다. 올해는 한국야구기자회 회원사와 각 지역 언론사 소속 취재기자 총 136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MVP와 신인왕 결과는 26일 롯데호텔월드(잠실)에서 개최되는 KBO 시상식을 통해 공개된다.

두산 베어스 고졸 루키 김택연은 지난 7월에 열린 올스타전에 초대될 정도로 KBO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로 자리 잡았다. 베어스 구단 역대 8번째 신인왕 탄생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두산베어스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 /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