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곳은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빌라인데 ‘출입금지’ 스티커가 붙은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하고 뭔가 싸~한 느낌. 전기 사용을 오래도록 하지 않아 단전까지 된 상태다.

그런데 내부를 자세히 보면 천장에 설치된 시스템 에어컨부터 냉장고, 세탁기까지 전부 다 브랜드 제품으로 빌트인 돼있는 이 집. 정체가 뭘까? 바로 피해액이 300억원에 이른다는 이른바 세 모녀 전세사기단이 소유했던 피해 현장이다. 겉보기엔 화려한 가구들로 치장해 세입자의 눈을 현혹시킨 뒤 정작 뒤로는 전세보증금을 빼먹는 악랄한 사기꾼들.

보기만 해도 씁쓸한 이런 전세사기 피해자의 70%는 2030 청년들이다. 유튜브 댓글로 “왜 전세사기 피해자 대다수는 청년층인지 알아봐 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사실, 전세 사기라는 걸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게 어떻게 사기를 당한다는 건지 개념이 잘 안 그려질 수도 있다. 심플하게 요약하자면, 전세 계약기간이 끝났는데 보증금을 세입자에게 돌려주지 않는 거다. 전세계약을 유도하는 설계 단계부터 보증금을 들고 튀는 마무리까지 생각보다 유형이 정말 다양하다.

청년층이 전세 사기에 피해를 당하기 쉬운 이유 첫째, 건축업자부터 공인중개사, 집주인까지 세입자만 빼놓고 전부 한통속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요새 특히 늘어난 신축 빌라를 이용한 이른바 ‘동시진행’ 방식이 대표적인 사례다. 동시진행이란 분양과 전세 계약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집주인이 세입자의 보증금만 갖고 분양을 할 수 있는 구조다.

보통 부동산 시세는 같은 지역에서 비슷한 면적이나 층수의 물건이 얼마에 거래됐느냐로 결정된다. 그런데 신축은 거래 내역이 없으니 세입자들이 시세를 알 수가 없다. 이런 정보의 공백을 이용해 건축업자와 중개사, 집주인이 짜고 실제 분양가는 2억인 집을 전세 3억에 내놓는 식이다. 그래서 원래 1억5000만원 정도만 주고 들어가도 될 집에 3억원을 주고 들어가서 나중에 계약기간이 끝나면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뒤통수를 치는 경우가 많다.

작전에 플레이어로 뛰는 중개사들은 일부러 처음에 낡고 지저분한 반지하나 구축 빌라를 몇 군데 보여주고 별론데? 라는 생각을 들 때쯤 슬며시 ‘그럼 마침 괜찮은 신축 빌라 있는데 보실래요?’라며 신축 계약을 유도한다.

비싼 전세가 때문에 망설이는 세입자에게는 전세대출을 권유하면서 “이자비나 이사비를 지원해주겠다”는 식으로 꼬드긴다. 피해사례를 보면 1000만원을 지원해준다는 식으로 혹하게 만들어버린다.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주변에 이제 그런 쪽으로 사기를 당할 뻔한 분을 본 적 있는데 나이가 이제 지방에서 올라와서 한 20대 초중반 정도 돼요. 근데 이제 어느 날 역세권이라든가 이런데 부동산을 갔더니, 전세가 한 2억 정도 하는 거에요. 근데 (청년이) 이제 돈이 한 2~3천(만원) 정도밖에 없다고 그러니까, (중개사가) 아유 그거, 금리도 아주 정책자금으로 싸고 2~3천(만원) 있으면 한 1억 7~8천(만원) 대출 받을 수 있다 이렇게 하니까, 그 친구들(청년들) 입장에서는 갑자기 이게 웬 국가의 배려냐 이렇게 생각을 해서..."

그렇게 전세 계약을 하고 입주를 하면 집주인들은 슬그머니 신용불량자나 노숙자들에게 뒷돈을 주고 그 집의 소유권을 넘긴다. 세입자가 2년 뒤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으러 집주인을 찾을 때쯤 서류상 집주인은 다른 사람이 돼 있고, 이 사람은 “돌려줄 돈이 없다”며 배째라는 식으로 나오고, 원래 집주인은 연락두절.

이런 사기를 피하려면 집을 구할 때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한 군데만 가지 말고 최소 두세군데 더 돌아보는 발품을 파는 게 좋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중개사들은 신축이란 말이 들어가면 전세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하는 경우도 많다. 신축 빌라를 들어가고 싶다면 전세 대신 월세로 계약하는 것도 방법이다.

둘째 이유는 워낙 지능화된 사기 수법 때문이다. 요새 나름 인터넷에 정보가 많아서 전세계약할 때 부동산 등기부 등본 살펴보고 전입신고도 필수란 조언 정도는 대부분의 청년들이 숙지하고 있다. 그런데 등기부등본상 특이한 점이 없다는 걸 확인했거나 전입신고를 했는데도 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집주인이 세금을 많이 체납해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경우, 계약할 때 등기부등본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지만 보증금을 떼일 수가 있다. 세입자가 전입신고를 한 당일, 소유권을 바꿔치기하거나 막대한 담보대출을 받는 ‘악덕 집주인’도 있다.

현행법상 세입자가 전입신고를 해 확정일자를 받으면 전세권을 보호받는 효력이 다음 날부터 생기는데, 주택 소유권 이전이나 대출에 따른 은행의 근저당권 설정은 바로 당일부터 효력이 생기는 차이를 이용한 악랄한 꼼수다.

전세가 다른 곳들보다 싸게 나왔는데 심지어 신축에다 빌트인 가구로 쫙 깔아놓은 곳이 있다면 ‘신탁 등기’ 물건이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내가 계약한 집주인이 사실은 집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무턱대고 계약을 하면 나중에 불법점유자로 몰릴 위험이 있다는 거다.

임대사업을 하려는 이들은 부족한 자금 때문에 금융기관에 소유권을 넘기고 대출을 받아 건물을 올리는데 이 경우 임대차계약을 하기 위해선 내가 계약한 집주인이 아닌 신탁회사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래서 ‘신탁원부’를 통해 이런 내용을 확인해야 하지만 중개사나 집주인들이 ‘문제 없다’며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에 말리면 가짜 계약을 체결한 셈이 돼 보호를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부동산 등기부등본상에 소유자가 신탁회사로 돼 있다면 가급적 계약하지 말라고 하는 게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세번째 이유는, 전세 사기로부터 청년들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 장치가 부실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전세금을 떼일 경우에 대비해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하면 나중에 보험회사가 보험금을 세입자에게 먼저 지원하도록 돼 있는데, 전셋값과 집주인의 대출금을 합친 규모가 집값의 80%를 넘기면 가입이 거부된다. 가입 절차를 잘 모르는 청년에게 보증보험을 100% 가입시켜준다고 약속해놓고 실제로는 가입 안 시키고 등처먹는 집주인도 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전세 사기에 대해선 처벌이 관대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건 지난 7월 전세 사기를 벌인 일당에 대한 법원 재판 결과인데, 세입자 9명의 전세보증금 6억원을 날려먹은 전세 사기 일당에게 내려진 형벌은 고작 징역 1년~3년에 그쳤다. 피해자들은 힘겹게 모은 목돈을 날려 힘들어하는데 사기에 가담한 가해자는 고작 감방 1년 살고 자유의 몸이 되는 거다.

그래서 한국에만 존재하는 특이한 전세 제도를 아예 없애자는 얘기도 많지만 보증금을 깎아먹지 않고 돌려받는 전세는 내 집 마련을 꿈꾸는 서민들에게 징검다리이자 사회 안전망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세 사기는 특히 부동산 계약 경험이 많지 않는 사회초년생들의 전 재산을 노린다는 점에서 죄질이 극히 나쁘다. 이미 지난 몇 년 간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을 보며 충분히 박탈감을 느꼈는데 힘겹게 모은 전세금마저 빼앗길까봐 오늘도 노심초사해야 하는 청년들에겐 세상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질 뿐이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
“(청년 대상 전세사기가 많은 건) 제공하는 정보가 부족하고 불투명한 상태에서 청년들이 (전세) 계약을 하기 때문인데. 만약에 부정한 임대인이 속이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속일 수 있는 그런 상태이기 때문에 제도적인 미비, 이런걸로 인해서 정보가 충분히 정확하게 전달 안된다, 이게 근본적인 원인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