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재벌 예외 없는 저출산 공포 확산에 기업 미혼자 복지 도마

LG유플·롯데百 등 일부 기업 미혼·비혼 복지에 “저출산 극복 찬물” 비판 확산

[사진=뉴시스]

LG유플러스, 롯데백화점, SK증권 등 일부 기업에서 시행 중인 미혼·비혼 직원 복지제도가 논란의 도마 위에 올랐다. 연일 최악의 출산율을 기록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나라 망한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출산을 독려하긴 커녕 오히려 출산기피를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정부가 주도하는 저출산 극복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대통령은 법까지 바꿔가며 애 낳으라는데…여전히 일부 기업은 미혼-기혼 형평성 운운

윤석열 대통령은 5일 경기 광명시 아이벡스 스튜디오에서 민생토론회를 열고 다양한 청년 대책을 발표했다. 이날 언급된 대책 중 하나는 저출산 문제 해결에 동참한 민간의 노력에 대한 정부의 지원책이었다. 정부는 기업이 출산장려금을 지급하면 기업과 근로자가 추가적으로 세 부담을 지지 않게끔 하는 세재 지원 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날 윤 대통령은 “기업이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출산지원금은 전액 비과세해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고 더 많은 근로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출산지원금을 근로소득으로 보고 기업의 비용(인건비)으로 인정하면 기업은 (법인세) 부담이 없어지고, 근로자에 대해서는 출산하고 2년 안에 지원받은 출산장려금엔 전액 (근로소득세를) 비과세하겠다”며 구체적인 계획을 밝혔다.

기업의 출산지원금 이슈에 신호탄을 쏜 부영그룹의 ‘출산 직원 1억원 지급’ 결정이 등장한 지 불과 2개월 만에 나온 대책이다. 앞서 부영그룹의 출산 지원 대책이 알려진 이후 여론 안팎에선 세금 문제가 효과를 반감시킨다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는데 정부가 곧장 해결책을 내놓은 것이다.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정부의 체감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 LG유플러스는 비혼을 선언한 직원에게도 결혼한 직원과 똑같은 복지 혜택을 주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러나 아직까지 민간 차원에서의 저출산 대책은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부영그룹이 신호탄을 쏘긴 했지만 이후 눈에 띄는 대책은 등장하지 않고 있어서다. 심지어 일부 기업에선 여전히 비혼·미혼 직원에 대한 복지 정책을 펼치고 있다. 결혼하지 않는 직원 비중이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에서 복지 형평성을 높인다는 취지다.

재계 등에 따르면 LG유플러스는 비혼을 선언한 직원에게도 결혼한 직원과 똑같은 복지 혜택을 주고 있다. 비혼을 선언한 직원에게도 결혼 축하금과 마찬가지로 기본급 100%를 지급한다. 특별 유급휴가 5일도 똑같이 준다. 직원 개개인의 가치관, 선택을 존중하는 차원이라는 게 LG유플러스의 설명이다.

롯데백화점도 ‘미혼자 경조 제도’를 운영 중이다. 만 40세 이상 미혼 직원이 신청하면 결혼하는 직원이 받는 경조금과 휴가를 동일하게 지급한다. 결혼식에 보내는 화환 대신 반려식물을 보낸다. NH투자증권은 2021년 7월부터 결혼하지 않은 임직원에게 결혼 축하금과 같은 기본급 100% 지급 제도를 시행 중이다. KB증권 역시 지난해부터 비혼 선언을 한 직원에게 100만원을 지급한다. 만 40세 이상이 대상이다.

현대차 남양연구소 노조도 올해 노사협상 요구안에 비혼지원금을 공식적으로 추가한다는 계획이다. 근속 연수와 나이를 고려하고 비혼 선언 뒤 마음이 바뀌어 결혼했을 때 지원금을 반납하는 등 비혼지원금 제도를 체계화해 향후 사측에 공식 제안할 것으로 보인다. 노조가 비혼지원금으로 얼마를 제시할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결혼 축하 지원금에 버금가는 수백만원 수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 출근 중인 직장인들의 모습. [사진=뉴시스]

여론 안팎에선 비혼·미혼 직원에 대한 복지 정책을 펼치는 기업에 대해 부정적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기업의 입장만 고려하고 자칫 망국의 길로 접어들 수 있는 나라 전체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법까지 바꿔가며 민간의 저출한 문제 해결 동참을 독려하는 대통령과 정부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직장인 강수진 씨(31·여·가명)는 “복지 혜택을 받는 당사자라면 모를까 사실 제3자 입장에서 볼 때 미혼자에게 기혼자와 똑같은 혜택을 주는 것은 오히려 역차별이라 본다”며 “현실적으로 볼 때 기혼자가 미혼자에 비해 책임감도 무겁고 경제적인 부담도 큰 게 사실인데 단순히 개인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똑같이 대우해주면 누가 결혼하고 누가 애를 낳으려고 하겠나”라고 꼬집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 회원 홍은석 씨(34·남·가명)은 “미혼·비혼 직원들을 기혼자와 똑같이 대우해주겠다는 것은 결혼·출산을 안 해도 된다고 조장하는 것과 다름없다”며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을 때 혜택을 몰아줘도 모자랄 판에 미혼자와 똑같이 대우하겠다하면 요즘 같은 때에 누가 결혼하고 애 낳겠나. 차별은 나쁘지만 더 나은 사회로 가기 위한 과정에서 희생하는 사람과 희생을 피하는 사람은 명백히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정주부 이성희 씨(41·여)는 “대통령과 정부는 결혼하고 애 낳으라고 난리고, 일부 기업들은 결혼을 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형평성·평등 운운하고 있는데 이러면 미혼 청년들의 선택은 뻔하다”며 “사회 전체가 결혼과 출산을 독려하지 않고 지금처럼 제 각각으로 움직인다면 결국 저출산 노력은 무의미해 질 것이다”고 주장했다.

일련의 논란에 대해 조성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모니터링평가센터 부연구위원은 “기업이 기혼자와 미혼자 간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미혼자에게도 지원하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기혼자의 경우 양육을 비롯해 각종 경제적 부담이 커지는 게 사실인데 미혼자에게도 기혼자와 똑같은 수준의 지원 혜택을 제공하는 건 저출산 시대에 바람직해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