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호섭의전쟁이야기] 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 왜 패했을까
2024. 5. 12. 23:16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와 1964년 미국의 베트남전쟁 참전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인류를 핵전쟁 직전의 위기로 몰아넣었던 쿠바 미사일 위기를 다룬 영화 ‘D-13’에서는 소련의 쿠바 미사일 기지 건설을 중단시키면서도 핵전쟁을 피하려는 케네디 정부의 고뇌와 결단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중에서도 미 해군이 소련 선박을 해상 봉쇄하는 과정에서 교전 수칙에 따라 경고용 포탄을 발사했을 때, 현장에 있던 맥나마라 국방장관이 해군 작전사령관 앤더슨 제독과 논쟁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맥나마라는 사소한 군사 행동도 전쟁을 촉발할 수 있음을 경고하며, 군사 행동이 소련과의 대화를 이끌어내는 수단임을 강조한다. 이는 핵전쟁의 위험이 도사리는 냉전 시기에 군사 행동이 상대방의 행동을 억제하는 수단이자 방법이 되어야 함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위즈 키즈(Whiz Kids)’로 알려진 맥나마라와 그의 팀은 군사 행동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했다. 전쟁의 목표와 수단을 제한하는 제한전을 수행해야 하는 당시의 상황에서 그들은 군사 행동을 전쟁 승리의 수단이 아니라, 상대방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기 위한 도구로 재정의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1964년 존슨 정부가 베트남전쟁에 참전하면서 더욱 명확하게 나타났다. 미국의 참전은 베트남이 공산화되면 동남아시아를 넘어 인도와 호주까지도 공산화될 수 있다는 도미노 이론에 대한 두려움에 따라 오래전부터 미국이 베트남에 개입했던 과정의 결과였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에서의 군사전략으로 피아 대응과 역대응을 데이터와 게임이론으로 예측하는 과학적 합리성에 기반을 둔 ‘점진대응전략’을 채택했다. 힘의 강도를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단계적으로 증가시켜 상대에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너와 싸우는 게 아니라 대화하는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주고자 했다. 하지만 북폭과 지상군 투입을 진행하며 폭력의 강도를 단계적으로 증가시켰음에도 북베트남은 반응하지 않았다. 미국은 전쟁을 휴전 협상을 통해 마무리 짓고 남베트남 정부를 보호하고자 했으나, 애초부터 통일을 목표로 끝까지 싸우려고 했던 북베트남과 베트콩에게 미국의 전략은 통하지 않았다. 미국의 실패는 전쟁 수행의 원동력이 인간의 의지에 있음을 간과한 결과였다. 결국 베트남전쟁은 이후 10년이 넘는 장기전으로 치달았고, 미국의 참전은 미국 역사에 부정적 의미로 큰 변곡점을 만든 패배의 선택을 한 시작이 되고 말았다.
심호섭 육군사관학교 교수·군사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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