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훈, 바들바들 떨며 꺼내든 그날의 이야기 [인터뷰]
아이즈 ize 한수진 기자

"먼저 크나큰 실수로 인해 불편을 드려 머리 굽혀 사죄의 말씀 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뭇매 달게 맞겠습니다."
기자를 마주하자마자 배우 박성훈의 입에서 이 같은 첫마디가 흘러나왔다. 목소리는 가냘프게 흔들렸고 손은 바들바들 떨렸다. 숙연한 공기가 내려앉았다. 이 말을 하기 위해 수차례 되뇌인 듯 그의 입에서 나오는 사과의 말은 막힘도, 주저도 없었다.
박성훈은 최근 SNS에 자신의 출연작 '오징어 게임'을 패러디한 한 AV(성인물 비디오)의 표지를 올렸다가 빠르게 삭제했다. 해당 게시물은 캡처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로 번졌고 논란이 일었다. 소속사에서는 실수였다는 입장을 냈고, 박성훈 역시 기자에게 해당 일은 "실수"라고 설명했다. 이 일이 발생했을 무렵 박성훈은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2'(감독 황동혁) 인터뷰를 앞두고 있었다. 비판 여론이 셌기에 인터뷰를 취소할 수도 있었겠지만, 대신에 그는 정면 돌파를 택했다.
침묵은 금이 아니라 불어나는 눈덩이다. 사과는 텍스트가 아닌 말로 할 때 진심이 더 오롯하다. 박성훈은 이날 여러 타임을 나누어 반나절 동안 인터뷰를 진행했고, 매 자리에서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날의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오징어 게임2'가 다시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며 SNS 팔로워도 늘어났다는 그는 더욱 "엄중한 책임을 느꼈"고, "행동 하나하나 신중"을 기할 것을 약속했다.

"며칠 동안 자책뿐이 할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분의 노고가 있는 작품인데 누를 끼치게 되어 너무나 속상하고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날의 상황에 대해 말하자면 '오징어 게임2'가 공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작품에 대한 반응을 담당자랑 계속 주고받으며 추이를 보고 있던 와중에 문제의 표지를 발견했습니다. 저로서도 너무 충격적이고 문제의식을 느꼈고, 소속사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했습니다. 어떻게 설명드려도 변명 같겠지만 저도 설명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습니다. 분명한 건 저의 실수이고 잘못입니다. 불쾌감을 드려 죄송합니다. 질타 달게 받겠습니다. 다만 이것이 '오징어 게임2'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으로 번지지 않길 바랄 따름입니다. 저는 질책해 주시되 작품은 따뜻하게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박성훈은 부계정 소유 여부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그는 "부계정에 올리려던 걸 잘못 올린 게 아니냐고도 하시는데 부계정은 없다. 메인 계정 하나만 운영하고 있다. 오늘 인터뷰가 긁어 부스럼이 되어 또 다른 피해가 양산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지만 제 입으로 사죄드리는 것이 옳다고 느꼈다"라고 말했다.
논란과 별개로 '오징어 게임2'는 공개 11일 만에 1억 2,620만 시청수(시청 시간을 작품의 총 러닝 타임으로 나눈 값)를 기록하며, 2주 차에도 넷플릭스 글로벌 TOP 10 1위 자리를 지켰다. 93개국 TOP 10 1위를 석권했다. 또 시즌1과 시즌2가 나란히 넷플릭스 역대 시리즈(비영어) 1, 2위에 올랐고, 넷플릭스 역대 공개 첫 주에 가장 많은 시청 수를 기록했다. 글로벌 신드롬을 또 한 번 재현했다.
'오징어 게임'은 돈을 두고 펼치는 데스 게임을 서사로 한다. 동심 가득한 어린 시절 추억의 게임을 죽음의 게임으로 뒤튼 역발상과, 목숨값이 곧 상금이 되는 잔혹한 룰을 바탕으로 극단적인 자본주의 질서 안에서 경쟁적으로 변질되는 인간의 본성을 그린다.

박성훈은 극 중 데스 게임에 참여한 트렌스젠더 여성 현주를 연기했다. 작품이 공개되고 논란이 일기 전까지 박성훈의 현주는 이번 시즌 최고 캐릭터로 주목받았다. 의협심 많은 현주는 고운 마음과 더불어 특전사 출신이라는 반전으로 극에 커다란 재미를 불어넣었고, 이를 연기한 박성훈은 작은 디테일도 놓치지 않으며 몰입감을 높였다.
"현주를 연기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염두에 둔 첫 번째는 이 캐릭터가 희화화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였어요. 절대로 그렇게 보이지 않게끔 의상과 분장부터 연기 톤이나 작은 제스처까지 감독님과 긴밀하게 상의하면서 찍었어요. 사실 현주가 트렌스젠더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성정이나 성품, 또 타인을 향한 태도나 배려심 같은 것들이 부각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연기에 임했죠. "
게임장 안에서도 소수자인 현주는 타인에게 시선을 보내기보다 타인의 시선을 받아내는 인물이다. 때문에 액션만큼 리액션이 중요한 역할이었고, 커다랗게 발현되는 이타심도 인물 본연에 착화감 있게 보여줘야 했다. 박성훈은 바로 그런 면 때문에 현주에게 지극한 마음을 쏟아 캐릭터가 사랑받기를 바랐다. 박성훈은 현주를 자신의 캐릭터에 추가할 수 있게 된 것을 "축복"이라고 말했다.
"현주에게서 인류애를 느꼈어요. 현주를 연기함에 있어 이 캐릭터성이 부각되길 바랐던 건, 실제로 트렌스젠더 분들을 만나 인터뷰 하고 자문을 구하면서 그분들이 겪고 있는 시선들에 이해가 닿길 바랐어요. 소외당하고 편견에 놓이고 차별받는 것들이 아직도 만연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분들이 현주를 통해 응원과 힘을 받으셨으면 했어요."

박성훈은 황동혁 감독, 분장팀과 함께 현주의 외양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했다. 머리 길이부터 액세사리 착용 등 무엇이 가장 잘 어울릴지 스태프들에게 투표를 받아 가며 스타일링을 완성했다. 그는 "긴 머리도 해봤지만 중단발이 더 잘 어울렸다"라며 "현주의 극 중 나이를 고려해 앞머리를 만들자고 아이디어를 직접 제안했다"라고 설명했다.
"테스트를 많이 했어요. 머리를 짧게도 해보고 길게도 해보고, 귀걸이도 착용했다가 목걸이도 해보고 이것저것 많이 해보면서 뭐가 좋을지 찾았어요. 제가 긴 머리보다 단발이 잘 어울리더라고요. 그런데 앞머리가 없는 상태에서 거울을 봤는 데 나이가 많이 들어 보였어요. 현주는 그 정도 나이가 아닌 것 같아서 감독님께 '앞머리를 잘라보면 어떨까요?'라고 의견을 냈는데 수용해 주셔서 지금의 현주 모습이 완성됐어요. 그렇게 분장하고 촬영장을 갔는데 시선이 쏟아졌어요. 숙소 신에서 스태프를 포함해 400여 명이 한 공간에 있었는데, 그 사이를 뚫고 제 자리로 찾아가는데 아무래도 분장이 강렬하다 보니까 시선이 쏟아지더라고요. 처음엔 부담됐는데 나중엔 저도, 배우들도 다 익숙해져서 편했어요."
현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리더십을 발휘하는 용감함을 지닌 인물이고, 그래서 이번 시즌에서 가장 미덥다 평가받는 캐릭터다. 박성훈은 이런 현주와 닮은 점이 있냐는 질문에 "대호(강하늘)와 더 비슷"하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친누나가 둘이라 내재된 여성성이 있다며 "사실 나는 용맹하기보다는 불안함이 많은 사람"이라고 고백했다. 그런 그가 현주를 연기하며 "전보다 단단해질 수 있는 용기"를 얻었고, 그래서 현주를 "선물"이라고 했다.
"'오징어 게임2'가 단역부터 포함해서 딱 50번째 작품이더라고요. 연기한 지 딱 20년이 된 해에 세계적인 작품을 찍고 있다는 사실에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더라고요. 훌륭한 선배님들 옆에서 많이 배울 수 있는 작품이기도 했지만, 초심을 다잡고 뒤를 돌아보게 한 작품이기도 해요. 저에게는 여러모로 이 작품은 의미있게 마음에 오래 남을 것 같아요. 또 이번 사건을 겪으며 뭇매를 맞을 건 맞아야 되기 때문에 잘 매듭짓는 게 급선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배우로서 최선을 다하는 게 제 소임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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