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전전하던 지방대 중퇴생, 국가연구원 직원으로 인생역전"

조회 9,7112025. 3. 13.
U턴 입학생들의 도전 이야기
(왼쪽부터) 이호승 씨, 천지영 씨, 서종원 씨. 세 사람은 유턴입학 후 새로운 인생을 맞이했다. /이호승 씨, 천지영 씨, 서종원 씨 제공

일반대를 졸업 또는 중퇴하고 기술을 배울 수 있는 대학으로 재입학하는 이른바 ‘U턴 입학생’이 매년 늘고 있다. 2022학년 1170명, 2023학년 1240명, 2024학년 1396명 등으로 증가세다. 가장 큰 이유는 ‘취업’이다. 이론으로만 배웠던 전공을 실무 위주로 익히거나, 아예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려는 이들도 있다. 유턴입학, 그 후 취업까지 직진해 새로운 인생을 맞이한 이들을 만났다.

◇취업 발목 잡던 자격증 정복, 취업도 골인

폴리텍대학의 남인천캠퍼스에 있는 항공기 옆에서 포즈를 취하는 이호승 씨. /이호승 씨 제공

가톨릭관동대를 졸업한 이호승(27) 씨는 원래 건축을 전공했다. 첫 해외 여행길에서 진로가 바뀌었다. 이 씨는 “비행기가 이륙할 때 밖에서 형광색 조끼를 입고 손을 흔들어주는 분들을 보면서 ‘나도 저 자리에 있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그때를 회상했다. 이후 항공기 정비학과로 전과해 졸업했지만 취업은 녹록지 않았다. 졸업할 때까지도 취득하지 못한 항공정비사 자격증이 발목을 잡았다.

전문 교육을 받기 위해 2024년 폴리텍대학 남인천캠퍼스 항공MRO과에 입학했다. 남인천캠퍼스는 항공기 정비 실습을 위해 C-172(세스나) 등 실제 비행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항공기 매뉴얼을 직접 읽고 해석하거나 다양한 부품을 장·탈착했다. 이를 통해 이 씨는 항공정비사 면허와 항공산업기사 자격증을 땄다. 항공기 설계 수업을 들으며 다쏘 시스템의 카티아 자격증도 취득했다. 현재 이 씨는 에어로케이 항공 정비본부 정비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이 씨는 “몸도 마음도 지친 취준생의 마음을 너무 잘 안다”며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아르바이트 전문가, 기술 배워 로봇 전문가로 변신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에서 근무하는 모습. /천지영 씨 제공

천지영(25) 씨는 거제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했지만 고민 끝에 중퇴했다. 이후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음식점 서빙부터 전단지 배포, 조선소까지 안 해본 일이 없다. 천 씨는 “단순 반복 업무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공정 자동화로 생각이 뻗쳤다”며 “로봇을 제대로 배워볼 순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폴리텍대학 로봇캠퍼스 입학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후 천 씨는 개발자로 진로를 정했다. 협동로봇 등 로봇캠퍼스 내에서 최대한 많은 로봇을 다뤄보고 AI(인공지능), ROS(로봇 개발 플랫폼)에 대한 공부도 놓치지 않았다. 그 노력의 결과로 2025년 1월 한국전자기술연구원에 입사했다. 천 씨는 “생체 신호와 로봇을 결합해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년 은퇴 후 찾은 새로운 꿈

자격증 취득을 위해 공부하는 모습. /서종원 씨 제공

서종원(58) 씨는 아주대 전자공학과 85학번이다. 철도 회사에 25년, 배터리 회사에 5년, 도합 30년의 청춘을 바치며 일했다. 2022년 6월 정년 은퇴했지만 여전히 힘이 넘쳤다. 서 씨는 “경력을 살려 재취업하고 싶었는데 나이가 늘 문제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베테랑 경력의 중장년층이 취업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서 씨는 다름 아닌 ‘학교’에서 새로운 기회의 씨앗을 찾았다. 2023년 8월 폴리텍대학 반도체융합캠퍼스에 신중년특화과정 전기내선공사실무 직종으로 입학했다. 단순 암기가 아닌 원리 이해에 집중하며 학습을 이어갔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단기간에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서 씨는 “수료 후에도 전기산업기사, 전기기사까지 차례로 합격했다”고 자랑했다. 2024년 7월 전기시공사에 안전관리책임자로 입사했다. 재취업에 성공했지만 학업의 끈은 놓지 않았다. 전기기능장 필기 시험을 합격하고 실기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서 씨는 후배들에게 “나이가 많아도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도전하라”고 조언했다.


한국폴리텍대학의 이철수 이사장이 밝히는 비전 'K-SHIFT'
한국폴리텍대학의 이철수 이사장. /더비비드

고령화, 지방소멸 같은 인구구조 변화와 인공지능(AI) 기술의 보급으로 산업 구조 재편이 빨라지고 있다. 여기에 평생 직장은 옛 말이다.

우리나라 최고 직업교육 기관인 한국폴리텍대학의 이철수(66) 이사장은 직업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을 강조했다. 올해 ‘국민과 미래를 이어주는 일자리 대학’이라는 비전을 선포한 배경이다. 폴리텍대학을 국가대표 기술교육대학으로 발돋움시킬 구상이다. 이철수 이사장을 만나 청사진을 들었다.

지난해 서울 용산구 서울정수캠퍼스에서 열린 한국폴리텍대학 '비전 2028 선포식' 현장. /한국폴리텍대학

서울대 법대 교수 출신인 이철수 이사장은 우리나라의 대표 노동법 학자다. 이화여대 법대에서 처음 교편을 잡았고, 서울대학교 법대 및 법학전문대학원에 교수로 재직하면서 기획처장, 평의원회 의장 등을 역임했다.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익위원, 한국노동법학회 회장,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노동정책 입안과 사회적 대화에도 적극 활동해 온 노동법 및 노사관계 분야의 최고 권위자다. 2023년 서울대에서 정년 퇴임한 후 2024년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으로 왔다.

해외 인력을 적극적으로 양성하기 위해 캄보디아 국립폴리텍과 협약을 맺었다. /한국폴리텍대학

- 새로 선포한 비전의 실천 방안이 궁금합니다.

“저희 비전을 요약하면 ‘K-SHIFT’입니다. 직업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Korea Skill up for Humanity, Innovation and Future Technology)을 의미하며, 인프라 고도화를 통한 개방과 공유로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평생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지향점을 담고 있습니다. 이번 선언과 함께 ‘푸른 미래를 열다, 국가대표 기술교육’이라는 새로운 슬로건도 공개했습니다. 국민과 함께 푸른 미래를 그려가며 대한민국 대표 직업교육대학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를 담았죠. 폴리텍대학은 국가대표입니다. 학교에 소속된 교수들은 자기 분야에서 기술력과 명성을 모두 쌓은 전문가들이죠. 저는 그들을 ‘맥가이버’라고 부르는데요. 2026년까지 약 15만명이 맥가이버들에게 양질의 공공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겁니다. 청년, 여성, 중장년, 외국인, 소공인 등 누구나 원할 때 교육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겠죠.”

-수혜 대상에 ‘외국인’이 있는 게 조금 의아합니다.

“지난해 12월, 우리나라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했습니다. 합계출산율은 조금 반등했지만 여전히 합계출산율 1.0명을 밑도는 수준으로, 인구 절벽 위기가 현실화됐습니다. 생산가능인구의 감소는 산업현장에서의 노동력 부족으로 이어집니다. 결국 해외에서 노동력을 충당해야 하는데요.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면서 양질의 성장까지 도모하려면 우수 인력을 유치해야 합니다. 뛰어난 해외 인력을 교육해서 한국에 대한 호의적인 인식을 형성한 뒤, 이들이 국내로 유입되는 선순환을 창출한다는 구상이죠.”

한국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 에너지산업설비과에서 신중년특화과정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한국폴리텍대학

-해외 인력은 어떻게 양성하고 있나요.

“한국에서 기회를 찾는 해외 고급 인력이 많습니다. 올해는 산업 현장에 투입된 외국인 근로자로 대상을 확대해 맞춤형 직업 교육과 한국어 능력 향상 프로그램을 제공할 계획입니다. 산업인력공단, 노사발전재단과 협의해 보다 적극적으로 외국인 기술교육을 확대하고자 합니다. 해외 진출 계획도 있습니다. 최근 캄보디아 국립폴리텍과 외국인 숙련기술인력 양성을 위한 협약을 맺었고 베트남, 인도네시아, 우즈베키스탄의 직업교육 담당자와 ‘한국형 직업기술교육’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숙련된 해외 인력의 국내 유입을 유도해 인력 부족 문제를 해소할 생각이죠. 아울러 이런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다문화 청년 특화 교육을 신설해 86명을 양성했습니다.”

-저출산, 고령화 등 인구 구조 변화에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2차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가 현실화되면서 중장년층 중심으로 취업 수요가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2020년 기준 66세 이상 노인빈곤율은 40.4%로 OECD회원국 중 1위입니다. 상황의 심각성을 빠르게 인지한 폴리텍대학은 2018년부터 중장년 대상 직업교육인 신중년특화과정을 운영해왔는데요. 중대 사안인 만큼 예산과 훈련 규모를 확대해왔습니다. 중장년 교육 인원을 2024년 2550명에서 2025년 7500명으로 늘렸고, 내년을 1만5000명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 수요자 맞춤형 교육 시스템 도입

직업교육 실효성 극대화 전략을 설명 중인 이철수 이사장. /더비비드

취지가 좋아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전략은 쉽게 외면당한다. 폴리텍대학은 직업교육의 실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수요자 맞춤형 교육 시스템을 구축했다. 누구나 원하는 시기에 입학 가능한 ‘수시입학제’, 선호도 높은 직종의 지원자를 최대한 수용하는 ‘입학총량제’ 등 과감한 학사제도 개편을 통해 교육 과정을 유연하게 운영하겠다는 방침이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도록 온·오프라인 혼합교육도 도입한다.

-직업교육은 현장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분야가 있고 그렇지 않은 분야도 있습니다. 예컨대, 이론 수업은 온라인 강의로도 충분히 지식을 전수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여기서 착안해 지난해 쿠팡풀필먼트와 협약을 맺어, 올해 3월부터 온라인 강의를 병행한 채용 협약반 모집을 진행합니다. 전국 캠퍼스 자동화 계열 등 2학년 재학생 120명이 대상인데요. 합격자는 자동화설비 유지·보수 직무를 목표로 화상과 현장강의를 들으면서 취업 준비를 하게 됩니다. 교육과 취업이 연계된 모델이죠.”

- AI, 반도체 등 기술 개발 속도가 굉장히 빠른데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요.

“신산업은 경제 성장의 원동력입니다. 폴리텍대학은 사회 문제 해결책을 교육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현실화하는 조직입니다. 산업구조의 전환에 맞춰서 직업교육의 틀과 내용도 바뀌어야 합니다. 매년 반도체, AI, 바이오 등 신산업 분야의 학과를 신설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84개를 신설했습니다. 또한, 송도 바이오클러스터 등 지역 특화산업과 연계 강화를 위해 도심형 공유캠퍼스 신설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한국폴리텍대학 청주캠퍼스에서 반도체 실습을 진행하는 모습. /한국폴리텍대학

-기술 발전으로부터 소외된 소상공인 대상 지원책은 없을까요.

“소공인, 소상인은 지역 사회를 지탱하는 뿌리입니다. 이들의 생존은 지역 경제 활성화와 밀접히 관련이 있죠. 폴리텍대학은 소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기술지원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올해 더 많은 소규모사업장을 지원하기 위해 지원 사업장 자격 기준을 완화했습니다. 공공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지역 기업 맞춤형 교육 과정도 공동으로 개발 중입니다. 폴리텍대학은 전국에 40개 캠퍼스를 두고 있습니다. 각 지역 상황에 눈이 밝을 수밖에 없어요.”

-큰 변화를 앞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역점을 두고 있는 게 있다면요.

“폴리텍대학의 다원적인 역할을 국민이 알아줬으면 합니다. 많이 알려져야 문을 두드리고, 보다 많은 분들이 기회를 찾을 테니까요.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학사 졸업자가 산업학사를 따야 생존하는 시대입니다. 폴리텍대학은 변화상에 맞는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작년 취업률이 무려 79.8%에 달하고 유지취업률은 92.3%로 독보적인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폴리텍대학의 교육 기능을 ‘K-테크’라고 명명합니다. 단순히 취업을 잘 시켜주는 교육기관이 아닙니다. 기술로 대한민국의 브랜드 파워를 높여줄 발판입니다. 이곳을 거친 모든 이가 자부심을 품고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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