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은 사랑을 받은 웹툰 <정년이>가 드라마로 재탄생했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된 작품으로, 1950년대 소리에 남다른 재능을 가진 정년이가 여러 경험과 많은 노력을 통해 여성 국극의 스타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많은 사람들이 영상화되길 기대한 웹툰이었고, 이미 국립극장에서 관련 창극도 나왔다. 그렇게 오랜 기다림 끝에 <옷소매 붉은 끝동>의 정지인 PD가 메인 연출을 맡고, <너의 시간 속으로>의 최효비 작가가 의기투합해 2024년 10월 드라마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팬들이 가장 염원하는 배우 1순위로 꼽던 김태리가 주인공을 맡고, 신예은, 라미란, 정은채 등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해 캐스팅부터 기대감을 자아냈다. 반면, 서사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주연급 캐릭터인 권부용을 삭제하는 방향의 각색에 원작팬들의 우려가 쏟아지기도 했는데, 과연 드라마는 시청자들을 만족시켰을까? 원작 웹툰과 무엇이 달라졌고, 4부까지의 장단점을 리뷰로 적어본다.
웹툰 ‘정년이’와 드라마 ‘정년이’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원작 웹툰 「정년이」는 3부작 총 137화로 구성될 정도로 긴 스토리를 자랑한다. 이 때문에 12부작으로 나올 드라마에서는 어쩔 수 없이 원작의 여러 부분을 삭제하거나 각색할 수밖에 없다. 물론 드라마만의 재미를 위해 추가된 부분도 있다. 이에 현재까지 스토리상 원작과 달라진 점을 간략하게 정리했다.
먼저 제작 전부터 많은 논란을 일으킨 권부용 캐릭터의 삭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본다. 원작에서 권부용은 정년이, 허영서와 함께 극을 담당하는 최중요 캐릭터. 정년의 1호팬으로 그에게 용기와 영감을 주는 동시에, 애정 어린 마음을 나누는 인물이다. 드라마 측은 매란국극단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위해, 국극단 밖에 있는 인물인 부용을 삭제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원작 팬들이 느끼는 아쉬움은 매우 크다. 정년과 권부용의 에피소드는 다른 캐릭터들에게 분산해 공백을 최소화로 메꾸겠다고는 하지만, 쉽지 않을 듯하다. 현재까지 진행사항을 보자면 국극단에서 정년과 남다른 우정을 빚어내는 주란(우다비)에게 부용의 일정 부분 역할을 나눌 듯하다.
반면 원작에는 없었던 혹은 분량이 늘어나 드라마만의 재미를 주는 캐릭터도 있다. 대표적으로 정은채가 맡은 문옥경이다. 원작에서도 정년의 남다른 재주를 발견하고 매란국극단으로 인도한 중요한 역할이지만, 드라마에서는 그 비중이 훨씬 높아졌다. 드라마에서는 좀 더 직접적으로 정년과 여러 이야기가 얽히면서, 듬직한 멘토의 역할과 가능성 있는 후배의 성장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선배의 모습을 멋있게 보여주고 있다. 이 같은 모습은 원작의 백도앵에 가깝다.
원작에는 동생이었지만 드라마에서는 언니로 바뀐 윤정자(오경화) 역시 눈에 띄는 각색이다. 드라마 속 윤정자는 정년의 고향 친구 연실과 캐릭터가 합해진 느낌인데, 엄마 용례(문소리)의 완강한 반대로 국극단 입단의 꿈이 가로막힌 정년에게 마지막 희망의 길을 열어준 캐릭터다. 자매라는 끈끈한 관계 속에, 비록 어머니의 반대 속에서도 동생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뭉클하게 보여줘 <정년이>의 초반 감동을 확실하게 책임진다. 이 밖에 원작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그대로 이어가면서도 디테일한 전개 방식은 드라마 만의 이야기로 구성해 속도감을 높인 점도 돋보인다.
<정년이> 리뷰: 매력과 아쉬움이 공존하는 국극 배우 도전기0

목포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윤정년(김태리)의 관심사는 오로지 돈이다. 소리를 못 하게 하는 어머니 몰래 시장에서 노래를 부르고 돈을 벌던 정년은 우연히 매란국극단의 유명 배우 문옥경(정은채)의 눈에 띄어 국극단 입단 시험을 보자는 제의를 받는다. 성공해서 큰돈을 벌어 가족들을 호강시켜 주겠다는 일념 하에서 정년은 옥경을 따라 서울로 향한다.
드라마는 2배에 가까운 시청률 상승세를 기록하면서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정년이>의 가장 큰 매력은 여성 국극을 소재로 다룬다는 점이다. 여성 국극은 춤, 연기, 노래 3박자가 어우러진 우리나라 고유의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무대에 서는 모든 이들이 여자인 점이 특징이다. 공주, 왕자, 어떤 역할이든 상관없이 여성 배우들이 전부 도맡아서 역동적인 무대 연기와 춤에 더불어 구성진 소리를 선사한다. 드라마는 화려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한국의 전통적인 공연을 매력적으로 담아낸다.

특히, 무대를 채우는 배우들의 연기가 발군이다. 김태리는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특유의 목소리에 힘 있는 발성을 더해 시원시원하고 독특한 소리를 구사한다. 쭉 뻗어나가는 소리만큼이나 당차게 자기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정년이의 모습을 재미있게 표현한다. 허영서를 연기한 신예은의 무대도 놀랍다. 구성진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기교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진중하고 근엄한 이몽룡 역할에서 순식간에 익살맞고 능청스러운 방자로 변신해 연기를 소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두 배우는 실제로 판소리를 배우며 역할을 준비했고, 직접 노래를 불렀다고 밝혀 더욱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게 느껴진 배우는 문옥경을 연기한 정은채다. 이전 필모그래피에서는 보지 못했던 비주얼과 낮고 차분한 톤으로 ‘잘생김과 멋짐’을 제대로 보여주면서 그야말로 문옥경이 매란국극단의 왕자님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매력적인 부분이 많으나, 아쉬운 점도 명확하다.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역시 각색이다. 원작을 읽지 않은 시청자라면 무난히 재미있게 볼 법하지만, 원작을 읽고 드라마를 접하는 팬에게는 이야기 사이에 지워진 여백들이 너무나 아쉽게 느껴진다. 가장 아쉬운 대목을 고르자면 3화에서 정년이 방자 역을 연기하는 과정을 그린 부분이다. 원작에서는 부용이 남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정년이 도와주려다가 되려 위협을 받는데, 그때 남장여자인 고사장을 만나 도움을 받으면서 정년은 그를 멘토로 삼는다. 여자인 자신이 남자를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고민할 때 그에게서 성별 이분법적인 고정관념을 깨닫게 되는 조언을 듣고 정년은 자신만의 방자 연기를 찾는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그저 정년이 익살스러움으로 관객을 휘어잡는 방자가 되기 위해 춤꾼을 스승으로 삼고 춤을 익히는 모습만 짤막하게 등장한다. 1950년대에 오로지 여성들로 이루어진 극단에서 남자, 여자 상관없이 어떤 역할이든지 연기해 내는 여성 배우와 그 무대에 환호하는 여성 관객들을 담아내면서, 그들이 어떤 지점에 열광하고 어떤 부분에서 해방감을 느끼는지와 같은 핵심 요소들이 부용, 고사장과 함께 지워졌다는 인상을 떨치기 어렵다.
드라마는 아직 4화까지만 공개되었고, 풀어나갈 이야기가 많이 남아있는 상태다. 그런데 지금까지 만난 드라마는 각색 과정에서 가장 무난하고 손쉬운 길을 택한 것처럼 보여 걱정이 앞선다. 원작에서 정년과 얽히면서 당대의 여성 억압과 차별을 가장 두드러지게 보여주었던 주요 인물인 부용의 서사가 희미해지면서, 드라마는 단순히 가난하지만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소녀가 예인으로 성공하는 이야기에 머무르는 것처럼 보인다. 남은 에피소드에서는 정년이와 국극단 멤버들의 좀 더 풍부하고 입체적인 성장담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테일러콘텐츠 / Zapzee 에디터 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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