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D현대의 M&A 전략을 보면 몇 가지 특징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단순히 보수적이거나 공격적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전략적·맞춤형 접근 방식을 구사하고 있다. 이번 대미 투자도 마찬가지다. 미국 대체투자 전문 운용사 서버러스 캐피탈, 산업은행과 손잡고 투자 펀드를 조성했다. 이는 한미 대규모 협력 사업인 일명 '마스가' 프로젝트의 첫 단추가 되는 중요 이벤트다로 평가된다.
HD현대와 서버러스간 파트너십의 일환인 서버러스 마리타임(Cerberus Maritime)은 마스가 프로젝트의 연장선에서 구상된 것이다. 양사는 우선 투자 펀드를 조성해 미국 조선소 인수, 기술 개발, 공급망 확보 등에 자금을 집행할 예정이다.
초기 신뢰 확보를 위한 마중물인 앵커 투자자는 HD현대가 맡는다. 이 밖에 다수의 국내외 LP(출자자)들로 구상을 검토하고 있다. 서버러스와 산업은행이 각각 해외와 국내 에서 출자자를 모집할 계획이다. 정책금융 기관이 나선 만큼 국민연금 등 대형 연기금이 참여할 개연성도 높다. HD현대 측은 "일단 MOU라는 큰 틀 안에서 구상만 해놓은 상태로 윤곽이 드러나려면 좀더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시장에선 HD현대의 미국 내 M&A 움직임을 관심있게 지켜봤다. 경쟁사인 한화그룹이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것과 대조적으로 HD현대는 신중론을 펼쳐왔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직접 지분 인수 가능성을 점쳤지만 결국 현지 PE와 펀드를 조성하는 방식의 간접 투자를 택했다. IB 업계 관계자는 "한화가 적극적으로 매물을 검토하는 것과 달리 HD현대는 상대적으로 조용한 편"이라며 "기업 문화와 전략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HD현대는 사업 목적, 시장 특성, 기술 요건, 정책 요건을 모두 고려해 선택적으로 움직여왔다.
초기 진입 장벽이 크고 빠른 시장 점유가 필요한 분야는 적극적으로 M&A를 검토했다. 수소연료전지 산업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HD하이드로젠은 설립과 동시에 핀란드 고체산화물 연료전지(SOFC) 전문업체인 컨비온을 약 7200만 유로(1170억원)에 인수했다. 인수 대금은 모회사 HD한국조선해양이 출자한 설립 자본금으로 충당했다.
반면 기술력이나 자본이 충분한 조선소 투자는 예외다. 이번 한미 조선업 협정에서 주요 먹거리는 미국 해군의 유지·보수·정비(MRO) 시장이다. 울산에 위치한 조선소에서도 함정 정비가 충분한데다 필리핀 수빅 조선소 일부 도크를 임대하는 방안도 타진하고 있어 HD현대 입장에선 굳이 현지 인프라를 확보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가 현지 인력 양성을 요구할 경우 얘기는 달라진다. 이런 상황에선 M&A가 불가피하다. HD현대는 정책적 판단에 따라 투자 보따리를 풀되, 여러 투자사와 펀드를 조성해 위험 부담을 축소했다. 특히 펀드 운용을 맡은 서버러스는 필리핀 수빅 조선소 건으로 인연을 맺은 적이 있어 파트너사로 적합했다는 평가다.

한편 서버러스 마리타임은 투자뿐만 아니라 자율운항·AI 등 첨단조선기술 개발도 포괄한다. 이 과정에서 선박 자율운항을 전문으로 하는 아비커스의 역할이 주목된다.
일찌감치 자율운항 시스템을 미래 핵심 기술로 점찍은 정기선 수석 부회장은 2020년 아비커스를 설립했다. 아비커스는 대형 선박은 물론 소규모 레저보트까지 적용할 수 있는 자율운항 기술을 개발했다.
최근에는 실증을 통해 9334km 길이의 항로를 자율운항하면서 최대 15%의 연료 절감 효과를 입증했다. 자체 개발한 하이나스 컨트롤이 적용된 선박을 에이치라인해운에 공급하기도 했다. 하이나스 컨트롤은 각종 항해장비 및 센서로부터 제공된 정보를 융합해 선박이 최적 항로와 속도로 운항할 수 있도록 안내·제어하는 인공지능(AI) 기반의 자율항해시스템이다.
아비커스는 미국 현지 법인도 보유하고 있어 소통 창구를 여는 것도 자유로울 것으로 관측된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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