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에 있으면서
식민지화 수순을 위해
그리고 조선을 식민지화 했을 때
어떤 식의 식민통치를 할 것인지
이미 구상을 다 해놓고 있었습니다.

1909년에는 기유각서라고
대한제국의 사법권과 경찰권을
일본에게 넘기게 됩니다.

우리의 국권이 하나 둘 피탈될 때마다
언제나 나라에 어려움이 있으면
자발적으로 들고 일어났던
의병들이 계속 등장하였습니다.

그 정점을 찍었을 때가
고종이 강제퇴위되고
순종황제가 강제즉위했던
1907년이었습니다.

이 시점에 또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된단 말이죠?
그렇다면 사병이든 장교든
해산된 군인들은 어디로 가겠습니까?

대부분 의병에 합류하며
의병의 규모와 조직이 삽시간에
불어나게 됩니다.
1907년에서부터 1909년까지
약 4만 명의 의병들이 궐기했고
2700번의 전투가 벌어졌다고 합니다.

산발적인 전투만으론
의병들을 꺾을 수 없다고 판단한
일본 측은
작정하고 대학살을 통해
공포심을 심어주어야겠다고 판단

1909년 9월~10월 약 2개월 간
‘남한 대토벌 작전’이라는
이름부터 무시무시한,
당시 가장 의병저항이 강렬했던
전라도 인근에
대대적인 토벌을 퍼부었고

이 과정에서 양민들까지 희생되면서
더 이상 국내에서 일본을 상대로
의병전투를 벌이기가 힘들어진 겁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의병들은
만주와 러시아 연해주로 넘어가며
추후 독립운동으로 발전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