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생적으로 뭉친 시민의 힘, 인천 배다리에서 본 것 [우리 도시 에세이]
오랜 시간 삶의 ‘흔적’이 쌓인 작은 공간조직이 인접한 그것과 섞이면서 골목과 마을이 되고, 이들이 모이고 쌓여 도시 공동체가 된다. 수려하고 과시적인 곳보다는, 삶이 꿈틀거리는 골목이 더 아름답다 믿는다. 이런 흔적이 많은 도시를 더 좋아한다. 우리 도시 곳곳에 남겨진 삶의 흔적을 찾아보려 한다. 그곳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를 기쁘게 만나보려 한다. <기자말>
[이영천 기자]
▲ 배다리 배다리 헌책방 거리 중심을 이루는 삼거리. |
ⓒ 이영천 |
제물포에서 쫓겨난 조선인이 주안 갯골 남쪽에 정착했다. 지금의 화수, 송현, 송림동이다. 금곡, 창영동의 배다리도 그중 하나다. 황해도와 충청도에서 바다 건너 인천으로 몰려온다. 군국주의로 치닫는 일제가 만들어낸 유랑민이다. 인구가 늘어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가옥이 산꼭대기까지 점령해 나간다. 수도국산을 빙 둘러싸고 생겨난 달동네다.
▲ 배다리 문화양조장 창영학교 방향으로 나가는 길. 옛 양조장에서 이젠 문화가 주조되고 있다. |
ⓒ 이영천 |
학교와 철도
▲ 영화학당 미 감리회 존스(한국명 조원시) 목사가 세운 영화학교. 태극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대한제국 시기 사진으로 추정. |
ⓒ 인천시청 |
▲ 창영학교 배다리 조선인의 모금으로 지은 교사. 인천 3.1운동의 근거지가 된데는 이유가 있다. |
ⓒ 이영천 |
▲ 한국철도 최초 기공지 도원역 인근 '한국철도 최초 기공지' 비석. 하지만 정확한 위치는 숭의동 삼거리 알렌 별장 부근이다. 재개발로 철거가 이뤄진 사진 후면, 알렌 별장 터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
ⓒ 이영천 |
성냥공장
▲ 배다리 성냥마을 박물관 배다리에 있었던 2천여 평 넓이 조선인촌(주) 자리에 들어선 성냥박물관. 인천 노동운과 항일운동의 씨앗이 이곳에서 심어진다. |
ⓒ 이영천 |
당시 성냥 재료는 독극물 일종인 황린으로 발화점이 낮아 불이 잘 일지 않았다. 손으로 만들어야 했기에 중독되는 일도 다반사였다. 1921년에서야 법으로 금지되어, 인화점이 높은 적린으로 바뀌게 된다.
노동 집약 산업인 성냥공장 노동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적린 1만 개를 붙여야 60전을 받았다. 하루 14시간 노동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여기에 일본인 관리자의 멸시와 차별도 심했다.
▲ 배다리 시장 해방과 한국전쟁 후 비교적 안정기에 접어든 때로 추정. 멀리 산꼭대기까지 집들이 점령하고 있다. |
ⓒ 이영천_거리전시물촬영 |
그러나 9일 임금인상 50%와 일본인 감독 배척을 요구하며 다시 파업에 나선다. 일제는 인근 공업지대로 파업이 확산할까 두려워 강경 진압에 나선다. 배후 조종 명분으로 10여 명이 극심한 고초를 겪고 파업은 동력을 잃고 만다. 이 파업은 이후 인천 지역 노동운동과 항일운동 씨앗이 된다.
헌책방 거리
▲ 배다리 헌책방 풍경 한국전쟁 이후 형성되기 시작한 배다리 헌책방 거리 모습. 소녀들 모습이 해맑다. |
ⓒ 이영천_거리전시물촬영 |
▲ 배다리 초입 배다리 사거리에서 경인선 동측 배다리로 들어서는 초입.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헌책방 몇이 자리한다. |
ⓒ 이영천 |
헌책방 거리가 세간의 관심을 끈 건 아이러니하게 인기 드라마에 등장하면서부터다. 매체 영향으로 주말이면 젊은이가 몰려들기 시작한다. 공간에 활기가 돌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을 염려한다. 대형 프랜차이즈가 이곳을 먹잇감 삼지 않은 건 다행이다. 이들의 공격에 공간이 버텨낼 힘이 관건으로 보인다. 그러함에도 배다리는 이미 다른 싸움으로 든든하고 충분한 자생력을 이미 마련해 놓고 있었다.
저항과 자생적 재생
▲ 산업도로 부지 사진 한가운데 남북으로 차들이 주차되어 있는 공간이 산업도로 부지. 현재 2026년 준공 예정으로 지하차도 공사 중. 오른쪽이 창영학교와 영화학교. |
ⓒ 인천광역시_지도포털 |
2006년 인천시가 청라와 송도를 연결하는 산업도로를 개설하려 토지 보상에 착수한다. 도로는 평화롭던 마을을 둘로 갈라쳤다. 산업시설을 잇는 도로에 대형트럭은 물론 24시간 차량이 빈번하리란 건 불 보듯 뻔한 이치였다. 여기에 고속화도로였기에 소음과 먼지 등 배다리는 그야말로 처참히 짓뭉개질 위기였다.
시민들이 일어선다. 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뜻있는 시민이 모여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시민모임'을 결성한다. 시민은 물론 각계각층 인사와 지식인, 예술가들이 조직적인 저항에 나선다. 관청에 수동적이던 배다리 주민도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다. 삶의 터전이자 애환이 서린 곳을 지키려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다.
▲ 옛 여관골목 배다리 문화공간 공간으로 탈바꿈한 옛 여관골목. |
ⓒ 이영천 |
15년 동안 이어진 싸움에서 절반의 승리를 거둔다. 전면 무효화가 아닌 지하화로 합의된다. 과정에서 겪었을 우여곡절은 불문가지다. 도로용지로 마을 일부가 사라졌으나, 지하도로가 예정대로 2026년 완공된다면 제법 드넓은 빈 땅이 생겨났다. 배다리가 다시 태어날 자양분인 셈이다. 이 땅은 배다리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최근 창영초등학교 이전 문제로 다시 한번 갈등이 일었으나, 이를 유보하면서 봉합되는 양상이다. 역시 이전에 반대하는 시민모임 힘이 컸다. 늘 그렇듯 자생적으로 뭉친 시민의 힘은 세고 위대하다. 그 힘으로 공간의 지속성은 더욱 강한 추동력을 얻게 될 것이다. 공간이 가진 역사와 문화, 정신과 삶의 터전으로서 가치가 활짝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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