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대주주 분석] 유미개발, '자기자금→주담대→유증' 취득 재원 변천사

지난 75년간 고려아연은 두 가문 간 끈끈한 우정의 상징으로 불렸다. 그러나 불편한 동거를 해왔다는 사실이 뒤늦게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누가 쥐느냐를 가르는 운명의 날을 앞두고 주주명부에 오른 오너일가 소유 회사들을 짚어본다.

/그래픽=박진화 기자

영풍그룹은 두 가문의 결합이라는 태생적인 이유로 소유와 지배가 구분된 계열사가 상당수 존재한다. 다만 관계사인 유미개발의 경우 소유와 경영 모두 최씨 가문 소관이다. 대부분의 오너일가 소유 회사가 그렇듯이 유미개발도 설립목적과 수익구조가 일치하지 않는다. 본업은 임대업이지만 고려아연 지분을 꾸준히 매집한 까닭에 손익계산서상 투자회사의 모습을 띤다.

최씨 일가 우군…지분확대 적극

유미개발은 지난 1978년 서울 용산구 소재 건물을 관리하기 위해 설립됐다. 주주명부에는 다수의 주주가 올라 있으나 사실상 최윤범 회장의 모친인 유중근 씨가 지배주주다. 유 씨는 유미개발 지분 12.87%를 소유하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경원문화재단을 통해 유미개발을 25.73% 지배한다. 직간접적으로 총 38.6%의 지배력을 행사하는 셈이다.

이밖에 △최창근 명예회장(10.57%) △최윤범 회장(8.77%) △최창영 명예회장(2.99%) △최창걸 명예회장(2.56%) △최창규 영풍정밀 회장(1.99%) △최내현 켐코 사장(1.28%) △최민석 스틸싸이클 대표(0.57%) 등 최씨 일가가 유미개발 지분을 가지고 있다. 또 유씨 일가를 비롯해 최창영·창근 명예회장, 최 회장 등이 사내이사로 등기됐다.

소유와 지배 모두 최씨 일가가 맡아 지원이 필요한 때는 의사결정도 빠르다. 실제로 영풍정밀 공개매수 당시 차입 당사자인 제리코파트너스 대신 금융기관에 주식 담보를 제공하는 등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고려아연 지분 역시 적극 매집해 의결권이 필요한 최 회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유미개발의 고려아연 보유지분은 2005년 0.64%에서 2010년 0.92%로 5년간 변동 폭이 컸으며 이후 잠잠하다가 2020년부터 다시 출렁였다. 특히 2020~2021년 최씨 일가 구성원이 고려아연 지분을 적극적으로 사들는 데 유미개발도 거들었다.

2023년 유미개발은 고려아연 지분 1.5%를 확보하며 주요주주로 올라섰다. 당시는 장씨 가문이 고려아연 주식을 본격 사들이던 때로 이에 대항하는 차원에서 유미개발이 고려아연 주식을 매집한 것으로 파악된다.

고려아연 경영권을 두고 MBK파트너스-영풍과 경쟁구도를 이룬 후에는 유미개발이 큰 힘이 됐다. 고려아연이 자사주 공개매수를 끝낸 직후 유미개발은 11월21일부터 이달 2일까지 2만4878주를 추가로 사들였다. 경영권 분쟁 이후 주가가 100만원대로 치솟아 향후 시세 변동에 따른 평가손실 우려가 있었음에도 지분율을 늘렸다. 현재 유미개발의 고려아연 지분율은 1.63%로 최 회장 측 특수관계자 가운데 영풍정밀(1.96%) 다음으로 높다.

/자료 제공=유미개발(단위:천원)

대규모 자금 필요할 땐 외부 차입

임대사업자인 유미개발은 매년 4억원 안팎의 임대수익을 고정적으로 받는다. 그러나 고정비를 지출하고 나면 실질적인 이익은 많지 않다. 2019년 이후에는 고정비 규모가 임대수입 수준을 넘어서면서 적자를 보고 있다.

당초 유미개발은 주식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발생한 이익금으로 고려아연 주식을 매입했다. 2010년 유미개발은 매도가능증권 취득에 128억원의 현금을 썼다. 고려아연 주식을 포함해 여러 상장사 주식을 사들였고, 핵심 재원은 매도가능증권 처분액 117억원으로 관측된다. 당시 유미개발은 영풍 계열사 외에도 증권, 조선, 소재 등 다수의 상장회사 지분을 보유했다.

유미개발은 고려아연이 비철금속제련 사업이라는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한 회사로 주주환원에 적극적이라는 점을 지렛대로 삼았다. 지속적으로 고려아연 지분을 늘린 영향으로 배당 수익도 증가했다. 최근 5년간 고려아연에서 수령한 배당금은 △2019년 19억원 △2020년 25억원 △2021년 28억원 △2022년 37억원 △2023년 66억원 등으로 가파르게 불어났다. 고려아연은 올 초, 하반기에 각각 16억원, 31억원의 배당금을 유미개발에 지급한 것으로 추산된다.

줄곧 자기자금을 고집해온 유미개발은 지난해 2월 고려아연 주식을 취득하기 위해 처음으로 외부 차입을 단행했다. 605억원을 한국투자증권에서 융통하는 대신 고려아연 주식을 담보로 제공했다. 이전까지 100억원 안팎의 주식을 매입해오다 600억원 이상을 지출하려다 보니 자체 현금으로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담보력이 상당한 고려아연 주식을 기반으로 안정적인 차입에 성공했다.

MBK-영풍과 경영권 분쟁이 시작된 직후 주식을 취득했을 때도 주식담보대출을 이용했다. 유미개발은 지난달 26일 고려아연 주식 11만4362주를 추가로 맡기고 한투증권에서 235억원을 대출했다. 비슷한 시기에 고려아연 지분 0.09%를 확보하는 데 대출금이 사용됐다.

지난달 20일에는 주주배정 방식의 유상증자를 통해 약 70억원을 조달했다. 신주는 기존 주주에게 균등하게 배분된 것으로 확인됐다. 유미개발이 증자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고려아연 주식을 취득하기 위해 신주를 발행했다.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