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 의대 중퇴하고 경희대 의대 입학, 연예인이 너무 하고 싶어 '의대' 포기TOP9

이무송
Washington & Jefferson College(앤드제퍼슨대학교 의대)에 유학 중이던 1983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뉴욕 대표로 나온 '어금니와 송곳니들'이라는 팀의 보컬리스트이자 드러머로 데뷔했습니다. 1992년 발매한 2집 사는 게 뭔지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1993년 KBS 가요톱텐 골든컵(5주 연속 1위)을 수상했습니다.

가수가 되고 싶어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이무송이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는 대학가요제가 가수의 등용문 중 하나였는데, 이 때문에 대학교에 가야만 가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대학교 재학 중 가수가 되기 위해 부모님을 설득할 때 "의사는 사람의 몸을 고치지만 뮤지션은 사람의 마음을 고친다."라는 말로 허락을 받아 가수로 데뷔할 수 있었습니다. 가수 노사연과 결혼하여 자녀로는 아들 한 명을 두고 있습니다.

김정훈
수능에서는 경상남도 진주시 1등을 했습니다. 형과 누나도 공부를 아주 잘해서 각각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와 누나는 숙명여자대학교 약학대학 출신이었습니다. 1998학년도 수능을 치렀으며 경희대 한의대에 불합격하고 서울대학교 치의예과에 입학했습니다.

1학년을 마치고 전과를 고민하며 학교 근처의 막걸리집에서 선배들에게 조언을 듣던 중에 김정훈을 눈여겨본 소속사 관계자에게 캐스팅되었고 원래 노래하는 걸 좋아했던지라 망설임 없이 연예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강산에
함경남도 북청군 출신 한의사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경희대학교 한의예과에 82학번으로 진학했으나 경제적인 문제, 학문에 대한 흥미 저하, 문화적 충격 등 복합적인 이유로 한학기씩 두 번 다니다가 중퇴했습니다. 한국에서 만난 일본인 아내와 일본 유학을 갔는데, 이곳에서 롤링 스톤즈, U2 같은 세계적인 가수의 공연을 보고 가수의 꿈을 키우기 시작했고, 일본 유학 시절 1집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마이클리
미국과 한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미국인 뮤지컬 배우로 초반에는 미국에서 활동해오다가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의사가 되길 원해 공부에 몰두해 스탠퍼드 대학교에 진학해서 심리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러다가 4학년 때 의대에 진학할 준비를 하던 중 미스 사이공 오디션에 참가했다가 투이 역에 덜컥 붙어버렸고, 한 학기에 23학점을 수강해서 6학기 만에 조기졸업을 해내는 괴물같은 일을 해내고 배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윤형주
잘생긴 얼굴, 좋은 학벌, 집안, 뛰어난 작곡 능력, 부드럽고 가녀린 미성 덕에 쎄시봉 멤버 4인 중에서 김세환과 함께 여성팬이 가장 많은 가수였습니다.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예과에 진학하는 등 당시로서는 수재였습니다. 의대에 진학한 이유는 부친인 윤영춘 교수가 윤형주가 의사가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연세대에 입학한 후 음악에 심취한 나머지 예과 과정만 수료하고 중퇴하였으며, 이후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본과) 1학년으로 편입했지만 결국 경희대에서도 중퇴했습니다.

김형규
서울대학교 치의예과 출신으로 연예계를 대표하는 브레인 김형규는 94년도 95년도 케이블TV에 VJ로 데뷔했습니다. 리포터, 가수로 활동해왔고 가수 자우림의 김윤아와 결혼했습니다. 치과의사 아버지를 둔 김형규는 현재는 김윤아의 매니저로 활동하기도 하고 치과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신영균
치과의사 출신으로 1928년생인 신영균은 1955년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치과의사로 활동하던 1960년 영화감독 조긍하에게 발탁돼 영화 ‘과부’로 데뷔했습니다.

곽경택
데뷔 이후 현재까지 꾸준히 영화를 연출하는 충무로의 감독으로 고신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미국으로 훌쩍 날아가 뉴욕 대학교 영화연출과를 졸업했습니다. 영화 친구, 똥개, 태풍, 친구 2, 극비수사, 암수살인 등 연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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