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재산은 똑같이 나눠야죠" 식탁에서 나온 한마디에 형제들이 등을 돌렸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온 가족이 둘러앉은 저녁 식탁 위로 차가운 침묵이 무겁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시골에 홀로 계신 아버지를 십 년 넘게 모시며 병간호를 전담해 온 나는 갑작스러운 동생의 발언에 숟가락을 놓았다.

막냇동생은 당연하다는 듯이 “아버지 재산은 똑같이 나눠야죠”라며 등기부등본 서류를 식탁 위에 무심하게 내던졌다.

아버지가 치매 진단을 받은 이후 병원비와 간병비의 대부분은 내 주머니에서 끊임없이 빠져나갔다.

동생들은 일 년에 한두 번 얼굴을 비추며 생색을 냈을 뿐 병간호의 고통과 경제적 부담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내가 그동안 들어간 간병비와 상속분 기여도를 이야기하자 동생들은 나를 돈에 눈이 멀어 욕심을 부리는 장남으로 몰아세웠다.

둘째 동생은 요즘 법이 바뀌어서 부모 모신 것과 상관없이 균등 분배가 원칙이라며 목소리를 높여 주장했다.

곁에서 조용히 듣고 계시던 아버지는 자식들이 재산 때문에 고성을 지르며 싸우자 멍한 눈으로 눈물만 흘리셨다.

서로의 이기적인 속내를 확인한 순간 지난 세월 동안 간신히 유지되어 온 형제간의 우애는 산산조각나 버렸다.

나는 더 이상 말을 섞는 대신 그동안 모아둔 간병비 영수증과 병원 기록이 담긴 상자를 식탁 중앙에 내놓았다.

동생들은 수백 장에 달하는 영수증 뭉치를 확인하고는 순간 당황한 기색을 보였지만 끝내 사과의 한마디조차 내놓지 않았다.

결국 어색한 정적 속에서 짐을 싼 동생들은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없이 각자의 차를 타고 황급히 떠나갔다.

싸늘하게 식어버린 밥상을 정리하며 나는 부모를 향한 효도와 핏줄이라는 허울에 대한 깊은 회한을 느꼈다.

동생들이 휩쓸고 간 쓸쓸한 거실에서 아버지를 미음으로 다독이며 이제는 내가 짊어져 온 홀로 된 짐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텅 빈 시골집 마당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형제들의 뒷모습을 식탁 위의 서류와 함께 가슴 깊이 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