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 달리의 기상천외한 극장 미술관

[정연복과 손잡고, 세계의 미술관으로]

미술관이 놀이동산처럼?

소셜미디어(SNS) 시대 우리의 삶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한 편의 연극 혹은 놀이동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두가 배우이자 관람객인 연극놀이. 연출자도, 극장도 없지만 다양한 연기가 무궁무진하게 펼쳐집니다. 로그아웃을 하면 무대는 환영처럼 사라지지만 그 마법의 공간으로 언제든 또 달려갑니다. 어떤 매혹적인 공연이 펼쳐지고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이죠.

SNS가 나오기 오래 전, 자신의 삶과 예술로 20세기 예술계 최고의 엔터테이너였던 예술가는 누구였을까요? 매스컴을 좋아했고 스캔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살바도르 달리(1904-1989)가 아닐까요? 잠수복에 헬멧을 쓰고 강연을 하는가 하면 개미핥기나 오셀롯(겉모습은 고양이 비슷하나 표범 같은 가죽을 가진 동물)과 함께 대중 앞에 나타나는 등 그가 벌인 기행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죠. 녹아내리는 시계를 비롯, 독특한 작품들도 많이 남겨 사후 35년이 되어도 그에 대한 관심은 식을 줄을 모릅니다.

자신의 애완동물인 오셀롯과 함께 찍은 살바도르 달리(1965년)

"내가 죽더라도 날 만나러 오시길"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북동쪽 해안을 따라 올라가면 피게레스라는 도시가 나오는데, 달리가 태어나 성장하고 생을 마감한 곳입니다. 이곳에 달리는 자신의 예술 세계를 집약한 왕국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함께 가볼까요?

피게레스는 인구가 4만 명이 살짝 넘는 작은 도시입니다. 달리 미술관이 아니라면 일부러 찾아가지 않을테죠. 달리는 고향에 미술관을 지어 사후에도 전세계 사람들이 자신을 만나러 오게 한 겁니다. 이름도 특이하게 '달리 극장 미술관(Dali theatre museum)'인데요. 왜 미술관 이름에 극장이 들어가 있을까요?

첫번째 이유는 이곳이 원래 피게레스 시립 극장이었기 때문입니다. 달리는 14살이던1919년, 이곳에서 생애 최초로 작품을 전시하면서 극장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습니다. 극장은 스페인 내전 중이던 1939년에 불에 타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는데, 1961년 8월에 달리가 이곳에 자신의 미술관을 건립하고자 하는 희망 의사를 밝힙니다. “보편성에 도달하는 유일한 방법은 지극히 국지적인 것을 통해서”라는 몽테뉴의 말을 인용하면서 말이죠. 주민들의 반대, 재정적인 문제 등으로 공사가 지연되다가 1974년 10월 28일 드디어 미술관이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그는 왜 이 극장에 미술관을 세우려 했을까요? 자신이 구현하고자 했던 전시 개념이 극장과 맞아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미술관이 극장인 두번째 이유인데, 달리는 관람객이 작품을 독립된 작품으로 따로 보지 않고 마치 극장에서 온 몸으로 느끼며 연극을 보듯이 공간 전체를 ‘통으로’ 느끼는 경험을 하기를 바랬던 겁니다. “나는 내 미술관이 하나의 이색적인 덩어리, 미로, 위대한 초현실주의적인 오브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완전히 극장과 같은 미술관이 될 것입니다. 관람객들은 연극적인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으로 떠날 것입니다.”

빵 건물, 빵 석조상, 빵 바구니

미술관은 멀리서 건물이 보일 때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붉은 외벽에는 무수히 많은 황토색 덩어리가 붙어있습니다. 달리가 강박적으로 집착하고 숭배한다고 고백했던 '빵'을 형상화한 겁니다. 달리는 '빵'이 인간을 살찌우고 고결하게 해준다고 생각했어요. 그림이나 조각으로 자주 다루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미술관이 중요한 공간임을 나타내는 위트로 보입니다. 지붕 위 가장자리에는 거대한 계란들 사이에 '아르 데코' 양식의 황금색 인물 입상이 도열해 있고 둥근 유리돔도 보입니다.

건물 주위에는 머리에 바게트 빵를 이고 있는 석고상, 이마에 작은 TV를 붙인 수염달린 남자, 잠수복에 헬멧을 쓴 사람, 타이어로 만든 탑 위의 조각상 등 그야말로 잡다한 형상들이 있습니다. 절제나 균형미보다는 과도함과 기이함을 추구하는 달리의 미학과 어울리는 외관입니다.

무대 쪽에서 바라본 중정. ‘비내리는 택시’(1938, 달리의 부인인 갈라가 타던 것으로 관람객이 1유로를 넣으면 차천장에서 비가 내린다), 자동차 위의 ‘거대한 에스테르’(에른스트 푹스, 1972, 높이 273cm), 타이어를 쌓아올려 만든 기둥, 기둥 위에 미켈란젤로의 복제된 ‘반항하는 노예’, 그 위에 물이 떨어지는 듯이 연출된 거꾸로 된 배로 이루어진 설치물. 둥근 복도의 창문에는 아르 데코 양식의 황금 입상들이 서 있다.사진=정연복

초현실주의를 실현한 중정

미술관 내부 역시 상상력을 자극하며 끊임없이 놀라움을 줍니다. 입구를 들어서면 중정이 나옵니다. 극장의 오케스트라석이었던 이곳에는 캐딜락 자동차와 그 위의 거대한 여인상, 여인상 뒤에 로마의 트리야누스 황제탑을 본뜬 원형 기둥(검은색 타이어로 쌓아올린 기둥), 기둥 위에 거꾸로 매달려 물을 뿜어내는 것처럼 보이는 배에 이르기까지 레디 메이드와 조각으로 이루어진 오브제들이 연결성도, 논리적 이유도 없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초현실주의는 1924년 프랑스 작가 앙드레 브르통이 「초현실주의 선언문」을 발표하면서 시작합니다. 선언문에서 권고하듯이 달리는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이미지들이 결합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형태를 낳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을 통해 이성의 통제를 받는 현실에서 벗어나 꿈과 초현실로 관람객을 초대합니다.

1941년 발레 ‘미로’의 무대를 위해 달리가 그린 그림. 가로 13m, 세로 8.8m 크기다. 사진=정연복

중정 맞은편에는 바깥에서 보이던 유리돔 천장의 공간이 있습니다. 극장의 무대였던 곳입니다. 무대 정면에 두개골이 깨진 남성의 커다란 상반신 그림이 압도적인데요. 달리가 미국에 머물던 1941년 발레 <미로>의 무대를 위해 제작한 작품입니다.

‘링컨 초상’(1975, 사진에 유채, 420x318cm). 언뜻 보면 링컨의 초상이지만 자세히 보면 가운데 옷을 벗고 창문에 기대어 노을을 보는 갈라의 뒷모습이 보인다. 사진=정연복

<미로> 왼쪽에는 <링컨 초상>(1977)이 있습니다. 언뜻 보면 픽셀로 이루어진 초상인데 자세히 보면 링컨은 사라지고 옷을 벗은 갈라(달리의 부인)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도록 제작된 이중이미지 작품입니다. <링컨 초상> 맞은편에는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화 <천지창조>를 오마주한 이미지가 있습니다. 창조의 숨결로 이곳을 만든 달리 자신이 마치 신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2층 복도 창문에서 바라본 중정. 사진=정연복

무대와 중정은 둥근 건물로 에워싸여 있습니다. 3층 건물의 많은 아치형 창문 앞에는 지붕 위처럼 황금 인물 입상이 중정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둥근 복도와 전시실을 포함, 미술관에는 1500여 점이 넘는 회화, 조각, 데생, 보석, 설치작품 등이 전시되어 있는데, 관람객은 초기의 인상주의풍의 회화들에서 입체파, 사실주의, 초현실주의적인 회화 등 화가로서의 달리의 진면목을 제대로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중 <웃는 비너스>(1921)나 <피게레스 성십자가 축제>(1922)와 같은 화려한 색채의 초기작들뿐 아니라 1945년에 그린 <빵 바구니>(캔버스에 유채, 33x38cm)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빵 바구니’(1945, 캔버스에 유채, 33x38cm). 달리는 빵이 인간을 살찌우고 고귀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사로잡히고 숭배했던 여러 소재 중 하나로 회화와 조각에서 자주 다뤘다. 이 그림은 1945년 두 달 동안 매일 4시간씩 매달려 작업한 끝에 2차 세계대전 종전 하루 전에 완성했다. 사진=정연복

스페인 프라도 다음으로 인기있는 미술관

특히 <빵 바구니>는 흔히 상상하는 달리 그림과 달리 17세기 착각화(트롱프 뢰유 trompe-l’oeil)를 보는 느낌을 줍니다. 깊고 깊은 어둠 앞에 환한 빛을 받고 있는 빵 바구니에서 더할 수 없는 숭고함이 배어나옵니다. 그 외에도 <공으로 그린 갈라테아>(1952, 캔버스에 유채, 65X54cm), <구운 베이컨이 있는 말랑말랑한 자화상>(1941, 캔버스에 유채, 61X51cm) 등 많은 회화 작품을 보다 보면 늘어진 시계나 개미, 왜곡된 인체나 오브제를 그릴 때도 달리가 화가 수업 시절 익힌 탄탄한 기본기가 바탕에 깔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메이 웨스트의 방’. 소파와 벽난로, 액자를 머리카락이 달린 렌즈를 통해서 보면 1930년대 헐리우드 여배우 메이 웨스트의 얼굴이 되도록 꾸며놓았다. (사진=정연복)

고대 조각을 본뜬 마네킹과 바게트 빵, 밀레의 ‘만종’이 결합된 기이한 콜라주 작품 <여자의 회고적 흉상>(1933)이 설치된 곳이나 초현실주의적 가구로 꾸며진 ‘메이 웨스트의 방’, 화려한 천장화와 아르 누보 양식의 침대, <상징적 기능을 가진 초현실주의적 오브제>(1931)와 같은 기발한 작품들이 전시된 ‘바람의 궁전’은 달리 극장 미술관을 대표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달리 극장 미술관은 프라도 박물관 다음으로 스페인에서 많은 관람객이 방문하는 인기있는 곳입니다. 이름도 낯선 작은 도시 피게레스에 있다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새로운 전시실에 들어설 때마다 예술감상이 아니라 탐험하는 기분, 놀이동산에 온 듯한 기분이 드는 미술관이 일궈낸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정연복 미술평론가는 서울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프랑스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현재 중앙대에서 예술사 강의를 한다. 사조의 이해나 단순지식보다는 직관적인 경험으로서의 예술이해에 관심이 많다. 삶에서 예술이 나오고 예술이 곧 삶이 된다는 것,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는 만큼 느끼는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림과 미술관에 관한 글을 쓰고 강연을 한다.